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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카운슬링 - 인생의 불안을 해소하는 10번의 사적인 대화
체사레 카타 지음, 김지우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6월
평점 :

작가는 『체사레 카타』, 이탈리아인이다.
철학자이자, 교사, 작가, 연극연출가이고 미국 하와이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 및 강의를 했다. 독일에서 중세 및 르네상스 플라톤 텍스트연구를 했다. 이 글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많은 인용이 이를 증명해줄 것이다.
동양 및 비교철학, 선불교 연구 등 만능학자답다.
체사레 카타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훌륭하다가 아니다.
그녀가 윌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셰익스피어가 우리에게 넌지시 던진 의미를 찾지 못함이 안타까워서 콕콕 집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긋나긋한 선생님 앞에서 읽었던 혹은 읽지 않은 열 개의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속내를 들어야 한다.
셰익스피어 카운슬링이라는 대제목 아래 ‘인생의 불안을 해소하는 10번의 사적인 대화’라는 소제목이 있다.
차례에도 나타나 있듯이 10개의 심리상태를 셰익스피어의 10개의 작품과 함께 대화하듯 풀어주는 글이다.
제1막 하는 일마다 족족 꼬인다면
누구나 막다른 골목에서 하늘마저 닫히는 느낌 때문에 “왜 나야? 왜 내게만! 하필 이럴 때!”장탄식이 나올 때가 있다.
엎친 데 덮치고, 자빠져도 코가 깨지듯이 되는 일 없이 줄줄이 꼬이는 실타래를 만날 수 있다.
끊어버릴 수도 없는 인간관계라면 좌절감으로 잠수부가 될 지경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한여름 밤의 꿈〉이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연극을 기억한다면 더 반가울 것이다.
요정 퍽의 실수로 사랑하는 연인들이 얼키고 설켜 종잡을 수 없게 되지만 결국은 하나의 매듭을 풀면 쌀자루가 스르륵 열리는 것처럼 모든 문제는 해피엔딩으로 가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상냥한 인간’을 원한다.
상냥함이란 예의바르고 다정한 태도가 아니다.
《세상 일과 거리를 두면서 나오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이다.
긍정이란 부정의 반대말이 아니라 부정을 인정한 후에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의 따스함을 말하는 것이다.
죽고 싶을만큼 꼬인 삶이라도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매듭의 시작을 볼 여유가 생긴다.
조금은 여유롭고 조금은 따스하게 손을 내밀면 풀리지 않은 문제는 애당초 없다고 셰익스피어는 숲의 요정, 퍽을 통해 보여준다.
제2막 문득 타인이 괴물처럼 느껴진다면
대인기피증이 달리 생기는 것이 아니다.
소심하고 예민해서 사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어느 순간, 사람이 아닌 괴물로 느껴질만큼 괴로울 때 생긴다.
밤의 적막과 어둠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기분.
이럴 때 만나는 책, 〈맥베스〉!
맥베스는 세 마녀로부터 예언을 듣는다.
마녀는 맥베스의 내부에 드러나지 못한 욕망을 읽었던 것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맥베스 못지않게 맥베스 부인은 더 강했다.
마녀의 예언을 부추키는 부인에게 이끌려 마침내 손에 피를 묻히고 권좌를 차지한다.
하지만 불행은 욕망에서 시작되어 의심으로 전이되어 피는 더 큰 피를 찾는 괴물로 진화시킨다.
셰익스피어는 인간 누구라면 가지고 있지만 꺼내기를 두려워하는 《욕망》을 말하려 한다.
욕망 아래 깔린 집착과 의심을 거름삼아 겉잡을 수 없이 괴물로 변하기 전에 자신의 욕망을 읽어야 한다.
누군가가 풀무질로 바람을 넣더라도 영혼을 다잡아야 한다.
유명한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서 실험’을 보면 안다.
누구나 사악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상황이 그를 불안과 불행의 코너로 몬다면 말이다.
제3막 평생 사랑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면
결혼 32년차, 지금은 평생 사랑하지 않아도 삶이 두렵지 않을 무모함이 있다.
젊다면 말은 달라진다.
사랑 한번 못해 보고 처녀귀신으로 죽을 수는 없다.
원한으로 구천을 떠돌고 싶지 않아서 두려움에 벌벌 떨 것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헛소동〉이다.
결혼에 대한 질문을 만났다.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
‘혼자 사는 것보다 결혼해야 더 행복하다는 것이 진리일 수 있나?’
대답은 백인백색(百人百色)을 내고 싶다.
