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1 -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 50인 이야기, 전2권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6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성규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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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누구인가? 국어사전은 영웅을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으로 설명한다. 사전이 옳다면, 영웅을 영웅답게 만드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무지와 무능 그리고 비겁함일 것이다. 영웅은 보통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탄생한다. 비교는 비교기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므로 어떤 기준을 선택하느냐는 사실, 비교하는 사람이 사전에 어떤 결과를 염두하고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렇다면 플루타르코스는 자신의 영웅전에서 어떤 결과를 의도하고 50명을 선택했을까? 플루타르코스가 이 책을 쓴 시기를 통해서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A.D.105~115년에 쓰여 진 것으로 전해진다. 로마가 가장 넓은 영토를 갖게 되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메소포타미아 원정이 A.D.117에 완료된 점을 상기해볼 때, 영웅전은 로마의 가장 전성기에 쓰여 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로마 제국의 최전성기, 그것도 비교 형식의 영웅 전기를 아무런 집필 목적 없이 썼다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쉽게는 조선의 용비어천가를 떠 올릴 수도 있겠다. 잘 나가는 제국을 찬양하기 위한 용도로 로마 건국의 아버지인 로물루스부터 역대 황제들과 장군들을 나열했다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체계는 그렇지 않다.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을 서로 비교한 뒤, 그 비교 결과를 적고 있다. 예컨대 1번 그리스의 건국자인 테세우스, 2번은 그에 걸 맞는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 3번은 로물루스와 테세우스의 비교. 1, 2. 3번의 삼단 구조는 하나의 세트인 셈이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는 총 50명의 영웅이 등장하니까 모두 25세트가 있다고 보면 쉽다.

 

그럼 이제 쟁점은 플루타르코스가 왜 이런 세트 형식을 취했는가로 옮겨진다. 플루타르코스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면 그의 속셈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그리스 출신이다. 그리스 최고 지식공동체인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했고 로마에서 철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또한 원로원의 의원 등 로마의 유력인사들과 교분을 나누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명을 받아 지방 행정관을 지냈다. 이렇게 로마에서 잘 나갔던 그는 아폴론의 비의종교에 입문하여 만년에는 델포이의 신관과 가깝게 지내면서 신탁 해석자로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요컨대 그는 그리스의 정신으로 로마의 전성기를 산 사람이다.

 

그리스의 정신이란 민주주의와 인문주의로 집약된다. 그리스의 정신으로 보았을 때 로마의 전성기는 마냥 위대한 것만은 아니다. 로마는 일단 황제정이다. 원로원을 통한 견제가 가능했지만 황제라는 1인 체제가 제국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로마는 제국이었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 확보가 절실했고, 세금 확보와 군사력 증가로 연결하기 위한 강력한 행정력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의 도시국가와 같은 자생적인 다양성을 보장하기는 어려웠다.

 

플루타르코스가 볼 때 로마의 물질적 풍요는, 그리스의 도시국가와 같은 수많은 인문적 다양성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의 영웅을 찬양 일색으로 채색할 순 없다. 아폴론의 비의종교에까지 입문하고, 신탁 해석자로서 생을 마감했다면 그는 뼈 속까지 그리스인이었을 것이다. 그리스의 눈높이로 볼 때 로마의 정치, 사회, 문화를 리드하던 황제와 귀족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수준은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니었으리라 쉬이 짐작된다. 결국 영웅전의 삼단 세트 형식은 그리스 정신의 자존심을 세우면서 로마 상류층에 성찰과 자각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때는 로마의 전성기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위대한 업적들이 눈앞에 엄존한다. 플루타르코스가 아무리 뛰어난 그리스 정신의 화신이라고 하더라도 그리스의 영웅들 또한 무턱대고 칭송할 입장이 아니었다. 삼단 세트는 최전성기의 제국에게 일침을 주되 트집 잡힐 핑계거리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고도의 전략인 셈이다.

 

이러한 전략을 바탕에 깔고 책을 읽어나가면 영웅전의 재미는 배가된다. 그리스인다운 철학과 로마인다운 가치관이 상호 교차하면서 묘한 질문들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은 변하는가, 믿음 또는 배신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그리스의 지식인으로서 로마를 살아가는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는 내내 예수의 족보를 설명한 마태복음 1장이 생각났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의 족보를 추적하면서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갇혀 있는 인간의 한계를 지리하게 반복하는데, 영웅전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영웅들도 태어나고 죽는다. 그들은 신비한 탄생, 남다른 용모와 능력, 고난을 통한 운명의 발견, 고난의 극복과 뛰어난 성취 따위의 전형적 구조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실수하고 배신하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하는 인간적인 면모까지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신의 조상이건 영웅이건 인간이라면 태어나고 죽는다. 그러므로 의미 있는 삶이란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방법대로 사는 것이리라.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나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나의 무지와 무능 그리고 비겁함과 얼마나 대결하고 있는가?

 

이 책은 비록 원본의 영역본을 다시 국역한 것이지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2권으로 완역해 냈다. 두 권을 합쳐서 거의 2,000페이지에 이른다. 막중한 분량이지만 기존의 그리스-로마 신화나 만화로 된 영웅전을 읽었다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번역은 매우 만족스럽다. 물론 번역가의 역량이 뛰어난 덕분이겠지만, 아서 휴 클러프가 7년 동안 개정 작업을 한 영역 원본의 탄탄한 번역도 한 몫 했다.

 

천병희 선생님의 역본과 만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은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 책들이 놓치거나 각색했던 부분들이 새롭고 알차게 전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깔끔하게 두 권으로 완독하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독하게 읽은 보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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