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잘 쓴 소설과 잘 쓴 비평 

    여기에는 총 일곱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이것을 읽고 소설 한 편당 하나의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이것을 칠일 동안 읽어 일주일 전 그날의 시간으로 되돌아오자 작품집의 메커니즘이 궁금해졌다. 이 소설집을 딱히 읽을 필요는 없었는데, 해설을 쓴 한 비평가의 권유로 읽게 되었다. 그는 내가 잘 썼다고 생각하는 소설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 그래서 요즘 소설이라고 불릴 만한 것을 아주 오랜만에 읽게 되었다. 권유자의 말에 따라 잘 쓴 소설이 무엇인지를 선별하게 되었는데 잘 쓴 소설로는 <우리는 매일 오후에>(박솔뫼)와 <상행>(황정음)을 뽑기로 한다. 그 이유를 말하고 싶어 죽겠으나 오늘은 좀 바쁘니 그리고 되도록은 바쁠 것이니 이에 대한 이유를 쓰는 것은 비겁하지만 생략하도록 한다. 대신 잘 쓴 해설에 대해서 말해야 겠다. 황현경의 <그들의 개체발생학적 기원>이 그것이다. 이 해설들에 대해서는 일갈해야겠다.

 

    2. 수학경시대회 예상문제와 해제집

   이 작품집 전체에 대한 느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수학경시대회 예상문제와 해제집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작품을 고른 비평가들 책임이 크다. 심사경위에도 나와 있지만, 이 작품을 뽑아 준 사람은 총 7명의 젊은 비평가들이고, 이들이 총 열여섯 편의 작품을 추어 올렸다. 젊은 비평가들은 자신들이 아니면 도저히 풀 수 없는 그런 수학 문제를 찾듯 작품을 골라 낸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자신들의 안목, 비평능력에 대한 잣대이기나 한 것 마냥, 심사위원들에게 내가 이렇게 어려운 작품도 읽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시위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 작품집이 이왕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당연히 잘 쓴 해설은 가장 답에 근접한 해설을 쓴 비평가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질문을 잘한 해설자에게도 후한 점수가 주어져야 한다그러면 이들이 찾아낸 문제와 답을 확인해보자. 

 

해설자

작품

문제

평가

신샛별

<거리의 마술사>

(김종옥)

1. 남우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교실은 남우의 빈자리가 상흔처럼 돌올하게 새겨진 세계로, 종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변모할 것이다.”

문제: ×

: ×

이재원

<절반 이상의 하루오>

(이장욱)

2. 하루오는 어떤 존재인가?

“‘절반 이상의 하루오의 삶은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형식 속에서 외로운 공중을 버텨야 하는 모든 삶에 대한 몽타주이자 애도로 다가온다.”

문제:

: ×

이소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김미월)

3.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왜 종말이란 사건 앞에서 무덤덤하게 반응하는가?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서, 그리고 파국이라는 결정적인 사건을 스크린 삼아 투사하는 영상은 어쩌면 불확실한 미래의 비극이 아니라 소극처럼 무심하게 지나쳐버리는 오늘의 비참, 바로 그것이다.

문제:

:

정실비

<상행>

(황정음)

4. 시골이 어쩌다 이렇게 변해버렸나?

자본의 무정한 힘이 도처에 뻗쳐 있다!”

문제: ×

: ×

이학영

<과학자의 사랑>

(손보미)

5. 고든 굴드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든 굴드가 과학자로서 평생 동안 주력한 중력장 연구의 결과는 기실 자기 자신이 몸소 살아온 관계’, 혹은 사랑의 역학에 대한 정확한 반영이었음이 밝혀진다.”

문제:

: ×

황현경

<당신의 피>

(정용준)

6. 이 소설은 의 피에 대한 계보학인가?

결과적으로는 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또한 에 대한 질문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아버지로부터 에게로 흐르는 피의 계보학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악이라는 배아로부터 성체에 이르기까지의 발생과정을 추적하는 개체발생학이다.

문제:

:

박인성

<우리는 매일 오후에>

(박솔뫼)

7. 경험 없는 세대가 맞이한 파국 이후의 세계란 어떤 것인가?

문제를 반복하고 있음

문제: ×

: ×

 

 

   3. 상세평가

   1번 문제를 푼 신샛별은 이미 존재하는 사실이 어떻게 감각화 되는가?”를 물어야 했다. 혹은 남우의 빈자리가 상흔처럼 돌올하게 새겨진 세계로, 종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변모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해야 했다.

   2번 문제를 푼 이재원은 질문은 옳았으나 답이 틀렸다. 이재원은 하루오를 경계를 벗어난 초월자 정도로 있다. 하지만 하루오는 이재원 스스로 지적하였 듯 외부인이다. 외부인이란 그러한 초월자가 아닌 경계인이며, 문턱을 밟고 선 존재다. 이재원은 이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모르고 있으며, 이 두 개념을 섞어쓰고 있다.

   3번 문제를 푼 이소연은 질문과 답을 모두 맞혔으나, 답글의 전체 포인트가 틀렸다. 자신이 맞는 질문을 했는지, 맞는 답을 한 것인지도 모르고 있다. 이소연은 우왕좌왕하며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격으로 그렇게 질문과 답을 맞혔다.

4번 문제를 푼 정실비는 이 소설의 핵심에 완전히 벗어나 있다. 문제가 틀렸으니 답이 맞을리 없다. 여기에 대해서라면 심사평을 쓴 김인숙과 남진우를 참조하라. 둘 다 잘은 모르고 쓴 듯 하지만 말이다.

5번 문제를 푼 이학영은 문제는 맞혔으나 답을 틀렸. 그리고 곧잘 오독하고 있다. 고든 굴드의 삶은 일종의 난센스이자 코메디다. 왜냐하면 그는 평생 오차를 극복하려고 헤맸으나, 그것이 사실 오차가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비비안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에밀리 로즈라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오해였다. 자신이 진리라고 믿었고 경도되었던 뇌엽절제술역시 진리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러한 난센스 같은 인물의 삶을 어정쩡한 문체로 풀어 쓴 손보미를 신수정은 꾸짖어야 했다.

   7번 문제를 푼 박인성은 문제와 답을 틀리긴 하였으나 매우 중요한 경험을 지적하였다. 권희철식대로 해석한다면 가장 분명한 답이 될 것이다. 하지만, 김화영이 지적한 어떤 불안 속의 정다움같은 것에 대해서는 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점에서 이들이 경험 없는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설명했더라면 더 근사한 해설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경험 없음의 의미를 분명히 알았더라면, 경험 없음이 만들어내는 양면성에 대해 깊이 알았더라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박인성은 공부가 더 필요하다.

 

  그렇다면 6번 문제는...

   6번 문제를 푼 황현경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고 정확한 과정을 통해 그 답에 이르고 있다. 어쩌면 이 소설집을 수학경시대회 예상문제집으로 만들어간 장본인은 아닐까 의심을 해본다. 그래서 소설은 없고 문제와 답만 존재하는 이상한 문학상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칭찬할 것이 아니라 사실 철퇴를 내려야 한다. 그런데 이를 심사위원들이 조장했고, 황현경이 이에 가장 잘 협조한 것인지도 모른다. 단연 압도적인 정답수를 자랑하는 권희철을 필두로, 남진우, 신수정이 그러한 배후가 아닌지 의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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