하지만 사랑을 원한다면, 사랑에 대해 확신하고 싶다면 헛소동을 만나면 도움이 될 거라고 셰익스피어는 들려준다.
《사랑은 사소한 것을 눈여겨 보는 것》이라고도 하고 《자신의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라고도 한다.
운명의 짝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상대다.
‘융’도 말했다.
“사랑이란 무엇보다 잃었던 자아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하는 것”이라고.
운명같은 만남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반쪽짜리 사랑의 징표를 두 사람만의 방법으로 찾아 맞춰보는 것.
나의 잃어버린 자아를 얼마나 깊숙하게 숨겨놨는지 아직도 나는 못 찾고 있다.
혹시 선녀처럼 하늘로 올라가 버릴까 봐 보여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4막 스스로 그 무엇도 해낼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자괴감이 깊어 자책감으로 무기력으로 이불삼게 되는 기분이다.
자존감은 구멍없는 굴 속으로 빠져서 도무지 찾아올 수 없는 감정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헨리 5세〉다.
헨리 5세는 왕이 되기 전에는 불량기 가득한 왕족으로 살았다.
주점에서 사고나 치고 한량과 어울리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랬던 그가 헨리 5세(알로 불리던 왕자시절)로 불리게 되자,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꾼다.
그야말로 인생대반전이다.
그리스도 기사도의 격언을 목숨처럼 지키면서 ‘과거의 자신과는 절연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말하고자 한다.
《용기》를 꺼내라고.
누구나 용기를 가지고 있으나 있는 줄 몰라 찾지도 않는다.
무릎 꿇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려면 자기 신뢰가 있어야 한다.
자신을 믿지 않으면 인간은 자아실현을 할 수 없다.
자아실현을 넘어서는 자아초월욕구가 바로 용기를 가져야만 이룰 수 있다.
과거의 어두운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 자아초월욕구다.
무너져가는 나를 두려워 하거나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려면 내 안의 용기를 꺼내서 과거의 자신과 과감히 헤어져야 한다.
헨리 5세처럼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신(무엇을 믿든)과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제5막 이유없는 불안이 내 마음을 지배한다면
두려움에 이유가 필요한가?
불안에 이유가 꼭 있어야 마음껏 느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알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밀려온 불안이 나를 덮쳐 떨어질 줄 모르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뒤통수 가격처럼!
이럴 때 만나는 책, 〈오셀로〉다.
바로 그, 오셀로.
흔히 질투에 눈이 멀어서 사랑하는 아내를 처참하게 질식사시킨 무어인.
그런 남편을 죽는 순간까지 감싸는 아내.
질투를 말하고 싶어서 셰익스피어를 썼을까?
오셀로는 감수성이 풍부해서 타고난 본성에 불안이 큰 캐릭터라고 한다.
작은 말에도 흔들림이 생길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때, 이아고처럼 비열하고 거침없이 때로는 함구하듯 안개를 피우면 오셀로는 흔들린다.
의심이라는 괴물을 꺼낸다.
진실을 보는 눈을 감는다.
귀만 열어 쿵쾅대는 심장의 소리를 따라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현실을 제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고 오로지 소리에 이끌려 불안속으로 파묻힌 오셀로다.
단 한번 만이라도 데스데모나에게 진실의 말을 해다오~ 부드러운 말투로 말을 했다면 이아고의 거짓을 금방 알아챘을 텐데 말이다.
오셀로는 자신의 눈으로 귀로 직접 확인할 진실(사실은 거짓)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불안과 상상은 쌍둥이와 같아서 오셀로를 우리에게 보내 《진실을 자각하는 능력을 키우라》고 한다.
초능력 대신 키워야 하는 진실자각력!
제6막 감당하기 힘든 일이 폭풍처럼 밀려온다면
폭풍이 몰아치면 튼튼한 곳으로 도망을 쳐야 한다.
하지만 폭풍을 어디서 만났는 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집안에서? 거리에서? 산에서? 들판에서? 아니면 바다에서?
이럴 때 만나는 책, 〈템페스트〉를 보자.
작가 체사레 카타는 2016년 아일랜드에서 노어부(老漁夫)를 만나 그가 마주친 폭풍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바다에서 만난 끔찍한 폭풍우로부터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려준 노어부는 이렇게 말했다.
뱃머리를 해안으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신, 폭풍의 심장을 향해 돌진했다고.
헤어지면서 강조한 말.
“목숨을 건지려면 폭풍의 심장을 향해 몸을 던져야 한다네!”
