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시적으로 표현하기. 미학에 관한 시론을 실성한 듯 잘난 체하면서 주절대는 것(구성하는 이성)에 더해서 진정한 아름다움(작품)과 함께하면서, 미학이 가리키는 대상으로서의 손이 즉 미학을 구성하는 언어가 대상으로서의 ‘사물 그자체’(구성된 이성)와 현동화 되어, 구체적인 지식과 시학이 동질적인 비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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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바깥에 나갔다. 시야가 확 트였다. 멀리서 지하철이 오기 전 저 너머에서 불빛이 번쩍이며 연속적으로 우리를 비추듯이 가을 정오의 자명한 햇살이 비친다. 이렇게 확연한 현실태는 더 이상 자신이 환영의, 그림자의 세계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 즉 특권적인 장 비로소 실존론적 차원에 입문하는 하나의 계기와 같은 것이다. 이 계기가 바로 투기적 분노의 임계점을 지나서 곧바로 돌직구처럼 가차 없이 육박하는 끓어 넘치는 용광로와 같은 열정의 단초다. 이런 단초의 무수한 임의들을, 즉 사고들을 슬라이드 도형 식으로 무수한 노에시스를 만든다면, 그리고 이 노에시스들을 합친다면, 그제 서야 이는 노에마가 정초하는 순간을 개시하는 것이다. 이야말로 ‘막을 수 없는 한 개인에 대한 지적 상승에 대한 축복에 대한 상징’이다. 이러한 도정이 바로 현상학의 가장 기초적인 화두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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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걸었다. 덕계역사 위에 입구가 있는 개 같은 자전거 도로를. 이 끝이 없는 아스팔트를, 널 부러져 있는 개들을 보며, 그리고 이제는 조잡하게 느껴지는 지루한 푸른 하늘을 보며. 야생화들이 양주의 구석진 변경에서 자란다. 자전거도로의 짜증날 정도로 많은 자전거의 행렬, 솔솔 불어오는 무심한 바람. 그리고 세월의 풍파가 스며들어 있는 서글픈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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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 그러니까 독신자의 생활에 익숙해진 것이다. 나는 이제 혼자인 것이 전체인 것을 직시한다. 그는 사회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그는 정확한 의미에서 개인이다. 그러나 의문이 스친다. 사회 없는 개인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한 개인이 탄생하려면 마땅히 사회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출생을 비롯하여 인류가 다른 종을 절멸시키고 지구를 풍요로 물들인 것도 고도로 발전하는 사회에서 말미암은 것, 즉 사회야말로 역사 그 자체며 공동체는 역사의 수레바퀴의 도처를 가리키는 지표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개인’, 그것은 사회 밖에 머무는 지자, 문학적인 묘사가 논리적인 층위를 뛰어넘는 차원에서의 지평에서의 개인, 존재론적 완성을 나타내는 개인 즉 존재자에서 존재를 추출해낸 종합적 지혜의 지식인, 그러니까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전범을 나타내는 한 개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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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하철을 탔다. 역시 진지해지고 싶으면 밖에 나가 전철을 타고 의정부 시내에 가는 것이다. 의정부는 너무 화려하게 변모했다. 신세계 백화점에, 50개가 넘는 다층 커피체인점들. 신시가지 쪽으로는 끝없는 고층건물들이 있고, 경전철은 무시무시한 첨단을 표상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만 산 지 14년, 이곳은 내 고향과 같은 곳이다. 비록 앞에서는 양주에서 더 오래 살았다고 했지만 그것은 양주에서의 삶이 평생으로 이어지리라는 확신 때문에 그런 것이다. 아마 난 양주에서 평생을 보낼 것이다. 의정부는 양주 바로 옆에 있다. 그리고 난 의정부든 양주든 둘 다 잘 개발되어 주요도심으로써 화려하게 지도를 수놓았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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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역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때는 범죄와 깡패 유흥의 도시라고 불린 의정부. 하지만 어느덧 유망한 도심이 되어버린 이곳. 나는 차 살 돈이 없었으므로 걸었다. 지하철을 탄다는 것은 언제나 피곤한 일이다. 나는 제발 하루빨리 차를 사서 지하철에서 탈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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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어간 곳은 스타 벅스. 원래 싼 개인카페를 선호하는데 의정부에는 개인카페가 거의 없다. 그래서 가장 선호하는 체인점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요즘 커피체인의 커피 값은 사기에 가깝다. 그들은 엄청난 돈을 챙긴다. 쁘띠부르주아들과 부르주아는 솔직히 말해 재산불리기의 90퍼센트는 커피체인에 의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발견한 커피체인은 진짜배기 블루오션이었다. 피시방이라든지 노래방은 댈 것도 아니었다. 20원으로 몇 초 만에 7천원 벌기.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성황을 이룬다. 