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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생활자의 삶. 스물여섯에 삼십 만원을 타서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간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취미생활과 기호식품, 교통비 정도를 쓰는 것이다. 언제까지 나는 이런 생활을 해야 하나. 이런 유의 삶을 지난하다고 한다면 마땅한 형용사를 활용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런 생활의 저변에 외로움과 쓸쓸함이 깔려있다. 그야말로 진중한 고독이다. 이제는 서먹하지 않은 감정이다. 인간이 감성에 따라 행동하는지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만일 그러그러한 감성을 느끼면, 인간의 의식은 그 감정의 화살을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이성에 대해서는, 감성적 편린들을 거부하는 형태를 띠는 이성의 화살은 우리 생의 방향성을 이끄는 배의 선장과도 같은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이성 역시 또 다른 측면에서는 감성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감성이 사태이고 이성이 사유라면, 당연지사 이성을 설계하는 것은 감성이겠지만, 역으로 이성 역시 감성을 설계하는 것이다. 어쩌면 서른부터는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니, 이성이 감성을 내포할 것이다. 하지만 감성에는 표현의 문제가 있다. 이성은 감성의 폭을 외면적인 차원, 현상학적 차원인 나타남에 있어서는 폭을 늘리거나 줄인다(과장과 소침). 이리하여 이성의 질적 차원에 대해 살펴보자면, 피상적이고 즉흥적인 이성은 임기응변이거나 패턴적인 행동구조에 가깝고,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이성은 지혜이다. 하지만 의식의 문제에 있어서, 아니 의식이라는 구조적 인식의 종합적 장이 객관적이라는 사실을 그 누가 논필할 수 있으랴. 그러니까 우리가 사회에서 부딪기며 살아가거나 반면 혼자서 독고 한다 해도, 상처는 남는 것이고 세월은 역마살이 종말을 맞은 것처럼 한 공간에 머무른다.

 

우리의 생은 개별적인 것이고 존재자로서 지남하는 바는 타자의 외부에 있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타자이다. 이 나무, 저 사람, 심지어 친구나 가족까지도 결국에는 파경에 이르거나 사별할 운명이다. 그리고 나 역시 죽을 운명을 타고났다. 즉 동일자인 나는 오로지 산다는 것(과정)에만 의지해야 한다.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비로소 내가 그들과 진정으로 섞여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분명 안도의 순간일 것이다. 마침내 동일자와 타자는 과정으로서의 생과 어우러져 천천히 부드럽게 녹아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달리 말해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한갓 유행이 아닌 연대관계가 상징하는 철학 같은 것이다. 오직 시대정신만이 혼자라는 것에서 자유롭거니와 고독에서 해방시켜 준다.

 

창가를 바라본다. 점멸하는 햇살의 점묘. 나는 항상 바깥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것을 좋아한다. 타성에 젖은 사람의 무리, 그들을 역겹게 생각하는 나와 동시에 역겨움을 지긋이 응시해야 하는 나 사이, 그러니까 그들이 역겹다는 사실을 주조한 나라는 기조와, 내가 안고 있는 역겨움의 기조 사이, 이러한 이중화된 이면들의 양극화된 간극, 이것이 바로 후설이 주장한 의식의 현상학적 차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러한 무의미한 것과, 내가 문예와 철학 즉 언어라는 숭고한 신비에 대해 말하자면 이러한 유의미한 것 사이를 가로지르는 청명한 햇살과도 같은 생각의 질주를 존재자의 인식론적 이유인 코기토(cogito)와 등가적인 것으로 반성적인 규정을 한다는 것이다. 하기야 어떤 환멸적인 상황에 빠질 때면, 나는 인위적인 생각의 전환을 모색했다. 그러나 만일 사물 자체로가는 것이 아니라 사물 밖에서 사물의 변화를 논한다, 이를테면 부정적인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사고하자!’는 외침을 자기에게 전가한다면, 그것은 자기기만이거나 그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즉슨 코기토라는 데카르트적 인식은 현상학에 있어 과녁의 정 가운데를 겨냥하는 것이다. 반면 사물 그자체를 향하는 방법론은 아이러니하게도 (목적과 다른 결과의 진행)을 따르고 있다. 그것은 아도르노(부정변증법)적 데리다(해체론)의 능선을 타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상학적 층위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층위가 칸트의 초월론적 가상으로 환원되어 일심동체의 형태를 띠는 것이다.