나는 어려운 일이나 상처받아 쓰러질 때도 참았다.
피하고 눈을 감으면 내가 살아남으리라 생각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딱 이 심정이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폭풍(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를 바꾸라고 말이다.
용서할 것은 하고 구원이 된다면 과감하게 두려움도 벗으라고 한다.
삶의 본질을 마주하여 볼 수 있다면 폭풍의 피해는 막을 수 없을 지라도 적어도 폭풍을 두려워하지는 않게 된다는 작가의 결론에 행복했다.
나도 폭풍의 중심으로 당당하게 걸어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결심이 행동으로 되려면 “헨리 5세”처러 용기도 챙겨야 한다.
제7막 이별의 상처로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다면
헤어짐은 아프고 슬프고 괴롭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은 바늘끝처럼 괴롭히기 마련이라 피하고 싶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전혀 변하지 않을 세상이다.
어쩌면 더 혹독한 세상이 왔을 지도 모른다.
그런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서로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않고 미친듯한 열애사를 만들었다.
사랑타령을 들려 주려고 대문호 윌선생님께서 이 연극을 쓰셨을리 만무하다.
사랑은 역사를 만들고, 이전의 관계는 종말을 만난다. 사랑이 끝나면 역사도 끝난다.
이 말이 맞을까?
《과정법》을 가르치려 쓴 글은 아니지만 “상대방을 소중하게 생각하되 지나친 이상화는 피해야 한다”라는 뜻을 품은 연극이라고 한다.
이별은 물과 흙으로 만나지 말고 불과 공기로 승화시키라고 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죽어가는 안토니에게 말하듯이.
이는 사랑의 상처를 대하는 자세에 해당한다.
불과 공기는 소멸되어 사라지는 것.
이별의 아픔도 그렇게 보내고 다시 태어나듯 새로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인가 보다.
불과 공기로 사라지더라도 화상과 습기는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로다.
제8막 삶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나면 가장 밝은 세상이 나온다는 약속만 한다면 기꺼이 지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연극이고, 연극의 연출자는 운명이라 알 수 없다.
내가 선택하지만 타인의 선택도 영향을 주는 터널일 것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햄릿〉.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의 패러디가 잔치를 벌이던 시절도 있다.
먹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은 다이어트의 고통이다.
자느냐 깨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은 수험생의 고통이다.
앉느냐 서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은 빈자리 앞의 청춘의 고통이다. 청춘도 아프니까 앉고 싶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헛소리나 해대는, 결단력없는 무모한 청년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셨을까?
「햄릿적」이라는 형용사가 있다.
이는 “결정하기 힘들기에 해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문제”를 뜻한다고 한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형용사다.
나는 햄릿적인 것을 가진 적이 있다.
햄릿은 화를 낸다.
아버지를 죽인 숙부가 왕이 되고, 어머니와 재혼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여 감정을 드러낸다.
부여에는 형사취수제도 당당히 있었는데......
햄릿의 화는 가장 강력한 인간의 권리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이 권리를 마음대로 써보지 못했으니 인간답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햄릿의 화는 삶을 자기주도적으로 사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즉, 알선생님께서는 햄릿으로부터 《자기주도적으로 사는 사람》을 들려주시는 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햄릿의 복수가 아니라 주도적인 삶에 대한 것이다.
살면서 높은 파도를 만나면 절망하는 기술을 잘 쓰면 파도에 부딪치더라도 잘 넘길 수는 있다는 말씀이다.
미래는 모르지만 주도적으로 기술을 잘 쓴다면 깊고 긴 어둠의 터널쯤은 헤매지않고 똑바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당황해서 함부로 움직이면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 있음을 명심하자.
제9막 내 감정을 원하는 대로 관리하고 싶다면
햄릿이 되면 가능하지 않을까? 화만 관리될 지도.
그럴 때 있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계산하다보면 정작 표현해야 할 순간을 놓칠 때.
뒤돌아 서서, 혹은 집에 와서 ‘에잇~ 이렇게 말해 버릴 걸.’ 후회를 한다.
멍청이 소리를 서너번은 해야 풀리는 억울함이 생긴다.
기왕이면 사랑처럼 좋은 감정이었다면 덜 억울할텐데 말이다.
아무튼 관리받고싶은 감정이 있다.
이럴 때 만나는 책,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체관람으로 봤던 영화다.
레오나드 위팅과 올리비아 핫세가 나오는 묵은 영화다.