하루 수익금만 몇 억. 그들에게 다른 사업 분야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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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카페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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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한적하다. 종업원에게 카페라떼 6Shot ICE 대자를 시켰다. 커피 내리는 소리와 묘한 이명소리, 사람들의 무의미한 발성음이 무식하게 섞여 공간을 채우고 있다. 나는 알 수 없는 무망감을 느낀다. 청바지에 하얀 추리닝을 입은 주인장이 커피를 가져온다. 커피의 향기와 혀로 느낄 수 있는 맛, 그리고 몸이 지각하는 맛은 알 수 없는 이국의 그것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했던 사실이지만, 우리의 현대화적 과정은 곧 서구로의 직진이었다. 우리는 서구의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문화를 비롯한 악습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빌어먹을 시대에 뒤쳐진 민족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내가 인식하는 건 서구의 지적 전통의 체계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정작 우수한 한문과 일본어, 한글의 집약체인 한국어를 완벽 개조해야한다는 외적 필연성을 담보하는 바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당위성이 혼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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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커피 한 잔에, 나는 미시적인 위화감을 느낀다. 곧 이 미시성은 가시성으로 치환된다. 국가는 한국어, 한글에 대한 정립을 새로 개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는 수많은 학자들, 요컨대 기호학자와 국문학 교수들 그리고 모든 외국어 전공자들이 힘을 합해 제도적인 한국어에 메스를 가해 더 풍요롭고 문법적으로 우수한 한국어를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언제까지나 ‘보이지 않는 손’에 국어문화를 내맡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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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자신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날 일어난 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승하건 하강하건 지속적으로 회전하면서 성숙해지고 진보하는 자신의 사고의 공전을 언어적 형식으로 묘파한 史적 관점으로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 역사적 관점이 인류학적인 것과 학문적인 것에 비례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주지할 수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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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우리는 세련된 지적인 명사들을 화용론에 의거하여, 그리고 좀더 많은 명사, 고유명사, 대명사, 등을 만들고 구문론이 일신해야 하는 구조적인 한국어의 틀을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가령 미국식으로 문법구조를 과학적으로 고치자는 게 아니라 데리다의 차연개념에 의거하여 비스무리하면서도 완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고유명사와 문법적 구조를 완전히 한국어폭발의 전회처럼 끝없는 가지치기 나무처럼 문법자체를 확대 개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만연체는 깔끔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고, 빈곤한 문체를 가져 난해한 철학적 글들을 마치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처럼 하나의 서사시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인문의 아카데미즘과 문예예술을 진흥시키기 위해서 정부예산의 15조를 할당해 박근혜는 교수들에게 하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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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커피 잔은 비어있다. 마치 우리네 한국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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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내를 걸었다. 언제나 버거킹, 스타벅스, 앤젤리너스 커피, 탐앤탐스, 파스구찌, 맥도날드, 피자헛, 도미노 피자, 차이니즈 레스토랑인 지동관, 롯데리아, 홀리스 커피, 그 외에 이름들은 기억이 안 난다. 어떤 장군 동상이 있고 중앙로가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백화점 쪽에서 시민의 편의를 위해 돈을 부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생커플들의 행진. 여자 쪽을 쳐다보면 왠지 눈이 시리다. 