 

해는 점차 서쪽으로 기울면서 사영(射影, 수학적인 의미)을 그리고 있다. 모든 형태와 사랑에 빠지는 것 역시 원본의 모사에 매달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논리적인 질서의 구획을 잡기. 과연 언어가 그자체로 의미가 있을까? 언어가 언어일 수 있다는 것은, 각각의 낱말과 문법의 구조적 차이를 구성하는 논리적 질서가 심급으로서 대상화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가령 지시체를 내포하고 있는 하나의 낱말이 그 의미론적 특성을 지시해야한다면 주변 모든 것(전체)과의 차이적 연결 즉 차연에 의거하는 것, 이른바 그러한 복잡미묘한 논리적 특성을 띠어야 한다는 것. 아도르노가 말했듯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그 대상을 둘러싼 주변을 정확히 포착하면서부터, 말하자면 전체적 배경을 탐색하면서부터, 겨냥하고 있는 사물(대상, 인과-과정과 결과+작용과 반작용, 객관적-물리적 물, 존재자, 인식으로서)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구체적인 인식은 태산명동서일필에 다름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해 완전한 이해를 음미한다는 사실은 그것 자체, 그 순수한 개별자만을 단독으로 놓고서 관찰하기에는 불가능하다. 하여, 앞서 말한 논리적 질서란 전체를 매개한 차연의 요해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한 개인의 생도 개별적으로는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은 전체와의(세계, 특히 공동체와의) 매개를 통해 진행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헤겔의 전체성과 매개의 개념이, 하이데거의 세계 내 존재의 개념이,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의 개념이 한 개체의 기투의 과정의 근간을 관류하고 있음을 이론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정말이지 세계와 삶의 문법에 종속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종속에 유한한 이상 논리적인 질서는 우리가 이해파악하지 못했을 뿐이지 도처에서 마치 신처럼 대변되며 일련의 개체적 한계를 암시하는 듯하다. 그것은 물리적인 한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개체 이상으로 방사선처럼 뻗어나갈 수 없는 개체적 지의 한계이다. 하나의 사실은 그 어떤 위대한 사유도 개체적인 지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한 개체가 다다를 수 있는 정신이 과연 무한할까? 그리고 우리가 공통개념에서 사유의 기반을 건설하는 이상, 그리고 언어가 의사소통의 장이라는 사실에 의거하여, 의사소통의 문헌학인 학문의 세계에서 볼 경우, 물론 한 지식인이 이를 계승해 발전시켜 자신의 이론을 개설한다면 이것은 일종의 지적 징검다리이자 기념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존주의의 입장을 좀더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개별적 주체의 극한의 기투는 전적으로 지적 교착상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학문이라는 공통개념의 파노라마, 이른바 정신적 의사소통의 장의 가외에 있는 것으로 비롯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범위도 어떤 개인적-사회적 범위 즉 인류적 범위 이상으로 도약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를테면 이것은 기나긴 질곡을 가진 연속성적 역사성의 인식론적 중핵인 인류적 지, 이른바 유적 지다. 또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역사의 시간성에 밀려들어가면서 시간의 상속자에, 그런 반면 시대적 가지성에 유폐된 가련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학문의 실증주의적 역사성 즉 학문의 문명적 특성에 대립되는 한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개별자적 가지성의 한계이다. 전자는 통시적인, 후자는 공시적인 존재이다. 그러니까 역사는 최소한 인류가 담보하는 전체이고, 나아가 주체적으로 거대하면서 장대한 인식자인 인류의 지성은 실증주의가 빚은 명확한 증명의 총체, 즉 인류역사가 구성하는 진보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도리어 이 모든 것이 쌓여간다는 생각에 우리가 율동할 수 있는 가능성은 상상 이상으로 거시적이다. 하지만 나라는 개체는 여전히 시대적 시간성에 괄호치기 되어있다.

 

양주에서 보낸 7, 그리 좋은 삶이라고 자랑할 수 없는, 하지만 언젠가는 알려야 할 것이고 내 삶의 도정에 뚜렷한 질료가 될 것이다. 아마도 회구해보자면, 이 어두운 곳에 들어와서 나는 많은 젊은 패기와 한을 품었던 것 같다. 이 대자연에서 나는 나의 운명 속에서 자유의지란 나의 지식과 사유 말하자면 정체성 같은 것이고 항상 자기극복과 초월을 통해 비록 관념적인 삶을 살았지만, 내 삶의 특이한 궤적은 그것대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생이 길다고 생각한다. 무척이나 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인간이 늙는다면 인간은 인생의 여분을 사는 것이다. 그는 기능적이고 무의미한 인물로 변화한다. 중요한 것은 젊었을 때, 즉 청년기라는 정상에 있을 때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자기가 다다를 수 있는 최고도의 지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성이라는 말은 단순히 글자 그대로를 뜻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예술도 포함되고 재능도 함의하고 있고, 이런 개념들에는 본질을 산다는 개념이 내재되어 있다.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은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젊었을 때로 한정된다. 여분의 늙은 삶은 생각할 가치도 없다. 오로지 정상에서 달리는 삶(정상이라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열정이 가장 큰 시기를 말한다)을 꿈꿔야 한다.

