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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1월
평점 :
이 책은 면역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사실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신중하고 진지하게 면역과 의학에 대해 접근하여 매우 수준 높은 사유를 개진하고 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의학이나 과학에 대해 사용하는 언어가 야기하는 잘못된 인식의 문제, 또 백신과 관련된 정치적 문제, 그리고 의학의 상업화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 의사가 어머니를 폄하는 젠더 문제, 위생과 건강에 관련된 계급문제 등이 그것이다.
먼저 언어에 의한 인식의 문제에 대해서는 역사철학적으로 접근하여 그런 믿음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살피고, 그러한 거부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백신에 대한 선입견은 인간을 ‘위험군’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려는 이분법 사고 속에서 생성되었다. 병, 백신, 자연, 과학 등에 대한 은유가 현상을 직시하지 못하고 왜곡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자연은 순수하고 선하다는 인식이나 ‘위험군’이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그렇다. 우리 몸에서 이뤄지는 면역작용에 대해 전쟁의 은유를 사용하는 것 역시 이런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위생과 건강을 계급적 차원에서 바라봄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서다. 가난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처해진 사람들은 위험군으로 분류되었고, 그들은 대부분 노동자와 같은 하위계층의 사람들이었다. 당국은 이들에게 강제로 백신을 맞혔고 하위계층은 이런 강제적 집행에 불만을 표했다. 상위계층은 백신은 하위계층이나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의학의 상업화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문제다. 의학이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하여 상업화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한편으로 의학으로 생길 수도 있는 두려움을 자극하여 의학을 멀리하도록 만든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넷째, 이러한 의학의 상업화는 동시에 젠더 문제로 연결되는데, 의사들은 의료 서비스를 팔기 위해 어머니를 무지하고 더럽고 위험한 존재로 묘사하였다. 상업화가 아니더라도 염려하는 어머니와 무정한 의사들, 비합리적인 어머니와 합리적인 의사들과 같이 여성과 의사는 대립적으로 그려진다. 또한 이런 대립은 성차별적인 고정 관념을 낳는다.
마지막으로 백신을 비롯한 의학적 치료에 대한 거부 반응은 정치적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서구는 백신 실험을 위해 이슬람을 비롯한 제3세계 사람들을 실험대상으로 이용하기도 했고 그런 것들이 피해를 본 사람들은 의학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 책이 제시하는 대안은 이렇다.
어떤 백신이라도 특정 개인에게는 면역을 형성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인풀루엔자 백신 같은 일부 백신은 다른 백신들보다 효과가 좀 떨어진다. 하지만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백신이라도 충분히 많은 사람이 접종하면, 바이러스 숙주에서 숙주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져서 전파가 멎기 때문에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나 백신을 맞았지만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사람까지 모두 감염을 모면한다. 자신은 백신을 맞았지만 미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이 자신이 맞지 않았지만 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보다 홍역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은 건 그 때문이다.
미접종자는 자기 주변의 몸들, 질병이 돌지 못하는 모들에 의해 보호받는다. 반면에 질병을 간직한 몸들에게 둘러싸인 접종자는 백신이 효과를 내지 못했을 가능성이나 면역력이 희미해졌을 가능성에 취약하다. 우리는 제 살갗보다는 그 너머에 있는 것들로부터 더 많이 보호받는다. 이 대목에서 몸들의 경계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혈액과 장기 기증은 한 몸에서 나와 다른 몸으로 들어가며 몸들을 넘나든다. 면역도 마찬가지다. 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신탁이다. 집단의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웃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다.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하고 공동체의 윤리와 연대를 강조한다. 오염과 순수함, 천연과 인공, 불순함과 순수함으로 나누려는 발상의 위험에 대해 비판한다. 사람들은 안전해지기 위해서 배척해야 할 것을 만들지만, 그 배척의 대상은 과학적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극단의 한 부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의 중간에 존재하며, 그렇게 때문에 서로를 나누고 구분하기 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함께 연대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