이도령과 춘향이처럼 해피 엔딩이 아니라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용감하지 못한 로미오가 미웠고, 예쁜 줄리엣이 죽어서 슬펐다.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지 않고 약을 홀딱 마시는 로미오에게 “안돼~~~”소리쳤었다.
바보 멍청이!
윌 선생님은 그런 두 십대의 무모한 사랑을 쓰면서 교훈이나 메시지는 넣지 않았다고 한다.
해석은 각자 알아서들 하시라구~라는 뜻이다.
사랑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엄청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끝내 죽음 아니면 죽을만큼 아프게 헤어지면 어쩌나~ 지레 겁 먹을 테니까.
사랑에 빠지면 타자(他者)를 절대화 한다고 한다.
거의 신격화라고 해야 할까.
도덕을 초월하는 개념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그말인즉은 좋은 것은 만들어지니까 잘 만들도록 좋게 보라는 뜻이고, 감정은 내 맘대로 안되는 깨볶는 것과 다름없으니 힘조절을 잘 하라는 뜻이란다.
교훈이나 메시지를 넣지 않아도 독자가 알아서 만들 수 있는 좋은 책임이 분명하다.
제10막 한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번 생은 다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반면, 이번 생은 죽고싶지 않을만큼 좋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죽기 전에 끝내주는 인생을 갖고 싶은 사람이 훨씬 많겠지만 말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뜻대로 하세요〉다.
제목이 주는 직설적인 뜻은 그대로다.
"IT'S UP TO YOU."
혹은
“THAT'S NOT MY BUSINESS."
누구나 뜻대로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사회적인 규약 때문이다.
규약 혹은 시선, 체면, 도리, 의무, 관습, 암묵적인 지시 등등.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라는 연극에서 공적인 정체성과 내밀한 정체성이 정면대결하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현실의 정체성은 내가 아닌 것을 내가 아는데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
내밀한 정체성은 내가 나로 살기를 발버둥치지만 차마 꺼내지 못하는 경우.
불협화음으로 인생은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럴 때는 전혀 다른 내가 되어 살아봄직 하다고 작가는 설명해준다.
물론 알선생님의 연극으로부터 꺼낸 메시지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연기하는 배우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현실이라는 엄격한 감독이 배정한 배역을 연기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고 버릴 것인지, 어떻게 용서하고 어떻게 화해할 것인지, 쓸쓸한 기억은 어떻게 잊을지 등등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가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뜻대로 하세요를 외쳐주는 셰익스피어님에게 영광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줄거리만으로 평가했다면 그것을 모두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는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대체 어떻게 읽었길래 말귀가 이렇게 어두운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읽었다면 이 책을 읽고 다시 읽을 것을 권한다.
읽지 않았다면 먼저 읽고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 이후에 다시 셰익스피어의 글을 만나면 좋겠다.
참으로 좋겠다.
사족을 붙이자면, 외화에서 보는 교육현장이 우리에게 없음이 아쉽다.
하나의 작품으로 토론을 하고, 에세이를 쓰고, 단어를 확장시키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암기하는 수업을 봤다.
우리는 작가와 작품의 줄거리와 문법과 주제,소재 등을 외우기 바빴다.
그래서 행간에 숨어있는 가르침을 미처 보지 못한다.
하나를 제대로 알면 모든 곳으로 갈 수 있는 열쇠를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말에 나오는 말씀 하나 더 추가!
오디세이아, 신통기, 헤라클레이토스의 책, 베르길리우스의 책, 성서, 주역,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서적점(書籍占)을 보는 것이다.
서적점이란 신이 내린 영감이나 예언의 힘으로 집필된 성스러운 책에서 고민의 해답을 찾는 점의 일종이라고 한다.
서적점을 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책을 믿는다.
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책이 내게 전하는 바를 그대로 믿기로 한다.
책 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은 채 내면의 질문에 집중한다.
손이 가는대로 페이지를 펼친다.
그때 들어온 문구, 문단, 시와 시굴절이나 주역의 육효 등이 신탁을 전하는 사제의 목소리가 되어 우리의 고민에 대한 답을 주고 내면의 번뇌를 풀어줄 거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서적점에 사용하기 유용하다는 작가의 말을 긴가민가 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생각했다.
“그래, 결심했어. 나도 힘들 때 해보자.”
그러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 사놔야겠다.
작가는 『체사레 카타』, 이탈리아인이다.
철학자이자, 교사, 작가, 연극연출가이고 미국 하와이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 및 강의를 했다. 독일에서 중세 및 르네상스 플라톤 텍스트연구를 했다. 이 글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많은 인용이 이를 증명해줄 것이다.
