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용사전 - 국민과 인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적 인민 실용사전
박남일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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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적힌 <괴담>의 한 부분
허구적 괴담이 현실의 불안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불안이 괴담을 조장한다. 문제는 괴담이 아니라 괴담을 일으키는 현실이다. 아무리 괴담을 제거해도 현실의 위험은 제거되지 않는다. 괴담에 악담을 퍼붓는 자들이 지속적으로 위험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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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예술-인간 정신의 위대한 발현 세트 - 전5권 -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살림지식총서
권용준 외 지음 / 살림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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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 이벤트 괜찮군요... 노성두 선생님의 책까지 있다니 당근 사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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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사상의 흐름 세트 - 전5권 -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살림지식총서
양운덕 외 지음 / 살림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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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아주 좋은 이벤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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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부뢰 외 지음, 유영하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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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레이는 1908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중국의 번역문학가 겸 예술사가이다. 1926년 상해 지지대학에 입학하였고, 1927년 프랑스로 유학 가 파리대학과 루브르 미술사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중국에 돌아와서는 상해 미술전문대학에서 미술사와 프랑스어를 강의하였고, 1930년대부터는 공직에서 물러나 프랑스 문학 작품 번역과 미술사 연구에 몰두하였다. 지은 책으로는 세계 미술 명작 20이 있고, 논문으로는 베토벤의 작품과 그 정신」 「소설 삼리만을 평함등이 있으며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볼테르의 캉디드, 텐의 예술철학등의 작품을 중국어로 옮겼다.

1966년 문화 대혁명 발발 초기 홍위병들이 누명을 씌우자 부인과 함께 자살함으로써 무죄를 주장하였다. 그 유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소위 반당죄의 물증(작은 거울과 퇴색한 옛 화보 한 장)이 우리 집에서 발견된 물증 때문에 입이 백 개라도 변명할 길이 없으나, 우리는 죽어도 우리 물건이란 걸 인정할 수 없네(정말 맡긴 상자 안에서 발견된 것이네). 우리에게 다른 죄가 있다면 몰라도 지금껏 반당적 사상이 없었네. 우리도 발견된 물증 때문에 입이 있어도 변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영명한 공산당의 영도와 위대한 모()주석의 영도 아래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은 결코 그것 때문에 중형을 판결하지는 않을 거라 믿네.

다만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사는 시간은 감옥에 있는 것보다 더 힘드네. 하물며 반역자 부총(傅聰, 피아니스트로 1958년 영국으로 망명함)을 길러낸 죄는 내가 죽더라도 국민들 앞에서 다 속죄할 수 없네! 게다가 우리처럼 사회주의 이전 사회에서 흘러 들어온 찌꺼기들은 스스로 알아서 일찍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났어야 했네!

자네가 매복(梅馥, 푸레이의 아내)의 친오빠이니, 또 우리에게 별다른 혈육이 없으니, 뒤처리를 자네에게 맡겨야겠네. 자네 입장이 곤란해서 받아들이기 불편하면, 상급 부서나 법원의 지시에 따라 다시 처리해 주기 바라네.

부탁하는 몇 가지 일은 아래에 적었네.

1) 9월분 집세 55.29원을 대신 납부하여 주게(현금이 있네).

2) 무강빌딩 회해로 끝 606호에 사는 심중장이 오메가 자동 남자 손목시계 하나를 수리하는데 맡겨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돌려주기 바라네.

3)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산 중 남은 것은 자네가 처리하게.

4) 녹슨 강철 회중시계 하나와 여자용 구식 손목시계는 보모인 주국제에게 주게.

5) 600원이 에금된 저금통장도 주국제에게 줘서 어려울 때 생활비로 쓰라고 하게. 그녀는 평생 노동자로 고생하였네. 우리는 그녀가 무고하게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네.

6) 부의 고모가 우리 집에 맡긴, 600원이 든 통장은 그녀에게 돌려주게.

7) 부의 고마가 맡긴 연의산 묘지의 영수증 한 장은, 이번 홍위병이 가택 수사를 한 뒤로 내가 찾지 못했네. 미안하다고 전해주게.

8) 부의 고모가 우리 집에 맡긴 장신구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과 동시에 홍위병이 가져가 버렸네. 그래서 예금증서 3(합계 370)과 소액 저금통장 세 장으로 배상할 수밖에 없네.

9) 매복의 셋째 언니 주순이 우리 집에 맡긴 장신구는 모두 헌납한 것으로 되었으니 대신 사과해 주기 바라네. 그리고 그녀가 맡긴 옷상자 두 개(3)는 잠시 차압되었네. 관련 부서가 개봉하고 나면 자네가 대신 수령하게. 가구 몇 개가 남게 되면 주국제에게 물어봐서 처리하게.

10) 내가 쓰던 남자용 손목시계 두 개(오메가와 다른 하나)는 원래 민과 ×××에게 주려고 하였지만 그들의 정치적 입장이 어렵게 될까 두려우니, 자네가 마음대로 처리하게.

11) 현금 53.30원은 우리 화장 비용으로 써주게.

12) 위층에 송씨가 빌려쓰고 있는 가구는 진숙도가 회수하도록 하게.

13) 기타 가구는 자네가 처리하게. 책과 글씨, 그림은 관련 부서의 결정에 따라 처리하게.

자네에게 수고를 끼치게 되어 정말 마음이 편치 않지만 달리 부탁할 사람이 없으니 이해해 주기 바라네.

