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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과학이 인간을 송두리째 활용하게 될 때, 과학에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영혼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라고 로맹 가리는 말하고 있다. 그는 이런 슬픈 말을 할 때조차 아름답고, 우리의 삶은 아프다.
자연은 사람을 배신하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다만 아름다운 자연에서 위안을 구할 뿐.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 하지만 시도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단순한 생리적 분비 현상으로 연구되리라. 과학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제압하고 있다. 오직 바다만을 친구로 삼고, 페루 해변의 모래언덕 위에 있는 카페의 주인이 되는 데에도 설명이 있을 수 있다. 바다란 영생의 이미지, 궁극적인 위안과 내세의 약속이 아니던가? 조금 시적이긴 하지만…… 영혼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야 할 터. 그것이야말로 영혼이 과학에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머잖아 학자들은 영혼의 정확한 피부와 밀도와 비상 속도를 계산해낼 것이다. 유사 이래 하늘로 올라간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하면 울어 마땅하다. 얼마나 막대한 에너지원이 낭비된 것일까. 영혼이 승천하는 순간 그 에너지를 잡아둘 수 있는 댐을 건설했다면, 지구 전체를 밝힐 만한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었으리라. 머잖아 인간은 송두리째 활용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