동양 및 비교철학, 선불교 연구 등 만능학자답다.
체사레 카타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훌륭하다가 아니다.
그녀가 윌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셰익스피어가 우리에게 넌지시 던진 의미를 찾지 못함이 안타까워서 콕콕 집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긋나긋한 선생님 앞에서 읽었던 혹은 읽지 않은 열 개의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속내를 들어야 한다.
셰익스피어 카운슬링이라는 대제목 아래 ‘인생의 불안을 해소하는 10번의 사적인 대화’라는 소제목이 있다.
차례에도 나타나 있듯이 10개의 심리상태를 셰익스피어의 10개의 작품과 함께 대화하듯 풀어주는 글이다.
제1막 하는 일마다 족족 꼬인다면
누구나 막다른 골목에서 하늘마저 닫히는 느낌 때문에 “왜 나야? 왜 내게만! 하필 이럴 때!”장탄식이 나올 때가 있다.
엎친 데 덮치고, 자빠져도 코가 깨지듯이 되는 일 없이 줄줄이 꼬이는 실타래를 만날 수 있다.
끊어버릴 수도 없는 인간관계라면 좌절감으로 잠수부가 될 지경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한여름 밤의 꿈〉이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연극을 기억한다면 더 반가울 것이다.
요정 퍽의 실수로 사랑하는 연인들이 얼키고 설켜 종잡을 수 없게 되지만 결국은 하나의 매듭을 풀면 쌀자루가 스르륵 열리는 것처럼 모든 문제는 해피엔딩으로 가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상냥한 인간’을 원한다.
상냥함이란 예의바르고 다정한 태도가 아니다.
《세상 일과 거리를 두면서 나오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이다.
긍정이란 부정의 반대말이 아니라 부정을 인정한 후에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의 따스함을 말하는 것이다.
죽고 싶을만큼 꼬인 삶이라도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매듭의 시작을 볼 여유가 생긴다.
조금은 여유롭고 조금은 따스하게 손을 내밀면 풀리지 않은 문제는 애당초 없다고 셰익스피어는 숲의 요정, 퍽을 통해 보여준다.
제2막 문득 타인이 괴물처럼 느껴진다면
대인기피증이 달리 생기는 것이 아니다.
소심하고 예민해서 사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어느 순간, 사람이 아닌 괴물로 느껴질만큼 괴로울 때 생긴다.
밤의 적막과 어둠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기분.
이럴 때 만나는 책, 〈맥베스〉!
맥베스는 세 마녀로부터 예언을 듣는다.
마녀는 맥베스의 내부에 드러나지 못한 욕망을 읽었던 것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맥베스 못지않게 맥베스 부인은 더 강했다.
마녀의 예언을 부추키는 부인에게 이끌려 마침내 손에 피를 묻히고 권좌를 차지한다.
하지만 불행은 욕망에서 시작되어 의심으로 전이되어 피는 더 큰 피를 찾는 괴물로 진화시킨다.
셰익스피어는 인간 누구라면 가지고 있지만 꺼내기를 두려워하는 《욕망》을 말하려 한다.
욕망 아래 깔린 집착과 의심을 거름삼아 겉잡을 수 없이 괴물로 변하기 전에 자신의 욕망을 읽어야 한다.
누군가가 풀무질로 바람을 넣더라도 영혼을 다잡아야 한다.
유명한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서 실험’을 보면 안다.
누구나 사악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상황이 그를 불안과 불행의 코너로 몬다면 말이다.
제3막 평생 사랑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면
결혼 32년차, 지금은 평생 사랑하지 않아도 삶이 두렵지 않을 무모함이 있다.
젊다면 말은 달라진다.
사랑 한번 못해 보고 처녀귀신으로 죽을 수는 없다.
원한으로 구천을 떠돌고 싶지 않아서 두려움에 벌벌 떨 것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헛소동〉이다.
결혼에 대한 질문을 만났다.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
‘혼자 사는 것보다 결혼해야 더 행복하다는 것이 진리일 수 있나?’
대답은 백인백색(百人百色)을 내고 싶다.
하지만 사랑을 원한다면, 사랑에 대해 확신하고 싶다면 헛소동을 만나면 도움이 될 거라고 셰익스피어는 들려준다.
《사랑은 사소한 것을 눈여겨 보는 것》이라고도 하고 《자신의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라고도 한다.
운명의 짝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상대다.
‘융’도 말했다.