다만 쓸쓸한 감정에 휩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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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한 상실감에 흐느꼈다…. 생에 처음 성인 남자가 되어 운 눈물 중 가장 깊고, 가장 멀리 다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지나간 얘기, 단지 고통 속에서 점철된 작은 이야기를 소고할 뿐이다. 내가 결국 우울증에 걸리게 된 것은 어떤 사고(事故)들이 쉴 틈을 주지 않고 연쇄적이면서도 동시적으로 벌어져 나의 숭고한 영혼을 역겨운 현실에 처하게 했다. 나는 무간지옥에 있었고 살았어도 죽어있는 인간이었으며 이런 이유들로 인해 나는 무엇보다 자유론에 대해 궁구하게 된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탐색은 곧 인간실존에 대한 탐구다. 정말 존재한다는 것, 작위적이거니와 비당위적인 것이 아닌, 자신의 본질을 도구라고 이름지울 수 있는 것들, 요컨대 (연애·오디오 생활·독서·철학적/문학적 글쓰기)같은 것에 몰두하는 것, 그러니까 살아있다는 느낌이 곧 영혼이 누리는 특권적인 실존의 영역이며 해석학적 시도로서 생성된 대자태적 차원에 존속하는 기의의 유위(현상계, 실제세계). 반면 본질에서 즉자태의 차원에 있는 기표의 유위(시뮬라크르). 이들의 해석론적 차이는 마치 ‘존재자에서 존재를 추출’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이리하여 전자는 본질의 실천이고, 후자는 현상 너머의 물자체, 즉 형이상학적인 것들이 개시한 관념론이 정초한 문헌학의 계보가 나타내는 눈부심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다면 형이상학은 데리다적 기표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좀더 배움에 가까워지는 그때에 즉흥적으로 논하기로 하자. 따라서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는 사르트르의 언명은 존재론사를 두루 보아도 논리적으로 자명타당한 것이다. 그는 이 언명의 자세한 풀이를 ‘존재와 무’에 필설함으로써 예의 언명(화두)을 통시적인 전개요소에서 눈이 아리도록 위엄 있는 공시적인 거대담론을 창시했다. 즉 후설이 창안한 현상학은 그자체로 하나의 혁명적인 선험적 엄밀학이었는데 어디까지나 헤겔의 주저 ‘정신현상학’의 ‘현상학’적 요소 즉 ‘나타남’에만 주목하여 이를 극한까지 밀고 나아간 것이다.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말이다. 즉 그는 현상학에 순수성이라는 개념어를 집어넣으면서 현상학이라는 관념적 총체를 그의 선배가 규정한 것과 다르게 좀더 추상적이고 선험적이거니와, 세밀한 주체적 인식론의 쾌거로 만들어버렸고, 이원론을 집어삼킨 일원론을 굵직한 틀로써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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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면 후회가 복받친다. 모든 과거의 편린들은 후회로 전체화된다. 모든 것이 후회 안에 있다. 토머스 하디의 말처럼 현재에서도 과거가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다면, 그것은 이미 과거가 아니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결국 후회의 감정으로 귀결된다. 후회는 언뜻 과거로의 복귀를 전제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되돌릴 수 없다. 만일 과거가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무한히 반복된다고 한다면, 우리 역시 똑같은 선택,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되돌려야 된다는 뜨거운 감정이 용솟음치는 것, 다시금 고등학생 때로 되돌아가 다시 새로운 삶을, 청춘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감정의 회전의 회전을 넘어서 강하게 폐부를 찌른다. 나의 몸짓, 생에 주어진 시간을 나는 은빛 날개, 결국 생의 약동은 자유의지만이 불을 지필 수 있는 것이었던가? 우리가 가진 것은 현실이 아니라 생각, 의지 같은 것인가? 마침내 고결한 생각만이 덩그러니 오래된 관념처럼 영원토록 내면이 늙어버린 우리 안에 살고 있는가? 결국 할 수 있는 건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독백뿐인가? 나는 소리를 죽이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곤 멈출 수 없는 흐느낌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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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슬픔과 비애에 매개된 각종 말할 수 없이 내밀한 범주들이 기마병처럼 창을 들고 말을 타며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면, 나는 그것들을 시간의 시차(視差), 그러니까 시간 속에서 현성하며 유위변전 하는 과거 생의 파노라마를, 소급의 형식을 빌려 그 장구한 나 개인의 역사적 입체성에 통시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소급이 아니라 단순한 시민성으로서의 반추도, 회상도 좋다. 