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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을 구워냅니다
김나을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글은 업체로부터 상품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올해 첫 책인 《천개의 파랑》을 읽고 소설의 여운이 가시던 차에,
또 다른 소설을 읽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소중한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다른 사람과 따뜻하게 나눌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 아닐까
P.77
할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 주인공 유운의 전환점,
한적한 시골에 차려진 '행복 과자점'에서 점점 자기다움을 찾아간다.
각자 사연이 안고 있는 귀농 가족 소율이네, 김윤오, 도영이 그리고 숙자매 할머니들...
행복 과자점의 하루하루를 보며
어느새 나도 과자점 한쪽 구석에 앉아있었다.
그 순간 유리창에 비친 얼굴이 너무 무채색이라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건조하지. 그냥 매일매일 건조하기 짝이 없어. 그게 전부인 일상.
P.79
자신 역시 몇 번이나 시험에 떨어졌는데도 단념하지도 포기하지도 못 했으니까. 그런 자신이 부끄럽게만 했다. 이 상황에서 도망 갈 출구를 찾지 못한 나약한 역시 한심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루 안에는 흐르고, 아침에서 저녁으로 또 저녁에서 아침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이 길엔 나를 위한 풀 한 포기 없는 길인데 왜 걸으려고 애쓰고 있는지. 오래전 일들이 마치 어제 같고, 바로 어제 일이 전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필사해놓은 시를 다시 읽자,
이 시를 처음 만난 날이 바로 어제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다만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 것이 지금은 그리 아프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로 다 지나간 일인 것처럼.
P.132-133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한 사람의 몫을 해내고 싶어 아등바등했던 20대의 내 모습이 보였다.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그럴싸해 보이는 그 자리에 앉으려 노력했던 그때 점점 무채색 일상의 출퇴근길의 우리와 닮아 있었다.
“…전 어렸을 때 만해도 부모님과 이모들이 엄청 큰 어른처럼 느껴졌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 저희 엄마도 고작 삼십대 초반 이었더라구요. 제가 삼십 대가 된다고 해서 크게 어른스러워질 것 같진 않은데 말이죠. 전 아직도 저를 키우는 것도 힘들거든요. ”
P.207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저마다 하나씩 구멍을 갖고 산다고.
P.296
어렸을 때는 우리 엄마는 어른은 뭔가 특별하다란 생각했지만,
되돌아보면 엄마도 삼십 대 초반이다.
그 나이가 되면 나도 진짜 어른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도 부족하고 여전히 아이와 같은 마음이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 란 고민 속에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
“스물아홉, 참 예쁜 나이잖아요.근데 저도 그 땐 그걸 몰랐어요. 그냥 서른을 앞두고 두렵기만 했어요. 그게 후회가 돼요. 그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 하고, 한참 이나 불안하기만 했던 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나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땐 그랬어요. 사장님은 지금 스물다섯이 부러운 나이라고 생각해요? 사장도 지금 누군가에게 살아가고 싶고, 부럽고, 또 갖고 싶은 나이예요.”
P.336-337
과거에 좀 더 열심히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며
지금 내 나이가 뭔가 시작하기엔 늦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때이다.
그 나이에 누릴 행복과 즐거움을 지나서야 깨닫게 된다.
생각이 많아 질 때면 원두를 직접 갈아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리기 좋아했다.
잘 볶아진 원두를 한참 집중해 잘게 가루를 낼 때면, 어지럽게 널브러진 수많은 생각들도 잘게 갈려 나가서 머릿속이 말끔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으니까.
P.80
운은 오랫동안 발이 닿지 않는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만 같아서 늘 불안 했다. 하지만 그렇게 거쳐온 모든 불안이 운에게 스스로 헤엄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P.392
유운의 막막함과 고민에도 원두를 조용히 갈며 생각을 고르고,
다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걸어간다.
게다가 생활 로맨스까지 힐링이다.
책을 다읽고 나니, 작년 말에 김영하 소설가 특강에서 했던 그 한마디가 생각났다.
"소설은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 되어보지 못한 사람의 삶을 살게 한다. 그곳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이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으며, 그것이 현실을 버티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때론 현실에 지쳐 에너지가 바닥일 때,
한번 읽어보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