“사랑이란 무엇보다 잃었던 자아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하는 것”이라고.
운명같은 만남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반쪽짜리 사랑의 징표를 두 사람만의 방법으로 찾아 맞춰보는 것.
나의 잃어버린 자아를 얼마나 깊숙하게 숨겨놨는지 아직도 나는 못 찾고 있다.
혹시 선녀처럼 하늘로 올라가 버릴까 봐 보여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4막 스스로 그 무엇도 해낼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자괴감이 깊어 자책감으로 무기력으로 이불삼게 되는 기분이다.
자존감은 구멍없는 굴 속으로 빠져서 도무지 찾아올 수 없는 감정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헨리 5세〉다.
헨리 5세는 왕이 되기 전에는 불량기 가득한 왕족으로 살았다.
주점에서 사고나 치고 한량과 어울리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랬던 그가 헨리 5세(알로 불리던 왕자시절)로 불리게 되자,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꾼다.
그야말로 인생대반전이다.
그리스도 기사도의 격언을 목숨처럼 지키면서 ‘과거의 자신과는 절연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말하고자 한다.
《용기》를 꺼내라고.
누구나 용기를 가지고 있으나 있는 줄 몰라 찾지도 않는다.
무릎 꿇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려면 자기 신뢰가 있어야 한다.
자신을 믿지 않으면 인간은 자아실현을 할 수 없다.
자아실현을 넘어서는 자아초월욕구가 바로 용기를 가져야만 이룰 수 있다.
과거의 어두운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 자아초월욕구다.
무너져가는 나를 두려워 하거나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려면 내 안의 용기를 꺼내서 과거의 자신과 과감히 헤어져야 한다.
헨리 5세처럼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신(무엇을 믿든)과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제5막 이유없는 불안이 내 마음을 지배한다면
두려움에 이유가 필요한가?
불안에 이유가 꼭 있어야 마음껏 느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알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밀려온 불안이 나를 덮쳐 떨어질 줄 모르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뒤통수 가격처럼!
이럴 때 만나는 책, 〈오셀로〉다.
바로 그, 오셀로.
흔히 질투에 눈이 멀어서 사랑하는 아내를 처참하게 질식사시킨 무어인.
그런 남편을 죽는 순간까지 감싸는 아내.
질투를 말하고 싶어서 셰익스피어를 썼을까?
오셀로는 감수성이 풍부해서 타고난 본성에 불안이 큰 캐릭터라고 한다.
작은 말에도 흔들림이 생길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때, 이아고처럼 비열하고 거침없이 때로는 함구하듯 안개를 피우면 오셀로는 흔들린다.
의심이라는 괴물을 꺼낸다.
진실을 보는 눈을 감는다.
귀만 열어 쿵쾅대는 심장의 소리를 따라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현실을 제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고 오로지 소리에 이끌려 불안속으로 파묻힌 오셀로다.
단 한번 만이라도 데스데모나에게 진실의 말을 해다오~ 부드러운 말투로 말을 했다면 이아고의 거짓을 금방 알아챘을 텐데 말이다.
오셀로는 자신의 눈으로 귀로 직접 확인할 진실(사실은 거짓)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불안과 상상은 쌍둥이와 같아서 오셀로를 우리에게 보내 《진실을 자각하는 능력을 키우라》고 한다.
초능력 대신 키워야 하는 진실자각력!
제6막 감당하기 힘든 일이 폭풍처럼 밀려온다면
폭풍이 몰아치면 튼튼한 곳으로 도망을 쳐야 한다.
하지만 폭풍을 어디서 만났는 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집안에서? 거리에서? 산에서? 들판에서? 아니면 바다에서?
이럴 때 만나는 책, 〈템페스트〉를 보자.
작가 체사레 카타는 2016년 아일랜드에서 노어부(老漁夫)를 만나 그가 마주친 폭풍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바다에서 만난 끔찍한 폭풍우로부터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려준 노어부는 이렇게 말했다.
뱃머리를 해안으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신, 폭풍의 심장을 향해 돌진했다고.
헤어지면서 강조한 말.
“목숨을 건지려면 폭풍의 심장을 향해 몸을 던져야 한다네!”
나는 어려운 일이나 상처받아 쓰러질 때도 참았다.
피하고 눈을 감으면 내가 살아남으리라 생각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딱 이 심정이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폭풍(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를 바꾸라고 말이다.
용서할 것은 하고 구원이 된다면 과감하게 두려움도 벗으라고 한다.
