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촌철살인: 하상욱의 시
서로가
소홀했는데
덕분에
소식 듣게 돼

이 시의 제목은? ‘애니팡’이다. 애니팡, 알만한 사람은 아는 그 게임! 게임에 필요한 하트를 얻기 위해 자주 연락 한 적 없는 친구에게 이 게임을 추천하는 ‘톡’을 보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이다. 정말 이 게임 덕분에 그 친구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하상욱의 애니팡이라는 시는 게임 때문에 연락하는 우리의 ‘우픈’ 세태를 꼬집는다. 하지만 이 꼬집음은 아주 살짝, 그러니까 ‘꼬집꼬집’의 수준이다. 그래서 그렇게 아프지 않다. 그냥 ‘정말, 그러네!’라고 생각하며 웃을 넘길 정도다.
그러면 이제 그의 시의 방식을 알게 되었다면 이 시의 제목은 뭘까?
①고민하게
돼
우리
둘 사이
②끝이
어딜까
너의
잠재력
제목을 말하기 전에 이 시를 쓴 시인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이 시를 쓴 시인은 하상욱이다. 시를 팔아먹기 때문에 스스로를 ‘시팔이’라고 부른다. 이건 욕도 아니고 욕이 아닌 것도 아니다. 하상욱은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 학과를 졸업하였다. 2014년 대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문학인으로 윤동주와 함께 5위에 올랐으며, 서울 시1은 10년 간 가장 많이 팔린 시집으로 4위에 서울 시2는 11위를 차지했다. 이외수를 제치고 온라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뽑혔으며, 각종 SNS에서 10만 개가 넘는 좋아요 개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부산경찰청은 하상욱을 홍보대사로 위촉하기도 했다.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시인이라 할 만하다.
그럼 위의 시의 제목은 무엇을까? ①은 「축의금」이며 ②는 「다 쓴 치약」이다. 그의 시는 아주 짧지만, 대상을 재치 있게 포착하고 있다. “이게/뭐라고//이리/힘들까”라는 시의 제목은 「메뉴 선택」이다. 오늘은 뭐 먹지는 만고의 너나 없는 고민이다. “니가/있기에//나는/힘을 내”는 「대출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빚을 갚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왜 하필/이곳에//왜 하필/당신이”의 제목은 「같은 옷」이며, “잘못된/선택//뒤늦은/후회”는 「내 앞자리만 안 내림」이다. 그의 시는 대상을 향해 강렬하고 정확하게 날아간다. 제목을 듣고 나면 절로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게 될 것이며, 하마터면 박수도 치게 될지도 모른다. 심하면 자려고 이불을 끌어올리다가 ‘빵’ 터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잘한 재미도 몇 개 있다. 이 시집을 펴면 다른 시집과 마찬가지로 ‘작가소개’와 ‘작가의 말’이 있다. 그런데 거기에 적힌 것은 글이 아니라 사진이다. 이렇게 말이다.

제일 아래에 제목을 적은 것은 충격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전략일 것이다.

잘 읽어보면 「애니팡」이 딱히 이 시의 제목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상욱 단편시집 ‘애니팡’ 中에서―”라는 표기의 중의성 때문이다. 단편소설집은 있어도 단편시집은 없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저 짧은 시가 ‘애니팡’이라는 시집의 일부인지, 아니면 애니팡이라는 시의 일부인지 알 수 없다. 어찌 되었든 그것이 일부라면 전체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서울 시는 시집이 아니라 하상욱의 시들 중 일부를 모아놓은 선집으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하상욱은 시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을 통해서도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이 웃음이 박장대소 할만한 웃음은 아니더라도 기특하게 기발하구나 이런 생각은 든다.
하상욱 시를 (시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촌철살인이다. 짧으면서 기발하다는 것, 이것이 이 시의 미덕이자, 이 시가 지닌 전부다. 그렇다고 하상욱이 단시(short poem)의 형식을 발견하거나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이라고 말할 순 없다.
2. ‘칸칸이 밤이 깊은’ 삶: 서정춘의 시
서정춘은 이미 오래전에 단시를 통해 한국현대시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으니 시를 보는 것이 좋겠다. 이것은 「끙!」이라는 시다.