 

날이 저물고, 나는 약 봉지에서 원형으로 된 자이프렉사 10mg를 꽁초 담는 통에 던져, 녹여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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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시적으로 표현하기. 미학에 관한 시론을 실성한 듯 잘난 체하면서 주절대는 것(구성하는 이성)에 더해서 진정한 아름다움(작품)과 함께하면서, 미학이 가리키는 대상으로서의 손이 즉 미학을 구성하는 언어가 대상으로서의 사물 그자체’(구성된 이성)와 현동화 되어, 구체적인 지식과 시학이 동질적인 비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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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바깥에 나갔다. 시야가 확 트였다. 멀리서 지하철이 오기 전 저 너머에서 불빛이 번쩍이며 연속적으로 우리를 비추듯이 가을 정오의 자명한 햇살이 비친다. 이렇게 확연한 현실태는 더 이상 자신이 환영의, 그림자의 세계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 즉 특권적인 장 비로소 실존론적 차원에 입문하는 하나의 계기와 같은 것이다. 이 계기가 바로 투기적 분노의 임계점을 지나서 곧바로 돌직구처럼 가차 없이 육박하는 끓어 넘치는 용광로와 같은 열정의 단초다. 이런 단초의 무수한 임의들을, 즉 사고들을 슬라이드 도형 식으로 무수한 노에시스를 만든다면, 그리고 이 노에시스들을 합친다면, 그제 서야 이는 노에마가 정초하는 순간을 개시하는 것이다. 이야말로 막을 수 없는 한 개인에 대한 지적 상승에 대한 축복에 대한 상징이다. 이러한 도정이 바로 현상학의 가장 기초적인 화두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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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걸었다. 덕계역사 위에 입구가 있는 개 같은 자전거 도로를. 이 끝이 없는 아스팔트를, 널 부러져 있는 개들을 보며, 그리고 이제는 조잡하게 느껴지는 지루한 푸른 하늘을 보며. 야생화들이 양주의 구석진 변경에서 자란다. 자전거도로의 짜증날 정도로 많은 자전거의 행렬, 솔솔 불어오는 무심한 바람. 그리고 세월의 풍파가 스며들어 있는 서글픈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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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 그러니까 독신자의 생활에 익숙해진 것이다. 나는 이제 혼자인 것이 전체인 것을 직시한다. 그는 사회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그는 정확한 의미에서 개인이다. 그러나 의문이 스친다. 사회 없는 개인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한 개인이 탄생하려면 마땅히 사회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출생을 비롯하여 인류가 다른 종을 절멸시키고 지구를 풍요로 물들인 것도 고도로 발전하는 사회에서 말미암은 것, 즉 사회야말로 역사 그 자체며 공동체는 역사의 수레바퀴의 도처를 가리키는 지표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개인’, 그것은 사회 밖에 머무는 지자, 문학적인 묘사가 논리적인 층위를 뛰어넘는 차원에서의 지평에서의 개인, 존재론적 완성을 나타내는 개인 즉 존재자에서 존재를 추출해낸 종합적 지혜의 지식인, 그러니까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전범을 나타내는 한 개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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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하철을 탔다. 역시 진지해지고 싶으면 밖에 나가 전철을 타고 의정부 시내에 가는 것이다. 의정부는 너무 화려하게 변모했다. 신세계 백화점에, 50개가 넘는 다층 커피체인점들. 신시가지 쪽으로는 끝없는 고층건물들이 있고, 경전철은 무시무시한 첨단을 표상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만 산 지 14, 이곳은 내 고향과 같은 곳이다. 비록 앞에서는 양주에서 더 오래 살았다고 했지만 그것은 양주에서의 삶이 평생으로 이어지리라는 확신 때문에 그런 것이다. 아마 난 양주에서 평생을 보낼 것이다. 의정부는 양주 바로 옆에 있다. 그리고 난 의정부든 양주든 둘 다 잘 개발되어 주요도심으로써 화려하게 지도를 수놓았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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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역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때는 범죄와 깡패 유흥의 도시라고 불린 의정부. 하지만 어느덧 유망한 도심이 되어버린 이곳. 나는 차 살 돈이 없었으므로 걸었다. 지하철을 탄다는 것은 언제나 피곤한 일이다. 나는 제발 하루빨리 차를 사서 지하철에서 탈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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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어간 곳은 스타 벅스. 원래 싼 개인카페를 선호하는데 의정부에는 개인카페가 거의 없다. 그래서 가장 선호하는 체인점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요즘 커피체인의 커피 값은 사기에 가깝다. 그들은 엄청난 돈을 챙긴다. 쁘띠부르주아들과 부르주아는 솔직히 말해 재산불리기의 90퍼센트는 커피체인에 의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발견한 커피체인은 진짜배기 블루오션이었다. 피시방이라든지 노래방은 댈 것도 아니었다. 20원으로 몇 초 만에 7천원 벌기.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성황을 이룬다. 하루 수익금만 몇 억. 그들에게 다른 사업 분야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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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카페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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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한적하다. 종업원에게 카페라떼 6Shot ICE 대자를 시켰다. 커피 내리는 소리와 묘한 이명소리, 사람들의 무의미한 발성음이 무식하게 섞여 공간을 채우고 있다. 나는 알 수 없는 무망감을 느낀다. 청바지에 하얀 추리닝을 입은 주인장이 커피를 가져온다. 커피의 향기와 혀로 느낄 수 있는 맛, 그리고 몸이 지각하는 맛은 알 수 없는 이국의 그것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했던 사실이지만, 우리의 현대화적 과정은 곧 서구로의 직진이었다. 우리는 서구의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문화를 비롯한 악습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빌어먹을 시대에 뒤쳐진 민족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내가 인식하는 건 서구의 지적 전통의 체계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정작 우수한 한문과 일본어, 한글의 집약체인 한국어를 완벽 개조해야한다는 외적 필연성을 담보하는 바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당위성이 혼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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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커피 한 잔에, 나는 미시적인 위화감을 느낀다. 