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스 해밀턴의 그리스 로마 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13
에디스 해밀튼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왜 신화를 만들었을까? 인간은 좀처럼 불확실성을 참지 못한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는 설명욕구를 만들었고, 설명욕구는 이야기를 낳았다. 그 어떤 사건이던지 이야기가 되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설명된 사태는 인간을 위협하지 못한다.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번개, 풍랑, 일식, 화산폭발 등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자연현상까지 신이 되고 이야기가 되었다. 인간은 이야기로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예상했으며, 결국 안정 속에서 현재를 살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 중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단연 독보적이다. 그리스라는 인류 태초의 이성과 로마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오래된 문명이 함께 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인간만의 독특한 정신과 문명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신과 영혼만을 찬양하거나, 물질과 육체만을 향락하지 않는다. 전쟁과 살육, 배신과 암투의 현상인 고대 국가에서, 정치공동체를 형성하고 운영하기 위해 꼭 필요했던 정치, 경제, 종교, 사회, 예술적 형식과 내용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특히 에디스 해밀턴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영어권에서 신화의 기준이 되는 책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단행본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다양한 이야기가 여러 형태와 버전으로 각 지역에 흩어져 있다. 따라서 이런 다양성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가 쓴 서론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의 등장과 함께 인류는 우주의 중심이며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것은 가히 사고에 있어서 혁명이었다. 이전까지 인간은 하찮은 존재로 생각되었다. 그리스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인간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헤라클레스는 괴물들과 맞서 싸웠으며, 그리스가 인간 위에 비인간적으로 군림하는 기괴한 사상으로부터 세상을 해방시켰듯이 세상을 괴물들로부터 구했다.”


생각하는 인간에게 자유는 가장 중요한 권리다. 당연히 신화를 구성해 나가는 핵심 원리 중 하나다. 이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들도 죽는 이유다. 그들도 한계가 있다. 어떤 일은 할 수 있지만, 어떤 일은 할 수 없다. 신이라고 불리지만, 히브리의 유일신과는 달리 전지전능하지 않다. 어딘가에 묶여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신이다. 왜냐하면 자유를 위해 도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은 인간정신의 다양한 특성들을 인격화한 셈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신화가 탐난다. 신화 속엔 나이 듦에 따라 발견되는 인간의 진면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을 핑계대면서 자신의 욕망과 한계를 조율하고자 했다. 현실과 이상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화해시키고자 했다. 제우스, 헤르메스, 아프로디테 등은 이러한 조율과 화해의 흔적들이다.


현대지성은 좋은 번역자를 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탁월한 원전을 충실한 번역이 지지해 주니 나 같은 게으른 독자에겐 더 없이 행복한 일이다. 언어의 장벽이 기존 생각의 틀을 넘어 또 다른 의미를 불러내는 기회가 되도록 애써준 번역자에게 감사드린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신화관련 명화와 조각상 사진은 흥미를 높이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무시할 수 없는 두께의 서양고전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국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출판사의 마음 씀에도 고개 숙여 사의를 표한다.


일리아스부터 만화까지 신화를 담은 책들은 많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조를 쉽게 파악하면서 깊이 있는 설명까지 얻을 수 있는 책은 흔치 않다. 혼자서 소파에 기대 앉아 편히 만날 수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더욱 드물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처음 도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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