삶의 본질을 마주하여 볼 수 있다면 폭풍의 피해는 막을 수 없을 지라도 적어도 폭풍을 두려워하지는 않게 된다는 작가의 결론에 행복했다.
나도 폭풍의 중심으로 당당하게 걸어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결심이 행동으로 되려면 “헨리 5세”처러 용기도 챙겨야 한다.
제7막 이별의 상처로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다면
헤어짐은 아프고 슬프고 괴롭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은 바늘끝처럼 괴롭히기 마련이라 피하고 싶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전혀 변하지 않을 세상이다.
어쩌면 더 혹독한 세상이 왔을 지도 모른다.
그런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서로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않고 미친듯한 열애사를 만들었다.
사랑타령을 들려 주려고 대문호 윌선생님께서 이 연극을 쓰셨을리 만무하다.
사랑은 역사를 만들고, 이전의 관계는 종말을 만난다. 사랑이 끝나면 역사도 끝난다.
이 말이 맞을까?
《과장법》을 가르치려 쓴 글은 아니지만 “상대방을 소중하게 생각하되 지나친 이상화는 피해야 한다”라는 뜻을 품은 연극이라고 한다.
이별은 물과 흙으로 만나지 말고 불과 공기로 승화시키라고 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죽어가는 안토니에게 말하듯이.
이는 사랑의 상처를 대하는 자세에 해당한다.
불과 공기는 소멸되어 사라지는 것.
이별의 아픔도 그렇게 보내고 다시 태어나듯 새로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인가 보다.
불과 공기로 사라지더라도 화상과 습기는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로다.
제8막 삶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나면 가장 밝은 세상이 나온다는 약속만 한다면 기꺼이 지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연극이고, 연극의 연출자는 운명이라 알 수 없다.
내가 선택하지만 타인의 선택도 영향을 주는 터널일 것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햄릿〉.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의 패러디가 잔치를 벌이던 시절도 있다.
먹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은 다이어트의 고통이다.
자느냐 깨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은 수험생의 고통이다.
앉느냐 서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은 빈자리 앞의 청춘의 고통이다. 청춘도 아프니까 앉고 싶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헛소리나 해대는, 결단력없는 무모한 청년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셨을까?
「햄릿적」이라는 형용사가 있다.
이는 “결정하기 힘들기에 해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문제”를 뜻한다고 한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형용사다.
나는 햄릿적인 것을 가진 적이 있다.
햄릿은 화를 낸다.
아버지를 죽인 숙부가 왕이 되고, 어머니와 재혼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여 감정을 드러낸다.
부여에는 형사취수제도 당당히 있었는데......
햄릿의 화는 가장 강력한 인간의 권리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이 권리를 마음대로 써보지 못했으니 인간답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햄릿의 화는 삶을 자기주도적으로 사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즉, 알선생님께서는 햄릿으로부터 《자기주도적으로 사는 사람》을 들려주시는 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햄릿의 복수가 아니라 주도적인 삶에 대한 것이다.
살면서 높은 파도를 만나면 절망하는 기술을 잘 쓰면 파도에 부딪치더라도 잘 넘길 수는 있다는 말씀이다.
미래는 모르지만 주도적으로 기술을 잘 쓴다면 깊고 긴 어둠의 터널쯤은 헤매지않고 똑바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당황해서 함부로 움직이면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 있음을 명심하자.
제9막 내 감정을 원하는 대로 관리하고 싶다면
햄릿이 되면 가능하지 않을까? 화만 관리될 지도.
그럴 때 있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계산하다보면 정작 표현해야 할 순간을 놓칠 때.
뒤돌아 서서, 혹은 집에 와서 ‘에잇~ 이렇게 말해 버릴 걸.’ 후회를 한다.
멍청이 소리를 서너번은 해야 풀리는 억울함이 생긴다.
기왕이면 사랑처럼 좋은 감정이었다면 덜 억울할텐데 말이다.
아무튼 관리받고싶은 감정이 있다.
이럴 때 만나는 책,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체관람으로 봤던 영화다.
레오나드 위팅과 올리비아 핫세가 나오는 묵은 영화다.
이도령과 춘향이처럼 해피 엔딩이 아니라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용감하지 못한 로미오가 미웠고, 예쁜 줄리엣이 죽어서 슬펐다.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지 않고 약을 홀딱 마시는 로미오에게 “안돼~~~”소리쳤었다.
바보 멍청이!
윌 선생님은 그런 두 십대의 무모한 사랑을 쓰면서 교훈이나 메시지는 넣지 않았다고 한다.