곧 이 미시성은 가시성으로 치환된다. 국가는 한국어, 한글에 대한 정립을 새로 개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는 수많은 학자들, 요컨대 기호학자와 국문학 교수들 그리고 모든 외국어 전공자들이 힘을 합해 제도적인 한국어에 메스를 가해 더 풍요롭고 문법적으로 우수한 한국어를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언제까지나 보이지 않는 손에 국어문화를 내맡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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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자신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날 일어난 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승하건 하강하건 지속적으로 회전하면서 성숙해지고 진보하는 자신의 사고의 공전을 언어적 형식으로 묘파한 적 관점으로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 역사적 관점이 인류학적인 것과 학문적인 것에 비례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주지할 수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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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우리는 세련된 지적인 명사들을 화용론에 의거하여, 그리고 좀더 많은 명사, 고유명사, 대명사, 등을 만들고 구문론이 일신해야 하는 구조적인 한국어의 틀을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가령 미국식으로 문법구조를 과학적으로 고치자는 게 아니라 데리다의 차연개념에 의거하여 비스무리하면서도 완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고유명사와 문법적 구조를 완전히 한국어폭발의 전회처럼 끝없는 가지치기 나무처럼 문법자체를 확대 개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만연체는 깔끔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고, 빈곤한 문체를 가져 난해한 철학적 글들을 마치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처럼 하나의 서사시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인문의 아카데미즘과 문예예술을 진흥시키기 위해서 정부예산의 15조를 할당해 박근혜는 교수들에게 하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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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커피 잔은 비어있다. 마치 우리네 한국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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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내를 걸었다. 언제나 버거킹, 스타벅스, 앤젤리너스 커피, 탐앤탐스, 파스구찌, 맥도날드, 피자헛, 도미노 피자, 차이니즈 레스토랑인 지동관, 롯데리아, 홀리스 커피, 그 외에 이름들은 기억이 안 난다. 어떤 장군 동상이 있고 중앙로가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백화점 쪽에서 시민의 편의를 위해 돈을 부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생커플들의 행진. 여자 쪽을 쳐다보면 왠지 눈이 시리다. 다만 쓸쓸한 감정에 휩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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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한 상실감에 흐느꼈다. 생에 처음 성인 남자가 되어 운 눈물 중 가장 깊고, 가장 멀리 다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지나간 얘기, 단지 고통 속에서 점철된 작은 이야기를 소고할 뿐이다. 내가 결국 우울증에 걸리게 된 것은 어떤 사고(事故)들이 쉴 틈을 주지 않고 연쇄적이면서도 동시적으로 벌어져 나의 숭고한 영혼을 역겨운 현실에 처하게 했다. 나는 무간지옥에 있었고 살았어도 죽어있는 인간이었으며 이런 이유들로 인해 나는 무엇보다 자유론에 대해 궁구하게 된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탐색은 곧 인간실존에 대한 탐구다. 정말 존재한다는 것, 작위적이거니와 비당위적인 것이 아닌, 자신의 본질을 도구라고 이름지울 수 있는 것들, 요컨대 (연애·오디오 생활·독서·철학적/문학적 글쓰기)같은 것에 몰두하는 것, 그러니까 살아있다는 느낌이 곧 영혼이 누리는 특권적인 실존의 영역이며 해석학적 시도로서 생성된 대자태적 차원에 존속하는 기의의 유위(현상계, 실제세계). 반면 본질에서 즉자태의 차원에 있는 기표의 유위(시뮬라크르). 이들의 해석론적 차이는 마치 존재자에서 존재를 추출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이리하여 전자는 본질의 실천이고, 후자는 현상 너머의 물자체, 즉 형이상학적인 것들이 개시한 관념론이 정초한 문헌학의 계보가 나타내는 눈부심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다면 형이상학은 데리다적 기표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좀더 배움에 가까워지는 그때에 즉흥적으로 논하기로 하자. 따라서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는 사르트르의 언명은 존재론사를 두루 보아도 논리적으로 자명타당한 것이다. 그는 이 언명의 자세한 풀이를 존재와 무에 필설함으로써 예의 언명(화두)을 통시적인 전개요소에서 눈이 아리도록 위엄 있는 공시적인 거대담론을 창시했다. 즉 후설이 창안한 현상학은 그자체로 하나의 혁명적인 선험적 엄밀학이었는데 어디까지나 헤겔의 주저 정신현상학현상학적 요소 즉 나타남에만 주목하여 이를 극한까지 밀고 나아간 것이다.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말이다. 즉 그는 현상학에 순수성이라는 개념어를 집어넣으면서 현상학이라는 관념적 총체를 그의 선배가 규정한 것과 다르게 좀더 추상적이고 선험적이거니와, 세밀한 주체적 인식론의 쾌거로 만들어버렸고, 이원론을 집어삼킨 일원론을 굵직한 틀로써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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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면 후회가 복받친다. 모든 과거의 편린들은 후회로 전체화된다. 모든 것이 후회 안에 있다. 토머스 하디의 말처럼 현재에서도 과거가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다면, 그것은 이미 과거가 아니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결국 후회의 감정으로 귀결된다. 후회는 언뜻 과거로의 복귀를 전제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되돌릴 수 없다. 만일 과거가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무한히 반복된다고 한다면, 우리 역시 똑같은 선택,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되돌려야 된다는 뜨거운 감정이 용솟음치는 것, 다시금 고등학생 때로 되돌아가 다시 새로운 삶을, 청춘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감정의 회전의 회전을 넘어서 강하게 폐부를 찌른다. 