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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 (완역판) - 그리스도 이야기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47
루 월리스 지음, 심은경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16년 9월
평점 :
지구상에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종교는 모두 세 가지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이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강력히 주장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점은 왜 중요할까?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의 후손이란 의미다. 하나님께 선택된 인간! 이만한 삶의 명분이 또 있을까. 그래서 이들에게 ‘누구의 아들’이란 이름은 살아야할 명분 그 자체다.
벤허는 ‘허의 아들’이란 뜻이다. ‘허’(Huh)는 성경에 등장하는 ‘훌’의 영어식 발음이다. 훌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아말렉이라는 이방 민족과 전쟁할 때 모세를 도왔다.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쟁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임에 분명하지만 우스꽝스럽게 전개된다. 모세가 팔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지만, 내리면 진다. 훌은 아론과 함께 모세의 팔을 떠받쳤다.
소설 벤허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계시받은 동방박사 세 사람의 신비로운 만남 장면에서 시작한다. 벤허는 예수가 태어난 로마시대를 살고 있다. 모세와 허의 관계처럼 그리스도와 벤허 또한 만나게 될까? 만난다면 언제 어디서 일까? 이방인과의 싸움터일까? 로마는 아말렉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구약의 그리스도로 불리는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예수도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할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다투어 이겼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한 민족이다. 하나님과 싸워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가 그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했다면, 그건 분명 하나님께서 일부러 싸움에서 져주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리라. 이스라엘은 곧 하나님의 배려요, 용서하심의 증거자로 이 땅에 존재한다.
벤허도 마찬가지다. 자기이름 없이 그저 누군가의 아들로 불린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처럼 그도 누군가의 배려와 용서를 보여주기 위해 살아야 함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벤허의 삶은 그야말로 한 순간 우연한 사건을 통해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스라엘의 명문 귀족 집안의 도련님에서 사랑하는 어머니, 아직 어린 여동생은 고사하고 자기 몸조차 보호할 수 없는 노예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비극은 로마 총독 머리 위로 떨어진 기와 조각에서 비롯되었다. 어쩌면 인간의 비극적 운명이란 중력이 만든 우연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켈리선의 노예. 노예는 배가 움직이도록 노를 젓는다. 그러나 배가 어딜 향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북소리에 맞춰 같은 노동을 반복할 뿐이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매일 같은 노동을 한다. 그러나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른다. 같은 면이 있다면 모두 죽음 앞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왜 죽어야만 하는지는 묻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만을 질문하다가 결국 죽는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은 자로 태어난다. 노예는 죽은 자의 근육이다.
죽은 자의 근육에 불과한 노예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 사랑은 노예가 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노예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따지지 않는다. 거저 준다. 계산하지 않는다. 이런 사랑만이 진정한 자유를 만든다.
문둥병은 인간이 본래 죽은 자로 태어남을 보여준다. 하늘로부터 버려진 존재. 그래서 땅의 노예로 살면서 하늘을 그리워하는 인간.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어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된 가장 솔직하고 건강한 몸, 그것이 문둥병자다. 벤허는 어머니와 동생이 문둥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절망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죄 없이 대신 죽는 하나님의 피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영혼의 구원자마저 속세의 억압을 타파할 전략적 대상으로 삼는 인간.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죽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살아난다. 버려진 자로 살아가는 인간들을 자신의 몸 안에 넣어 구원한다. 진짜 인간은 자기 몸을 열어젖힌 사랑으로 창조된다. 반면, 하나님은 인간의 도움을 필요치 않는다. 모세의 팔은 훌이 떠받쳐야만 버틸 수 있었을까? 모세의 팔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다. 어쩌면 모세의 팔이 땅으로 떨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만의 승리가 꽃처럼 피었으리라.
벤허가 영화인 줄만 알았다. 영화사에서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전차경기는 더 이상 짜릿하고 황홀한 승리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복수하려는 인간 본성이 문둥병마저 치료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대비를 이룬다. 피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큰 승리를 거머쥐어도 인간은 언제나 문둥병자에 불과하다.
눈을 떼지 못하고 읽었다. 이 책은 상세한 풍광과 인물 묘사까지 놓치지 않고 번역해 원작의 완성도를 그대로 전달했다. 소설 벤허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사랑과 복수 사이에서 문둥병처럼 감출 수 없는 죄악이 어떻게 치료되고 용서받는지 느꼈다. 인간은 믿지 못할 존재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