해석은 각자 알아서들 하시라구~라는 뜻이다.
사랑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엄청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끝내 죽음 아니면 죽을만큼 아프게 헤어지면 어쩌나~ 지레 겁 먹을 테니까.
사랑에 빠지면 타자(他者)를 절대화 한다고 한다.
거의 신격화라고 해야 할까.
도덕을 초월하는 개념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그말인즉은 좋은 것은 만들어지니까 잘 만들도록 좋게 보라는 뜻이고, 감정은 내 맘대로 안되는 깨볶는 것과 다름없으니 힘조절을 잘 하라는 뜻이란다.
교훈이나 메시지를 넣지 않아도 독자가 알아서 만들 수 있는 좋은 책임이 분명하다.
제10막 한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번 생은 다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반면, 이번 생은 죽고싶지 않을만큼 좋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죽기 전에 끝내주는 인생을 갖고 싶은 사람이 훨씬 많겠지만 말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뜻대로 하세요〉다.
제목이 주는 직설적인 뜻은 그대로다.
"IT'S UP TO YOU."
혹은
“THAT'S NOT MY BUSINESS."
누구나 뜻대로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사회적인 규약 때문이다.
규약 혹은 시선, 체면, 도리, 의무, 관습, 암묵적인 지시 등등.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라는 연극에서 공적인 정체성과 내밀한 정체성이 정면대결하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현실의 정체성은 내가 아닌 것을 내가 아는데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
내밀한 정체성은 내가 나로 살기를 발버둥치지만 차마 꺼내지 못하는 경우.
불협화음으로 인생은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럴 때는 전혀 다른 내가 되어 살아봄직 하다고 작가는 설명해준다.
물론 알선생님의 연극으로부터 꺼낸 메시지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연기하는 배우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현실이라는 엄격한 감독이 배정한 배역을 연기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고 버릴 것인지, 어떻게 용서하고 어떻게 화해할 것인지, 쓸쓸한 기억은 어떻게 잊을지 등등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가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뜻대로 하세요를 외쳐주는 셰익스피어님에게 영광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줄거리만으로 평가했다면 그것을 모두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는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대체 어떻게 읽었길래 말귀가 이렇게 어두운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읽었다면 이 책을 읽고 다시 읽을 것을 권한다.
읽지 않았다면 먼저 읽고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 이후에 다시 셰익스피어의 글을 만나면 좋겠다.
참으로 좋겠다.
사족을 붙이자면, 외화에서 보는 교육현장이 우리에게 없음이 아쉽다.
하나의 작품으로 토론을 하고, 에세이를 쓰고, 단어를 확장시키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암기하는 수업을 봤다.
우리는 작가와 작품의 줄거리와 문법과 주제,소재 등을 외우기 바빴다.
그래서 행간에 숨어있는 가르침을 미처 보지 못한다.
하나를 제대로 알면 모든 곳으로 갈 수 있는 열쇠를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말에 나오는 말씀 하나 더 추가!
오디세이아, 신통기, 헤라클레이토스의 책, 베르길리우스의 책, 성서, 주역,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서적점(書籍占)을 보는 것이다.
서적점이란 신이 내린 영감이나 예언의 힘으로 집필된 성스러운 책에서 고민의 해답을 찾는 점의 일종이라고 한다.
서적점을 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책을 믿는다.
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책이 내게 전하는 바를 그대로 믿기로 한다.
책 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은 채 내면의 질문에 집중한다.
손이 가는대로 페이지를 펼친다.
그때 들어온 문구, 문단, 시와 시굴절이나 주역의 육효 등이 신탁을 전하는 사제의 목소리가 되어 우리의 고민에 대한 답을 주고 내면의 번뇌를 풀어줄 거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서적점에 사용하기 유용하다는 작가의 말을 긴가민가 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생각했다.
“그래, 결심했어. 나도 힘들 때 해보자.”
그러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 사놔야겠다.
여기서 퍽의 대사는 셰익스피어 세계관의 중심축을 이루는 사상입니다. 연극과 삶이 결국 똑같다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근본적으로는 비현실 같은 현실을 비롯해,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일이 덜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 P41
인간의 감정에는 마법과도 같은 힘이 있다는 말이죠 - P87
이기적으로 구는 사람에게 예의를 차리는 건 같은 괴물이 되지 않으려는 것, 즉 자신을 위한 행동이죠. 괴물에 영향받지 말고 자신을 독립된 존재로 나누어 그를 대하세요.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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