나의 몸짓, 생에 주어진 시간을 나는 은빛 날개, 결국 생의 약동은 자유의지만이 불을 지필 수 있는 것이었던가? 우리가 가진 것은 현실이 아니라 생각, 의지 같은 것인가? 마침내 고결한 생각만이 덩그러니 오래된 관념처럼 영원토록 내면이 늙어버린 우리 안에 살고 있는가? 결국 할 수 있는 건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독백뿐인가? 나는 소리를 죽이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곤 멈출 수 없는 흐느낌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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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슬픔과 비애에 매개된 각종 말할 수 없이 내밀한 범주들이 기마병처럼 창을 들고 말을 타며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면, 나는 그것들을 시간의 시차(視差), 그러니까 시간 속에서 현성하며 유위변전 하는 과거 생의 파노라마를, 소급의 형식을 빌려 그 장구한 나 개인의 역사적 입체성에 통시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소급이 아니라 단순한 시민성으로서의 반추도, 회상도 좋다. 어떤 것이든지 나 자신의 정체성이 도대체 그 윤곽을 따질 수 없이 무진한 상실감의 연쇄에 미친 듯이 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하기야 나의 폐부는 구조주의의 실천과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공존의 공간에 분배된 변별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 즉 폐부에 분배된 감수성은 로크적 변별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rassion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구체적인 인간이 맛볼 수 있는 비애와 슬픔의 편린들, 즉 절대적인 고독, 외로움, 쓸쓸한 감정 등이 단 하나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잠도 못 자게 생각의 종횡무진의 궤적을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원론적인 현상학적 나타남은, 좌우지간 내가 미친 듯이 가족이 듣지 않게 소리를 죽여 흐느끼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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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또 걸었다. 나는 혼자였다. 불빛들이 휘황찬란 도시를 물들였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오직 중학생 커플들, 고등학생 커플들, 갓 스물을 넘긴 커플들만이 자신들이 생에 정점에 도달해 용렬하고 기운차며 자신들이야말로 직선의 시간, 혹은 시간이란 직선 안의 현전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포부를 가진 대가적 자긍심을 갖는다. 목하 그러한 자긍심을 가진 소녀, 소년이 걸으면서 서로 사랑놀이를 하는 차원이 실존적인, 특권적 권리의 최고도에 도달해 있다. 이것이야말로 특권의 가장 중심적인 차원, 즉 방탕한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matrix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존주의는 언제나 그렇듯 순간적인 것에서 영원성을 궁구하는, 예술적 삶의 희귀한 것들을 가늠하여 최상의 질로 선회하는 것, 이른바 절대적인 질로써 무한한 양을 도출하는 방법, 따라서 이것은 시간을 초월하는 자유의 영원성이요, 그리고 예에서 말했듯 자유는 젊음과 패기나 도리어 가차 없이 육박하는 교양적 무한성에서 합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을 동시에 얻기는 힘드니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주어진 바에 따라 즉 도상에서 어떤 선택으로 말미암는 아스팔트를 걸을 수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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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이미 스물여섯의 끝자락에 도달해있다.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슨 선택? 대자적인 것에 머무는 것 즉 혼자서 전체적인 인상에서 운명에 의해 어떤 강령을 하달 받는 것, 혼자 있어야한다는 것. 이 빌어먹을 역사의 수레바퀴야! 너라는 사람의 이름이 운명이 아니라면 역사일 것이다. 세상은 자유의지와 운명과 우연 이 세계가 변증법적 관념론에 의해 상호침투하여 마침내 만들어내는 건 절대자조뭐 이런 것인가? 좋아. 좀더 권리적인 면을 건드리고 싶다. 좀더 우리의 사생활을 말하고 싶다. 어쨌든 이는 내 이야기이고, 내가 말하는 만큼만 당신들은 아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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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첫사랑을 했다. 그 애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의 문제에 관해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사랑은 중학교 1학년 끝이었다. 그애의 이름은 남궁은. 아주 이쁜 미소녀 같은 아이였다. 나는 장롱을 열어 그녀를 꺼냈고 그녀의 음부를 거칠게 만지는 꿈을 꾸었는데 그러다가 잠에서 깨었다. 처음으로 몽정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또 찌질이 다운 짝사랑을 하기 시작한다. 그 애의 이름은 오민혜. 이쁜 편이고 무엇보다 내가 어떤 여자애 중에서도 가장 사랑했던 가인과도 같은 존재. 나는 정말로 그녀와 자고 싶었다. 그녀가 시험지를 받으러 나갈 때 엉덩이를 뒤로 빼고 앞으로 상반신을 선생님께 내밀었을 때 보였던 그 치마 위로 튀어나오는 엉덩이에 나의 성기는 나도 모르게 사정해 버렸다. 수업 도중에 사정한 나는 윤리위원회에 불려가야 했다. 나는 성적으로도 그녀를 그렇게 좋아했고, 심미적으로도 좋아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나는 그녀가 엎드려서 내 쪽을 지긋이 바라보는 장면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투명한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심미주의의 홍일점이었다. ‘’‘’‘’, 나는 내가 짝사랑하는 여자애들에게 고백조차 꺼내보긴 했는가? 나는 알고 있다. 나 자신이 겁쟁이라는 것, 그리고 현금 스물여섯의 끝자락에서도 나는 여전히 찌질이, 히키코모리’, 좀더 고상한 말로 표현하자면 이방인이다. 그리고 내가 이러한 명사들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은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였고, 이러한 깨달음이 나를 바꾸지는 못했다. 이상하게도 앎은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란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지식인이든 사람이든 이는 짐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 시내에 나가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는 층위에서 영감을 받았다. 최소한 나는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아니 꿈이라기보다는 삶의 가장 중요한 일면을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상실감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내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얻은 깨달음은 이 소설을 쓰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다.

