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와 위트를 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즐비한 비유들 속에서 과장적 발언들과 기발한 발상 속에서 불쑥 불쑥 솟아오른다.

 

웨이터가 그릇을 치우려고 오자 나는 함메르페스트에는 여가 삼아 할 일이 뭐가 있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우체국 옆에 있는 전화번호부에 불붙이는 건 벌써 해보셨지요?”

물론 웨이터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가 입을 떼려고 하는 찰나 구석에 있더 외로운 형씨가 웨이터에게 소리쳤다. 무슨 욕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마 이런 내용인 듯했다.

거기 순록인지 술독인지 옷이랍시고 걸치고 다니는 눈 째진 동양 놈아, 빨리 주문 좀 받지, 동작이 왜 그리 느려 터졌어?”

웨이터는 내 접시를 가져가다 말고 포크가 들썩일 정도로 도로 털썩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씩씩면서 그 남자에게 냉큼 다가간 후 손님의 팔과 어깨를 부여잡고 아주 힘겹게 문으로 질질 끌고 가더니 그를 번쩍 들어 올려 눈 오는 길거리로 내동댕이쳤다. 내 자리로 돌아와서도 아직 붉으락푸르락 하는 얼굴로 흥분이 가시지 않은 그에게 나는 말했다.

설마 모든 손님들한테 나가라는 길을 저렇게 알려주는 건 아니겠죠?”

그러나 그는 농담을 주고받을 기분이 아니어서 화가 난 채로 바로 돌아갔다(발칙한 유럽산책, 39).

 

티머시 페리스가 은하수에서의 성숙에서 잘 묘사한 것처럼, 기욤 르장티의 경우는 더욱 운이 없었다. 르 장티는 인도에서의 관측을 위해서 1년 전에 프랑스를 떠났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금성이 지나가는 날에도 여전히 바다 위에 있어야만 했다. 출렁이는 배 위에서는 연속적인 관측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최악의 장소에 있었던 셈이다. 르 장티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인도에 도착해서 1769년에 다가올 다음 기회를 기다렸다. 8년이라는 긴 시간을 가지게 된 그는, 최고급 관측대를 세우고 장비를 점검하고 또 점검하면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두 번째 통과가 일어났던 176964일의 날씨는 맑았지만, 금성이 통과하기 시작하면서 태양을 가리기 시작했던 구름은 금성이 완전히 통과할 때까지 정확하게 3시간 147초 동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장티는 겨우 냉정을 되찾아서 장비를 챙긴 후에 부근의 항구로 가던 도중에 이질에 걸려서 거의 1년 동안 누어 있어야만 했다. 지친 상태로 겨우 배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배가 아프리카 해안에서 만난 허리케인에 의해서 난파되어버렸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상태로 돌아왔을 때는, 그의 가족들이 이미 사망신고를 하고 그의 재산을 나누어 가진 후였다(거의 모든 것의 역사, 68~69).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조롱과 빈정거림이다. 그럼에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거기에 어떤 악의가 끼어들 자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러한 위트와 유머가 대상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는 그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찌 사람을 웃길 수 있겠는가. 울음은 온전히 나의 감정에 충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만, 웃게 만드는 것은 나를 너머 사람과의 연대를 포기하고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절망에 빠져 있던 맨텔은 자신의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해서 입장료를 받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상업적인 활동이 과학자로는 물론이고 신사로서의 명성도 잃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는 결국 사람들을 무료로 입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수백 명씩 떼를 지어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관람객들 때문에 그와 가족들의 생활은 완전히 망가졌다. 결국 그는 빚을 갚기 우해서 수집품의 대부분을 팔아버릴 수박에 없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어려움의 시작에 불과했다(거의 모든 것의 역사, 99).

 

나는 의사에게서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정말 따분한 곳에 가서절대 안정을 취하라는 처방이라도 받은 환자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

그러다 보니 은퇴 후의 삶이란 게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심지어 산책 다닐 때도 조그만 메모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매일의 동선을 무의미한 일기로 남기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지가 은퇴 후에 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는 매일 산책을 다니다가 동네 슈퍼마켓의 스택 코너에서 점심을 드셨다. 지나가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조그만 공책에 일기를 쓰고 계셨다. 돌아가신 후에 보니 이런 공책이 벽장에 가득 들어 있었다. 그 공책은 모두 이런 일기로 채워져 있었다.

‘14. 슈퍼마켓까지 걸어감. 디카페인 커피 두 잔 마심. 날씨 좋음.’

이제야 아버지(가 일기 쓰시던) 기분을 알겠다(발칙한 유럽산책, 42).

 

심각하고 진지한 상황에서도 유머와 재치가 뒤섞여 있는데, 어떤 이질감을 느낄 수 없다. 그것은 아마 그의 통찰과 깨달음이 유머와 재치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로라는 때때로 서쪽에서 환하게 명멸하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는 장난이라도 치는 양 뒤쪽에서 순식간에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나는 오로라의 궤적을 따라가기 위해 계속 빙글빙글 돌거나 몸을 비비 꼬아야 했다. 한 뼘의 하늘이라도 변화를 놓치지 않고 따라잡으려 해본 사람이 아니면 하늘이 얼마나 광활한지 상상할 수 없다. 섬뜩한 점은 그 변화가 모두 쥐죽은 듯 조용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려면 하는 낮은 소리나 정전기 소리라도 나야 할 것 같은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 거대한 에너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하나 없이 소진되는 것이다(발칙한 유럽산책, 45~46).

 

우리가 머리를 들면 볼 수 있는 하늘은 우주에서 놀라울 정도로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모두 합쳐서 6,000개 정도이고, 그중에서도 한 곳에 서서 볼 수 있는 것은 2,000개 정도에 불과하다. 한 곳에서 쌍안경을 이용하면 5만 개 정도의 별을 볼 수 있고, 소형 2인치 망원경을 사용하면 30만 개 정도를 볼 수 있다. 에번스가 쓰는 것과 같은 16인치 망원경을 사용하면, 별의 수가 아니라 은하의 수를 세게 된다. 에번스는 집 마당에서 5만에서 10만 개 정도의 은하를 볼 수 있었고, 각가가의 은하에는 수백억 개의 별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숫자들은 모두 믿을 만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초신성은 지극히 드물게 나타난다. 별은 수십억 년 동안 타고 나서 한순간에 빠르게 죽어버리지만, 폭발하는 별은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새벽에 장작불이 꺼지듯이 조용히 사라져버린다. 수천억 개의 별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은하에서도 초신성 폭발은 200-300년 만에 한 번 정도 일어난다. 그러므로 초신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 올라서서 망원경으로 맨해튼을 둘러보면서 스물한 살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이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거의 모든 것의 역사, 47).

…………

에번스에 따르면, “나는 우주공간을 통해서 수백만 년을 지나온 빛이 지구에 도착하는 순간에 누군가가 하늘의 바로 그곳을 쳐다보고 있다가 그것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 정도의 사건이라면 당연히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어야 하겠지요.”(거의 모든 것의 역사, 49)

 

그래서 그의 글에는 젠체하는 자의 거들먹거림을 느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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