누가 뒷일 보는 거다
소통의 방언이다
저 비음이 긍정적이다
―'끙!' 전문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라 ‘푸세식’ 화장실이라야 어울릴 것 같다. 그야말로 오래된 것과 새 것의 똥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힘을 주는 사람이 있다. 목젖을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코를 울리는 저 소리, 그냥 ‘끙’도 아니고 ‘끙!’이라니, 저 소리를 들었다면 아마 얼결에 박수를 치거나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소통이 절로 작동한다. 하상욱만큼 강렬하지는 않다고? 그러면 이 시는 어떤가.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30년 전―1959년 겨울」 전문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59년 겨울’에 시인은 고향을 떠나왔나 보다. 시인의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는 아들이 행여 고향으로 돌아올까 봐 걱정이었나 보다. 돌아오면 먹고 살기 막막한 이곳에서 가난은 대물림 될 것이 번연하니 말이다. 그래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을 고향으로 여기고 살라는 말을 했을 거다. 어린 손자의 손을 붙잡은 할머니 역시 아들의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말 밖에 할 수 없는 시인의 아버지와 시인의 할머니의 삶은 얼마나 지난했던 것일까, 어린 아이를 떠나보내며 이들은 소리도 없이 얼마나 크게 울어야 했을까, 그리고 30년 후 늙어버린 아이가 떠올린 이 말은 또 얼마나 그를 울렸던 것일까?
시인은 1941년 전남 순천에서 가난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가난 덕분에 매산중고 야간부를 다녀야 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한때 빨치산이었던 ‘외팔이 장씨’의 서가에서 정지용, 백석, 이용악, 오장환의 시를 읽었고, 구상 시인의 친구이자 동경 제대 출신 조율사인 ‘삐아노 최씨’에게서 정식 시인으로 인정받고 술상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의 시를 믿는다면 서정춘은 1959년 겨울 순천을 떠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무엇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거의 10년이 지난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등단은 했지만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취직을 하지 못한 채 전전하다 소설가 김승옥의 소개로 동화출판공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는 그 직장을 1996년까지 다녔고, 퇴직하면 쓸쓸해질 것 같아 그동안 써온 시를 묶었다고 한다. 등단 후 29년 동안 써온 시는 고작 70여 편, 그런데 거기서 다시 반을 버리고 35편만으로 시집을 묶었다. 1년에 한 편을 쓴 셈인데, 시에 대한 그의 결벽증이 대개 이와 같다(시인에 대해서는 1996년 이문재가 《시사저널》에 쓴 “등단 29년 만에 첫 시집 낸 서정춘”이라는 기사를 참조할 것.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07 검색일: 20141213). 이문재는 서정춘의 시를 “박용래의 따뜻한 서정(내용)과 김종삼의 ‘언어 경제’(형식)가 하나의 몸을 이루어 그 발뒤꿈치를 들어올”린 시라고 평했다.
서정춘과 하상욱의 공통점은 언어를 경제적으로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재치 있고 기발한 발상을 통해 충격을 준다는 것이다. 이때 충격은 지적인 충격 즉 인식론적 충격이다. 그런데 서정춘이 하상욱이 가지지 못한 미덕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이미지가 그것이다.
글쎄
산기슭에
홀아비가 살았더라
살다가 죽었더라
빈 집은 헐었더라
헐다가 내려앉았더라
싸리울 너머
배경만 어림잡아
허공 십만 평이더라-
―「글쎄」 전문
홀아비가 살았다는 산기슭의 빈집, 홀아비가 죽자 그 집을 헐었는데, 온전히 헐기도 전에 제물에 풀썩 집은 내려않았나 보다. 그렇게 내려앉은 집 너머로 허공이 십만 평이나 펼쳐진다. 그냥 십만 평도 아니고 ‘어림잡아’ 십만 평! 십만 평은,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왔을 홀아비의 쓸쓸한 내면의 다름 아닐 것이다. ‘홀아비는 외로웠다’라고 말하는 것과 그 외로움을 ‘어림잡아 허공 십만 평’이라고 말하는 것의 차이는 얼마나 큰가. 땅 십만 평은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혹은 어떤 나무나 집을 기준으로 저-기까지, 대략 그만큼이 십만 평일 게다. 그런데 허공의 여기서부터 저기까지의 기준은 무엇으로 삼아야 하나? 땅 십만 평과 달리 허공 십만 평은 시각화할 수 없다. 즉 홀아비가 가진 외로움은 짐작할 수 없다. 하니 ‘어림잡아 허공 십만 평’일 수밖에…… 지적 충격은 언어의 영역 안에 존재하는 것이어서 말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지가 부여하는 충격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 언젠가 신형철은 심상(心象)으로 번역되는 이미지(image)를 한자어로 바꿔 쓴 바 있다. “이 미지(未知)”가 그것이다. 이미지가 심상이긴 하지만 시에서 성공하는 이미지는 우리가 한 번도 감각해보지 못한 것, 한 번도 표현한 적 없는 것이어야 한다. 즉 ‘아직 알지 못하는(未知)’ 어떤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미지에 대한 번역으로서 “이 미지(未知)”는 탁월하다 할만하다.