나는 혼자서 유폐되었다. 어릴 적부터 이상하게도 나는 혼자서 느끼는 고독이 좋았다. 나는 사랑하는 소년에 대해 끊임없이, 거의 병적으로 황홀경에 빠져 연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기분 좋은 우울과 서글픈 생각, 때때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기, 공감각적인 나르시시즘, 이런 것들이 나를 매혹시켰고, 내 유년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 되었다. 나는 모든 것을 사랑했다. 지금 내 나이 스물여섯에 나는 마약성 수면제인 스틸녹스를 먹지 않고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 혐오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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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시내는 이미 밤의 저편으로 미끄러졌고, 별들은 이 어린 젊은이들을 축복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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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 속에 나는 한 명의 이방인일 뿐이다. 단지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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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 나와 곧바로 카페로 가는 길로 직진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들끓기 시작했다. 나는 문인의 자질도 없고, 그렇다고 학자의 자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뜨내기로 살아가는 게 최상의 삶 아닐까 그런 까닭 있는 생각을 하고 있다. 뜨내기, 얼간이, 비애에 젖은 부모한테 얹혀사는 찌질이 같은 것. 물론 부모한테 얹혀사는 걸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의 수입이 있다면 그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아프다는 구실로 기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도리가 없어 사실상 나는 선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단지 운명 때문이다. 지저분한 운명, 말하자면 불쌍한 한 가닥 인생인 것이다. 한량이 될 배포도 없고, 말하자면 히키코모리인가? 변화하는 성질의 대상을 예로 들자면, 변화해야 하는 건 세상이 아니라 이다. 만일 내가 현실을 바꾸는 힘이 부족하다면 약이라도 천천히 끊어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이프렉사10mg : 항정신병제를 끊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금단증상은 어쩔 수 없다. 견딜 수밖에. 그러나 이 행위가 가장 고통을 가져오는 것은 마치 밤에 각성제를 먹은 듯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그럴 테밖에. 왜냐하면 거짓 4년 반을 밤마다 먹어온 약이니. 그나마 끊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감사해야 한다. 끊자마자 발작에 시달리는 현상 같은 건 없으니까. 단지 1달 동안 정신 과잉과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한 6개월까지는 사회공포증이 있을 수도 있다. 혈압이 올라가 안압이나 뒷골이 아플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예비용으로 혈압약을 먹거나 타이레놀을 먹을 수밖에. 그리고 잠이 안 오는 것은 수면제를 3알정도 자기 전에 먹는 걸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박힌 칼날을 뽑고 지혈까지 해서 순리를 찾는 것은 이토록 어렵다. 이것이 바로 양약의 무서운 점이다. 양약은 일단 끊으면 강한 금단증상이 1개월은 간다. 양약이 효과는 좋지만 단점도 찾으려면 수두룩하다. 서양의 것이라고 무조건 숭배하면 결국 나쁜 것까지 숭배하는 짝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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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가을 추()자를 써서 영검한 기운을 풍기며 돌아오는 명절. 내가 산사를 찾은 이유 중 하나는 조상의 죄가 만든 업에서 나를 해방시키기 위해 부처에게 내가 모를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귀신들의 원한에 성불을 비는 것이었다. 향불을 피우고, 경을 외우며 청신한 마음으로 108배를 하고, 의연한 정신으로 마지막에 합장을 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내 업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석가의 뜻한 바라면, 이는 조금이나마 이루어질 것이고, 그로인해 내 마음은 좀더 편해질 것이다. 마음만 편해진다면 현실이 그리 괴로우랴? 불가가 관념론의 절정이라고 떠들어대는 무리들이 있다지만 이것은 철학학파의 하나가 아니라 사적(史蹟)인 종교이다. 그 기원은 무려 2500년이 넘어간다. 그리고 이 시간의 숨결에 무수한 철학적 천재라 할 고승들이 매달려 있다. 이 길이는 서구철학의 역사와도, 예수의 탄생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석가 이전의 무수하게 진리에 대해 탐구하던 인도철학자들까지 합친다면, 이는 서구철학과 유대교의 역사와 맞먹는 시간의 길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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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어가면서 사색에 잠긴다. 하이데거가 걸었던 이 숲길과 이곳에 대한 발걸음. 그러나 내 생각은 좀더 현실적(세속적)이다. 나는 향정신성 약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각성제에 대해 사유하고 있다. 내가 만일 성인adhd라면 나는 각성제를 먹어야 한다. 하지만 주치의인 교수는 내가 성인adhd는 아니라고 한다. 그나마 내가 위안이 되는 건 이미 각성제를 최고용량으로 먹어보았다는 것과, 각성제가 내게 심어준 젊음의 열정적인 기분과, 그 약을 자세하게 안다는 사실이며 다시 한 번 다른 의사에게 가는 건 어떤지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지점의 황홀함을 사랑하고 있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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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문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다시 한 번 늙은 나이에 대학에 도전해야 된다는 것, 이 세 가지가 내게 압력이다. 내 발걸음은 사뭇 빨라진다. 의식을 찾으니 이미 카페 앞이다. 내게 이 세 가지 발로는 강박증의 증세처럼 다가온다. 왜 내가 이런 강박증을 갖게 되었는지는 독자들도 알 터이다. 왜냐하면 나는 양주에서 보낸 칠 년을 오로지 학문과 글쓰기에 대한 전념의 세월로 탕진해버리고 이제 갈 길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그것이다. 비록 슬럼프는 극복했다손 치더라도 내 자아는 결박당해 있다. 나는 사색의 만화경 같은 세계에 빠지지 못한지도 손에 꼽지 못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시나브로 쓸쓸해지는 삶에 당도한다. 카페 겔러리아에서 진한 커피나 마실 도리밖에.

