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이링은 󰡔傳寄󰡕의 서문에 어서, 어서, 늦으면, 안 돼, 안 돼!”라고 썼다. 여기에서 그녀의 개인적 명예욕을 뚜렷이 읽어낼 수 있지만, 이 글에는 명예욕뿐만 아니라 어떤 고독감이 연결되어 있다. ‘시대는 기다리지 않고 갑자기 변화하며 더 큰 파괴가 도래할 것이며,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한 예감이 그녀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녀는 중국 전통극 벙벙시를 본 후 미래의 황무지에서 건물과 담장의 폐허 속에서는 오로지 벙벙시의 여주인공 같은 여자만이 의연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어떤 시대, 어떤 사회든 그녀를 위한 집은 존재할 것이다.”라고 썼다. 이를 통해 장아이링의 지적 배경 속에서 전통과 근대성이 항상 서로 병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아이링의 음산하고 우울한 인물들이 그녀의 소설에 왜 등장할 수밖에 없는지를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녀는 벙벙시의 여성들을 현대 속으로 아니 그녀의 내면으로 옮겨와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음을, 어떤 식으로든 살아갈 수 있음을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장아이링의 친구인 옌잉이 그린 󰡔전기󰡕의 표지는 퇴폐적인 대조를 잘 말해준다. 이 그림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이 앉아서 혼자 마작을 하고 있다. 그 옆에는 유모가 아이를 안고 앉아 있다. 그러나 난간 밖으로부터 침입해서 엿보고 있는, 불안정하게 위쪽이 더 여성의 토로소는 현대적 여성의 몸이다. 모던걸의 호기심 어린 응시는 지금까지 조용하던 규방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든다. 장아이링은 그것이 바로 내가 만들어 내고 싶었던 분위기라고 했다. 이 표지 그림은 전통과 현대, 역사와 소설, 당대(唐代)의 전기와 현대의 소설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장아이링의 반복된 고민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장아이링의 반복된 고민이란 서구문화를 중국문화보다 더 빨리 흡수하여 오히려 중국의 전통문화가 서양 사람보다 더 낯설게 느끼게 된 근대인들, 특히 그런 여성들, 남성중심의 전근대적 세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여성들, 그렇지만 몸은 여전히 전근대적 공간에 속박당해 있는 여성들, 혹은 그런 자신에 대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구여성은 난간을 등지고 앉아 아무런 동요의 빛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신여성의 마음은 그보다는 더 복잡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떤 경험도 전범도 없는 현대적 삶으로 내몰리면서,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오로지 자신에게서 답을 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구시대의 삶 속으로 머리를 디밀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여성은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지워져버렸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것, 아무런 표정 없이도 살아내야 하는 것, 아무런 감정도 표정도 없는데도 여전히 해소될 수 없는 과거와 온전히 근대적일 수 없는 경계인으로서의 신여성을 이 그림은 잘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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