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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동서대전 -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한정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평점 :
[서평] 글쓰기 동서대전
글쓰기란 무엇인가? 생각을 토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토하고, 사람을 토하고, 시대를 토하는 것이다. 토하면서 자신을 더럽히고 세상도 더럽히는 것, 그것이 글쓰기다. 왜 더럽혀야 하는가? 그 동안 깨끗이 정리되었다고 믿어왔던 것들을 의심의 걸레로 닦아내면서 흔들려야 하기 때문이다.
위 글은, 「글쓰기 동서대전」을 읽으면서 계속 되었던 질문, 즉 ‘왜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다. ‘글쓰기’로 분류된 책들을 30여권 정도 읽었다. 무슨무슨 글쓰기, 누구누구의 문장론 등. 그러나 글쓰기는 다시 닦기 위한 토(吐)함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은 이 책을 읽고 난 후다. 글쓰기가 번호 매겨진 어떤 기교나 절차를 지켜서 가능하다면 우린 아마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번호는 관념의 막연함을 만회해 보려는 전략이지만 씁쓸함만 더 한다.
약 70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 그러니까 잘못하면 시간과 정력의 소비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예상이 경험에 비춰볼 때 당연했다. 그래서 스킵(skip)하면서 서평을 쓸 생각이었다. 허나 막상 목차를 보니 만만치 않았다. 구성도 새롭고 알찼다. 왜 700페이지가 필요한지 공감이 되었다. 읽으면서 건너뛰기는커녕 곰곰이 생각하면서 머물러야 할 문장이 많았다. 인용된 글들이 박지원, 이탁오, 루소, 니체, 나쓰메 소세키, 베이컨, 루쉰, 괴테, 쇼펜하우어 등의 것이니 더 말해 무엇 할까.
글쓰기 동서대전을 통해 글쓰기 전략을 배웠냐고 누군가 질문한다면, 나는 자신있게 말하겠다. 그런 것은 결단코 없노라고. 토(吐)하는데 무슨 비법이 있겠는가? 저자는 동심의 글쓰기, 소품의 글쓰기, 풍자의 글쓰기, 기궤첨신의 글쓰기, 웅혼의 글쓰기, 차이와 다양성의 글쓰기, 일상의 글쓰기, 자의식의 글쓰기, 자득의 글쓰기라고 소제목을 달았다. 그러나 그것은 글쓰기의 전략 따윈 없다는 등불을 밝히기 위한 어둠에 불과하다. 다양한 등산로가 표시된 게시판을 처음에야 눈여겨보지만, 정상에 올라 운해를 바라보는 순간, 그 게시판이 기억나지 않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그럼, 정상에 올라 운해를 바라보는 듯한 글쓰기를 저자는 뭐라 하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미쳐야 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어린아이처럼 놀면서 쓰고, 쓰면서 놀고, 일상이 기적인 것처럼 경이롭게 보이고, 그래서 남들의 시선은 온대간대 없고, 스승과 시대를 맞지 않는 옷처럼 미련 없이 벗어버려 이 우주의 단 하나의 의미로서 잠깐 그러나 영원히 반짝거리는 별 같은 글. 그것이 바로 쓰기라고 한다.
그런 불가능한 쓰기를 누가했냐고? 저자는 우리나라 17, 18세기의 문필가들 예컨대, 이덕무, 이익, 박지원 등을 필두로 내세운다. 그들뿐일까? 중국, 일본 그리고 서양의 대문호들의 대표작들을 적절하게 발췌․요약하면서, 저자만의 시각으로 통찰력 있게 풀어냈다. 책 제목 그대로 「글쓰기 동서대전」 답다.
책이 두꺼워진 이유는 저자가 글쓰기 대가들의 인용문을 포기하지 못한 탓이리라. 글쓰기 비법이 어디 있나? 지금까지 읽히고 있는 동서고금의 문장들을 많이 봐야 할 것 아닌가? 조그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늘어났으리라. 그냥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가? 왜 이들이 글들의 이토록 생명력이 긴지를 나름 꿰뚫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엄청난 작업을 저자는 매우 훌륭하게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목적에 맞게 간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명문장들을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더 읽고 싶다. 덕분에 읽는 도중 휴대폰을 꺼내들어 소개된 책들을 주문하는 일이 잦았다. 우스운 말로 다단계 책이다. 자꾸 책을 읽고 싶게 만들고, 사게 만들고, 뭔가 쓰게 만드는 마법 같은 책이다.
꼭 한 번 읽고, 읽으면서 뭔가 써보길 권한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없다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내 옷, 내 밥, 내 집은 그렇게 자랑하면서 정작 내가 사는 이야기가 없다면 뭔가 수상하지 않은가?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 남편, 아내, 직장 동료, 이웃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글이 없다면, 혹시 어디가 크게 아픈 것은 아닐까? 정작 첨단장비로 정밀 진단해야 할 곳은 내 몸이 아니라, 마음 아닐까? 그 마음이 아프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기에, 난 그 동안 글을 쓰지 못했으리라. 문제는 기교가 아니었다. 끼워 팔리는 삶, 1+1 판매 행사처럼 얹혀사는 삶, 내 삶 자체가 문제였다.
주말 이틀을 통째로 투자했다. 전혀 아깝지 않다. 오히려 저자의 다른 책도 하나 더 구해 읽었다. 글을 쓰고자 고민하는 사람들은 꼭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책 때문에 아팠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픈 시대에 맞서는 면역력이 생기길 바란다. 그들이 쓴 책들이 누군가를 건강하게 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