 

가을하늘의 푸름은 언제나 유년의 색채와 함께한다. 아직 다 자라지 않았지만 한 발 한 발의 인식이 신비스러운 감동과 순간적인 생의 약동으로 가득 차 있고, 희망 혹은 순수한 욕망이 끓어 넘치듯 메뚜기처럼 뛰어오르려는 것 하며. 그 어떤 개인이 자신의 유년이 자신을 주조하는 근본이라는 점을 거부할 수 있을까. 한 작가에게 있어 유년에 대한 인식은 성년이 된 자기 자신으로서는 벅찰 정도로 강렬한 세계에 대한 영감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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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인문학이라거나 글쓰기, 사색에 대해 의문을 품을 때가 있다. 이런 것들이 관념적인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만일 모든 인간이 똑같은 행위를 하고 똑같은 유의 관념론적 해석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혼자서 부유하는 관념일 것이고 공통된 개념의 총체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관념에 대한 것들, 예술이나 학문적인 것들이 쓸모는커녕 한 개인이 인식하기조차 힘든 언어유희적인 것들(어떻게든 실체에 다가서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평생에 걸쳐 이것을 탁마하는 정신의 장인들은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이 달을 가리키는 손을 지독하게 훈련시키고 있다는 걸 자신이 아는 순간, 그들은 단지 학문을, 철학을 그것의 도구를 통해 일련의 기예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인식하기도 어렵게 줄기차게 난해한 글들이 매우 조그마한 의미(sinn)만을 담고 있다고 해서 그 글의 정당성마저 침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후설은? 하이데거는? 사르트르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는 좀더 지시체의 길이가 그 자체로 의미를 초월하는 기표예술을 인정해야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음악과 회화가 그 음계적 기교와 추상적 시도로써 무한한 독특성을 일종의 예술성으로 인정받듯이 말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이 달을 능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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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학계에서 범주론적으로 구분해놓은 공통적 개념에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관념의 세계의 눈금을 맞추어야한다면, 즉 그런 정론적 체계 안에 자신의 정신적 규격을 밀어 넣는다면, 그것이 지에 대한 정확한 시도요, 인문학적인 시도라 할 것인가? 이렇듯 인문학은 지극히 규범적인 의사소통의 장이면서도 그 장외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성질이 있다. 이런 장성(場性)과 장외성(場外性)의 종합, 보편성과 개별성의 종합이야말로 현대철학이 추구하는 초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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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하고 비근한 생, 나는 따분하고 지리멸렬한 현실에 역겨움을 느꼈다. 계속되는 삶에 대한 구역질. 부정이 그자체로 부정이 될 수 있는 것, “순수 부정으로서의 생, 그것 또한 철학자가 살아가는 삶에 대한 방정식이었다. 왜곡되고 굴절된 삶을 더 비틀 수 있는 것, 부정조차 부정하는 아나키스트적인 태도. 저항과 투쟁, 곧 잉크의 멈추지 않는 분사. 나는 철학책을 읽을 때 한 번은 곧이곧대로 그것을 읽고, 이윽고 그것에 대한 비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철학에서는 비판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비판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좀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키운다. 좀더 멀리 다다르는 것, 정신편력과 정신방랑 그리고 생각과 그대로 일치하는 나의 글쓰기, 이른바 비판은 하나의 도정적 기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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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로 글쓰기 곧 사유의 호흡을 맞추기, 즉흥성을 관통하는 즉흥성, 작위를 통한 사유. 나는 결코 고매한 사람이 아니다. 나의 실존은 실망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세속을 배제하려는 세속성으로 인해 발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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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추석, 나는 이 시간에도 자유를 위해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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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세계, 인문학. 천부적인 재질 즉 천재가 자기 안에 없으면 현현되지 않는 교착의 학문. 슬럼프에는 자살충동까지 불러일으켜 고독사로 이끄는 무서운 주범. 그러나 학문과 예술의 가장 정확한 접점, 역사로서의 증인, 무엇보다 젊은이들에게는 자신의 꿈에 무한히 기투할 수 있는 세계. 불가에서 스님들이 중생의 회향을 목적으로 하듯이 문학의 도는 눈이 멀어버린 자, 즉 세상을 모르거나 자기 자신을 모르는 자들을 위한 정신개조에 그 뜻을 품고 있다. 비록 세계대공황이 역사상 최악의 불황을, 1퍼센트 클래스가 그 가세가 너무 강해져 시장이라는 배 자체가 기울어지는 초유의, 그러니까 집단괴멸상태의 앞에 선 우리들이지만, 우리는 문예의 힘, 이 아카데미즘과 예술이 빚어낸 전당, 언론보다도 강한 양심의 주춧돌(순문학)을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고매한 선비와 같은 문인(지식인)들이 이끌어나가야 할 입론과 정립의 발로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선사에 들어가기 전 이러한 연설이 적힌 쪽지를 노 승려에게 전달했다. 이미 눈썹이 희끗희끗한 그는 연륜이 들어 보이는 고요한 눈으로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 제 딴에는 이를 가르침을 주십시오 혹은 진리라 무엇입니까?”하는 일종의 영광을 담은 편지로 생각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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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동불(金銅佛)은 푸근히 그러나 엄정히 앉아있었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냐면,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눈은 날카로웠고, 편안히 앉아있으면서도 허리가 너무 꼿꼿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마치 음악의 이중창(二重唱)과 같은 오묘함의 법도를 느끼게 했다. 불상은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나에 믿음이 아니다. 