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진자 1 - 개정판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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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푸코의 진자]의 초판, 2판, 개역판 모두 보았다. 그 중 제일 좋았던 것은 2판이다. 개역판? 개악판이다. 그나마 원작의 가치 때문에 별 셋을 줬다. 원고를 누가 타이핑했나? 책이 나오도록 퇴고도 한 번 하지 않았나? 어떻게 '있음'이 나올 자리마다 '있슴'이 박혀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이것은 내가 산 책이 파본이라서 그런가? 3권 841페이지에서 842페이지로 넘어갈 때, 개역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남색 같은 것은 문젯거리도 아니었다. (문단 바뀜, 페이지 바뀜, 챕터 바뀜) 디오탈레비가 물었다. '이런! 아직도 지자기류의 가마를 찾아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시는군요. (이하생략)'>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가? 디오탈레비가 무슨 질문을 했기에 까소봉의 대답이 나오는가? 2판을 보면 여기서 디오탈레비의 질문이 잘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단하군! 그런데 지자기류의 가마를 찾아서 무엇을 할 수 있지? 맥주라도 만들 수 있나?'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산 책이 파본이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같은 장의 앞뒤이다. 다른 장으로 넘어가는 부분도 아니고, 페이지가 통째로 잘리거나 바뀌어 붙은 것도 아니다.

2판과 개역판의 차이는 g의 음가를 이탈리아식(자음이 뒤따라오면 g는 묵음이 된다)에서 독일식(위치에 상관없이 g가 소리난다)으로 바꾼 것과 (알리에->아글리에, 깔리오스트로->까글리오스트로) 판형을 줄이고 양장본으로 만들었다는 것밖에 없다.

열린책들이든 한길사든 요즘은 출판사마다 책을 이렇게 작은 양장본으로 만드는 게 유행인가? 튼튼하기는 하겠지만 옛날의 A5크기보다 불편하다. 책이 작기 때문에 가방에 넣으면 이리저리 쏠려 상하고, 책장에 꽂으면 위로 아까운 공간이 많이 남는다. (그곳에 다른 책을 가로로 집어넣으려니 눌려 상할까봐 못하겠다) 책상에 펴 놓으면 양장본이므로 페이퍼백처럼 편하게 펴지지 않는다. 멀쩡한 책을 절판시키고 판형만 바꾸어서 값을 올려받는, 마누찌오 출판사 같은 수작은 그만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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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고무줄 2005-02-0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의견에 120% 동감합니다. 도대체 무슨 번역이 이따위식인지.. 장미의 이름에서 느꼈던 좋은 감정이(역시 이윤기씨 번역이었져) 깡그리 무너져 내리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출판사가 더 밉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