서정춘의 죽편이 나왔을 때, 시단에서는 “죽편 읽어봤는가?”라는 새로운 인사말이 돌았을 정도라고 한다. 과장처럼 들리겠지만, 그의 시 「죽편1」을 읽으면 어쩌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죽편1―여행」 전문
자, 준비 되었다면 이제 여행을 떠나야겠다! 목적지는 대나무 꽃이 피는 마을이고, 교통수단은 ‘기차’다. 그런데 그냥 기차가 아니라 ‘푸른 기차’며 게다가 이 기차는 ‘칸칸마다 밤이 깊’다. 어찌된 영문일까? 이 시가 「죽편(竹篇)」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 기차가 실제의 기차가 아니라 대나무의 은유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는 마디져 있으므로 그 마디는 기차의 한 ‘칸’에 해당한다. 마디와 마디가 막혔으니 밤처럼 어두울 밖에……. ‘밤이 깊’긴 하지만, 그 어둠이 위험하다가거나 무서울 것 같지는 않다. 그 어둠은 까맣지 않고 푸를 것이다. ‘푸른 기차’의 밤이니 말이다. 이제 기차가 출발한다.
그런데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아차 그걸 말하는 깜빡하다니! (쯧쯧) 사실을 말하자면 일부러 그 말을 안했다. 기차가 출발했으니 이제 말할 수 있겠다. 자그마치 백년이다. (출발 전에 말했다면 당신은 이 기차에서 내렸을는지 모른다.) 대나무가 백년이 지나면 꽃을 피운다는 속설이 있다. 그렇다면 이 여행은 우리가 아는 식의 여행, 일상에서 잠시 벗어났다 돌아오는 그런 여행하고는 거리가 멀다. 시인은 대나무가 자라 대나무 꽃을 피울 때까지 즉 대나무의 일생 전체를 여행에 비유하고 있다.
여기서 조금 더 의미를 밀고 나갈 수도 있겠다. 여행이 대나무의 일생이라면, ‘대나무’는 무엇일까?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고 꼿꼿한 이 대나무를 시인 서정춘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대나무의 일생이란 곧 시인의 삶을 의미하지 않을까, (시인이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말이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거의 마흔 해를 타지에서 살아온 그의 삶, 그 고단하고 지난했을 삶을 ‘칸칸마다 밤이 깊’다고 말했던 것은 아닐까, 그 삶이 그렇게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푸른 삶’이었을 것인데, 그렇게 ‘푸른 삶’, 어떤 꿈을 간직한 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시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 ‘대꽃을 피우는 마을’이란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겠지만, 시인의 시가 만개할 어떤 시기가 아닐까. 고향을 떠나온 시인의 삶 전체가 여행이기도 할 것이며, 홀로 고학하며 시를 써온 시인의 시적 이력 전체가 여행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맑고 푸른 시를 읽고 나니, ‘아, 그 시 참 좋네’라는 생각이 든다.
3. 아, 이미지!
이 말을 해두는 것이 좋겠다. 청출어람이라 했던가! 이미지는 언어에서 나왔지만, 언어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인식과 우리의 빈약한 지식과 앎을 초과하여 작동한다. 이미지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을 간직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실 그동안 문학을 공부하는 일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문학은 그 모든 지위를 영상에게 빼앗기고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그런 문학을 공부하는 일이 죽은 자식의 불알을 만지는 것처럼 허망하게 느껴졌다. 이미지적 충격을 원한다면 영화를 보면 될 것이고, 지적 충격을 원한다면 철학을 공부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이 이미지가 나를 끌어올렸다. 언어가 만드는 이미지는 영상과 같은 직접적 이미지가 범접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언어가 만드는 이미지는 언어에서 나왔음에도 언어를 뛰어넘어 언어가 나아가지 못하는 지점을 점유한다. 철학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날아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언어가 만드는 이미지는 때로 영화보다 강렬하며 철학보다 똑똑하다. 이러한 이미지로 하여 다시 문학을 믿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