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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한국고전문학사 - 상고부터 조선까지, 단군부터 홍길동까지, 2016년 개정증보신판
류대곤.김은정 지음 / 미다스북스 / 2016년 9월
평점 :
형식은 얼마나 중요한가!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하지만, 뚝배기와 장(醬)은 일단 잘 어울린다. 하지만 된장뚝배기에 담긴 최고급 와인을 생각해 보라. 상상만 해도 인상이 구겨진다. 제대로 뭔가 되려면 기본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도우미들도 꼭 필요하다. 특정 개인을 만족시킬 목적이라면 더욱 그렇다.
서평을 쓰면서 형식 타령부터 하는 이유는 이 책이 학생시절 수도 없이 봤던 참고서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편집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딱 읽기 싫었다. 삽입 그림과 좌우에 나열된 주석도 그렇고 무엇보다 제목자체가 교과서 그 자체였다. 그제야 제목에 ‘청소년을 위한’이라는 수식어와 ‘임용고시필독서’, ‘수능국어필독서’가 왜 책 표지에 크게 있는지 알게 되었다.
40대 하고도 중반. 시험용 참고서처럼 편집된 한국고전문학사를 읽는 기분은 묘했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얼마 전에 읽었던 한국 신화의 재미 덕분이다. 고전문학은 신화에서 풀려나와 보다 예술적으로 다듬어진 형태다. 특히 고대 가요, 향가, 한시, 설화 등 소위 상고 시대의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는 쏠쏠하다. 구지가, 공무도하가에서 학생 땐 느끼지 못했던 원초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큰 딸 말처럼, 시험을 보지 않기에 느끼는 행복일 게다.
그렇다. 독서에 본령이 있다면 행복일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노래했던 삶의 맛을 느끼는 행복, 이것이 이 책의 본령이다. 인용된 원문을 여러 번 읽었다. 짧지만 감동은 길었다. 오늘날 전혀 쓰지 않는 단어들은 긴장감을 자아냈지만, 입에선 꿈틀꿈틀 리듬이 느껴졌다. 머리가 맑아졌다.
나는 허난설헌을 좋아한다. 그녀가 지은 ‘규원가’의 한 토막이다.
“도로혀 풀쳐 혜니 이러ᄒᆞ여 어이ᄒᆞ리. 청등을 돌라 노코 녹기금 빗기 안아, 벽련화 한 곡조를 시름 조ᄎᆞ 섯거 타니, 소상야우의 댓소리 섯도ᄂᆞᆫ ᄃᆞᆺ, 화표 천 년의 별학이 우니ᄂᆞᆫ ᄃᆞᆺ......"
맞춤법이 틀렸다고 빨간 밑줄이 아우성이지만, 흐뭇하기 그지없다. 참 좋다. 맞다. 나는 이런 행복을 위해 이 책을 읽겠노라고 손을 번쩍 들었다.
읽다보니 왜 진작 이렇게 고전문학을 공부하지 못 했나 아쉽다. 참고서와 비슷한 편집 때문에 읽기를 거부하는 중년 남자는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시험 중심의 공부에서 해방되어 큰 소리로 우리 조상의 글을 읽는 재미는 우리 민족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감수성이 만발했던 그 때 그 시절에 이렇게 옛 글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기출문제가 아니면 그 가치를 몰랐던 그 때가 너무 아쉽다. 조상님께 송구하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다시 편집해서 중년들을 위해 소개하는 건 어떨까? 시장성이 많이 떨어지려나. 책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를 한다면 어렵겠다. 하지만 중년들의 입속에 춤출 우리 옛 글을 생각해 보면 한 번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을까.
덕분에 추억여행을 했다. 게다가 흥얼거리면서 옛 사랑과 정취에 흠뻑 취했다. 편집자에게 깊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