나의 종교는 기독교와는 달리 믿음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다만 믿음에 대한 아라한들의 선례를 들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믿음의 차원은 자기의 영역에서 깊이 들어가는 것 하나로 족하다. 어찌 두 사람을 믿겠는가? 믿을 수 있는 자는 자기 자신뿐이니라. 만일 자신을 완전히 믿는다면, 너의 눈에 비치는 너의 반영인 삼라만상 역시 그 믿음의 당위성을 확보할 것이로다. 중요한 것은 불도이지 우상숭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지 믿는 대상이 아니니라.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움 자체이거나 너 자신일 뿐이며, 네가 사랑하는 여인 또한 그 여인에게서 너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니라. 보거라 준석아, 모든 것은 하나다. 일체에서 세계가 만드는 차이소들의 유비가 개시되는 것이니라. 삼라만상()이 어떤 의미()도 없으니(), 그것이 곧 무상성(無相性)이로다”. 나는 부처님의 말씀을(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잘 새기어들었다. 무연한 세상, 무의미한 세상의 온갖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신경증적으로 보전하려는 현대인들, 서구인들의 정신적 자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은 사실 무상성의 법칙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단지 그들은 이 참혹한 사실을 마주보기 싫어서(태양을 정면으로 볼 때 눈이 멀어버리는 것처럼) 불가의 정직한 가르침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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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냄새가 가을의 방향을 타고 흘러들어와 내 코를 적셨다. 가을의 냄새는 언제나 그렇듯 쓸쓸하고 외롭고 약간 차갑다. 희색이다. 그리고 향의 냄새에서는 제사의 냄새, 죽음의 냄새가 난다. 이 두 가지가 겹쳐서 나는 조금은 경도된 자세에서 대오각성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불가의 가르침이 삶을 인류사고(人類思考)의 아이러니, 시대정신이라는 집단정신병, 심지어 고해로 보고 일소시키는 데에 평온함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 오늘따라 이중창이 듣기 싫다. 그리고 심지어 나조차도 이중적 인격을 지닌 인간이 아닌가 하는 의구가 든다. 사회의 페르소나로서 기능적인 나와, 자신의 진정을 추구하는 순수자아로서의 나, 이 양가성의 기로에서 나는 무엇일까? 아마 이 전부일 것이다. 아마 이중나선으로 양자가 혼합된 것이다. 하지만 차이가 한낱 미망이라는 불가의 가르침에 위배하여 좀더 분열되어 모순된 인격을 살아가는 내가 있다면? 그것을 극한까지 밀고 나간다면? 이는 단지 바보에 불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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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분명히 들리지만 믿을 수 없고, 그렇다고 들리지 않는다고 부정하며 거짓말을 할 수도 없어서, 나는 들리는 것 같다고 세상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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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들로 이루어져 왠지 쓸쓸한 온도를 풍기는, 낮은 지형의 뒷산들이 병풍처럼 굽이 보는 가운데, 아파트 단지들의 행렬이 저지대에 드문드문 형성되어 있다. 드높은 곳에서 푸른 빛깔로 유영하는 하늘의 빛깔은, 미적거리는 저온과 함께 휘몰아치는 바람에 의해 한층 그 투명함이 지상으로까지 전달되었다. 내게는 이러한 전경이 아련하게만 느껴졌다. 바야흐로 가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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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의 창에는 지긋한 관록을 심어주는 바랜 햇살이 어느 찰나에 비스듬히 투과한다. 희색과 하얀색이 전체적으로 섞여 둔탁한 일곱 가지 무지개의 나뉨이, 어떤 반영의 그림자를 그리듯 기내에 쓸쓸한 수채화를 소묘한다. 이러한 인식은 빛바랜 과거의 연상과 같은 것이다. 마치 플라이미드 필름으로 나의 과거사를 찍어, 현상해 널어놓은 갈색 사진을 자조하여 바라보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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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순간들, 시공이 연계되는 임계점의 연쇄는 알 수 없게 관조하는 초연한 순간들을 의식 안에서 빚어낸다. 풍경과 풍경의 이음새가 형용할 수 없는 정신현상, 이를테면 반추가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지고 감수성의 떨림이 일정한 이미지로 설계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건 자연적인 현상에 다름없다. 최소한 나의 지각에 있어서는 부지불식간 스스로 그러하다.

   이윽고 산 밑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필라멘트들의 노란 행렬이 양쪽에서 가차 없이 다가오며 어둠 속에서 긴장을 형성할 때, 아직까지도 마모되지 않는 시간의 사슬을 알아차린다. 기억과 기억이 이어져 있는 것, 그것은 한 개인의 역사성으로서의 시간성이, 현재로서의 뚜렷한 지적 인식 없이 한없이 흘러가, 꼭 한 가닥 가느다란 희망도 좌절도 없는 초연한 가운데서, 주체할 수 없는 삶의 통시성으로서의(혹은 과정으로서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러한 바를 소급이라고 부르면 소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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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이 역사(驛社)를 떠나 행군하고 있는 모습이 아랑곳하다. 그러나 버스는 순식간에 그 기계적인 율동을 흘려보내고, 또다시 시골풍광으로 들어간다. 아스팔트의 끝물에 서있는 인공적인 울타리들 안에 펼쳐진 도랑과 석간수(石間水), 수맥의 힘을 받은 기다란 수풀이며 이들의 모습을 희 번득거리게 하는 유난한 가을햇빛과 이 주위를 뛰노는 아이들의 일상적인 느림 같은 것이 창가에 비친다. 나는 서글프기도 했다가 이내 자신의 삶이 매우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나의 청춘을 양주에서 불사른 것과 이곳에서 보낸 지난 칠년이 부질없지만 그럼에도 유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격적으로 문인으로 살아가마고 다짐한지 딱 그만큼이 흘렀다. 무진하게 살아온 세월이 덧없는 인생 속으로 미끄러져 청운을 지향하는 것은 사라져버렸지만, 그럼에도 예도(藝道)의 층위로서 글쓰기에 스며든 대의의 칼날은 더욱 시퍼레졌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자기가 보는 세계가 진정 감수성의 영역인 것이다. 고결함의 영역은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어떻게든 타자로서 뻗어나가지 않고 온전한 동일자로서, 즉 존재자 안에 본질과 현상이 일치하는 향기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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