196692일 밤

부뢰

주매복

 

공산주의 국가로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직전 동양에서 가장 코스모폴리탄이었던 상하이, 그곳에서 주로 프랑스 문학을 번역했던 국제인 푸레이의 유서는 단호하지만, 어떤 비장함도 슬픔도 없다. 일상적이고 사무적인 일을 부탁하는 듯한 이 유서는 그래서 더욱 더 슬프다.

1966년은 중국 내에 여전히 잔존하는 부르주아 세력을 타도한다는 명목 아래 실시된 문화대혁명의 열기로 뜨거웠다. 회의주의자이자 비판적 지식분자로 낙인 찍혔던 푸레이는 가택수색을 당하게 되고 거기에서 작은 거울과 퇴색한 옛 화보 한 장이 된다. 왜 저런 사소한 것들이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 작은 거울에는 장개석 얼굴이 새겨져 있었고, 그 화보는 장개석의 부인인 송미령의 화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발견된 상자는 푸레이의 고모가 맡긴 상자였고, 그 상자에 원래부터 저러한 물건이 들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푸레이는 끝까지 그 상자의 주인을 말하지 않았고 대우파분자(大右派分子)로 몰려 사형은 아니더라도 감옥에 가야할 신세였다.

그는 감옥에 가는 것보다 죄를 뒤집어쓰고 사는 시간이 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죄를 뒤집어쓰고 사는 시간이란 개인에 국한된 시간이 아니라 중국 전체에 대한 이야기로 들린다. 실제로 문화혁명 동안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모두 재갈이 물린 채 살아가게 된다. 말하는 것을 멈추게 하는 일, 당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사회, 이러한 사회에서 지식인은 죄가 있던 없던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삶을 푸레이는 단호히 거부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게다가 우리처럼 사회주의 이전 사회에서 흘러 들어온 찌꺼기들은 스스로 알아서 일찍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났어야 했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랬다. 푸레이는 192712월부터 4년 동안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서구의 자유로움, 그리고 그러한 서구의 한 귀퉁이를 옮겨다 놓은 듯한 상하이에서 푸레이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깊이 체화하였을 것이다. 그가 살아온 삶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1950년 이후의 삶의 방식과는 너무도 격차가 컸을 것이다. 정부1957년 반우파 투쟁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그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보다 인격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을 내려놓지 않았다. 1958, 푸레이의 아들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부총이 영국으로 망명하게 되자 그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자 즉 우파분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이후 재갈이 물린 비판적 지식인은 허무와 비관주의 휩싸였다. 그가 죽은 것은 1966년이나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이 영국으로 망명한 1958년부터 그의 죽음은 시작되었다. 그 죽음의 완성이 1966년일 뿐 그가 죽은 해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죽은 채로 살아온 자의 유서라고 해도 그의 유서에는 덧붙일 말이 있다.

푸레이는 유서에 자신의 억울함을 적극적으로 호소하거나 해명하지 않았다. 다만 유서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여 자신의 물건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가 명시하고 있는 것은 예금과 현금에 관한 것도 있지만, 가구와 시계에 관한 것들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것들은 이미 그의 일부가 되어버린 물건, 자신의 과거가 기입된 물건들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부르주아의 사적 소유에 대한 집착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전에 이미 그의 일부가 되어 있었던 물건이다. 그런 점에서 이 유서를 하나의 알레고리로도 읽을 수 있다. 공산화되기 이전에 형성된 자신의 가치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자유에 대한 신념, 이것은 바꾸거나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미 자신의 몸이 되어버린 사유와 사상들, 영국으로 망명한 아들까지 버려야 하는 사회, 결코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것들마저 버리게 하는 사회에서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주의 이전 사회에서 흘러 들어온 찌꺼기”였고, 홍위병 입장에서보면 그는 구제불능이었을 것이다.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화를 강요하는 변화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그러한 변화 앞이라면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사회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과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를 촉진하고 있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우리는 찌꺼기가 되고 말 것이다그러한 격변은 격변 전의 고요나 동요도 없이 순식간에 밀어닥칠 것이다. "迨天之未陰雨 徹彼桑土  綢繆牖戶(장마비 오기 전에 뽕나무 뿌리를 주워다가 창과 문을 칭칭 감는다)"고 한들 그 비를 그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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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과 전체 - 개정신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음, 김용준 옮김 / 지식산업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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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이젠베르크는 사물에는 어떤 '표상', 혹은 물자체(Das Ding an sigh)가 있을 것이라 믿으며, 자신의 경험에 의해 '표상'이 왜곡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경험을 날카롭게 가다듬어 대상에 가 닿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의 경험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세계까지 걸어가 양자가 인과법칙이 미치지 않는 다른 존재의 산물이라는 것을 밝힌다. 이것이 <불확정성의 원리>.

 

허나 그는 '표상'이 있다는 믿음 자체가 그릇되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현대 철학은 이 표면에 대해서 말한다. 원자의 표면을 뚫고 아무리 들어가봐야 거기엔 또 다른 표면 밖에 없다. 지젝의 말처럼 게임 프로그래머들이 배경 더 이상을 준비하지 않았듯 신은 표면 너머의 세계를 예비하지 않았다. 그러니 표면이 전부다. 이 표면에 심연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지젝은 이 만들어진 심연이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그 심연을 만드는 것은 이제 물리학을 위시한 과학의 몫이 아니라 인문학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행동하기 보다는 우선 멈추어야 한다.

 

만약 하이젠베르크가 원자의 실체 다가서려는 행동을 우선 멈추고, 다시 생각을 하였더라면 그는 나치에 부역했다는 오명을 듣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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