어떤 것이든지 나 자신의 정체성이 도대체 그 윤곽을 따질 수 없이 무진한 상실감의 연쇄에 미친 듯이 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하기야 나의 폐부는 구조주의의 실천과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공존의 공간에 분배된 변별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 즉 폐부에 분배된 감수성은 로크적 변별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rassion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구체적인 인간이 맛볼 수 있는 비애와 슬픔의 편린들, 즉 절대적인 고독, 외로움, 쓸쓸한 감정 등이 단 하나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잠도 못 자게 생각의 종횡무진의 궤적을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원론적인 현상학적 나타남은, 좌우지간 내가 미친 듯이 가족이 듣지 않게 소리를 죽여 흐느끼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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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또 걸었다. 나는 혼자였다. 불빛들이 휘황찬란 도시를 물들였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오직 중학생 커플들, 고등학생 커플들, 갓 스물을 넘긴 커플들만이 자신들이 생에 정점에 도달해 용렬하고 기운차며 자신들이야말로 직선의 시간, 혹은 시간이란 직선 안의 현전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포부를 가진 대가’적 자긍심을 갖는다. 목하 그러한 자긍심을 가진 소녀, 소년이 걸으면서 서로 사랑놀이를 하는 차원이 실존적인, 특권적 권리의 최고도에 도달해 있다. 이것이야말로 특권의 가장 중심적인 차원, 즉 방탕한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matrix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존주의는 언제나 그렇듯 순간적인 것에서 영원성을 궁구하는, 예술적 삶의 희귀한 것들을 가늠하여 최상의 질로 선회하는 것, 이른바 절대적인 질로써 무한한 양을 도출하는 방법, 따라서 이것은 시간을 초월하는 자유의 영원성이요, 그리고 예에서 말했듯 자유는 젊음과 패기나 도리어 가차 없이 육박하는 교양적 무한성에서 합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을 동시에 얻기는 힘드니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주어진 바에 따라 즉 도상에서 어떤 선택으로 말미암는 아스팔트를 걸을 수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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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이미 스물여섯의 끝자락에 도달해있다.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슨 선택? 대자적인 것에 머무는 것 즉 혼자서 전체적인 인상에서 운명에 의해 어떤 강령을 하달 받는 것, 즉 “혼자 있어야한다”는 것. 이 빌어먹을 역사의 수레바퀴야! 너라는 사람의 이름이 운명이 아니라면 역사일 것이다. 세상은 자유의지와 운명과 우연 이 세계가 변증법적 관념론에 의해 상호침투하여 마침내 만들어내는 건 ‘절대자조’ 뭐 이런 것인가? 좋아. 좀더 권리적인 면을 건드리고 싶다. 좀더 우리의 사생활을 말하고 싶다. 어쨌든 이는 내 이야기이고, 내가 말하는 만큼만 당신들은 아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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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첫사랑을 했다. 그 애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의 문제에 관해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사랑은 중학교 1학년 끝이었다. 그애의 이름은 남궁은. 아주 이쁜 미소녀 같은 아이였다. 나는 장롱을 열어 그녀를 꺼냈고 그녀의 음부를 거칠게 만지는 꿈을 꾸었는데 그러다가 잠에서 깨었다. 처음으로 몽정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또 찌질이 다운 짝사랑을 하기 시작한다. 그 애의 이름은 오민혜. 이쁜 편이고 무엇보다 내가 어떤 여자애 중에서도 가장 사랑했던 가인과도 같은 존재. 나는 정말로 그녀와 자고 싶었다. 그녀가 시험지를 받으러 나갈 때 엉덩이를 뒤로 빼고 앞으로 상반신을 선생님께 내밀었을 때 보였던 그 치마 위로 튀어나오는 엉덩이에 나의 성기는 나도 모르게 사정해 버렸다. 수업 도중에 사정한 나는 윤리위원회에 불려가야 했다. 나는 성적으로도 그녀를 그렇게 좋아했고, 심미적으로도 좋아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나는 그녀가 엎드려서 내 쪽을 지긋이 바라보는 장면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투명한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심미주의의 홍일점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짝사랑하는 여자애들에게 고백조차 꺼내보긴 했는가? 나는 알고 있다. 나 자신이 겁쟁이라는 것, 그리고 현금 스물여섯의 끝자락에서도 나는 여전히 ‘찌질이, 히키코모리’, 좀더 고상한 말로 표현하자면 ‘이방인’이다. 그리고 내가 이러한 명사들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은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였고, 이러한 깨달음이 나를 바꾸지는 못했다. 이상하게도 앎은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지(知)란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지식인이든 사람이든 이는 짐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 시내에 나가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는 층위에서 영감을 받았다. 최소한 나는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아니 꿈이라기보다는 삶의 가장 중요한 일면을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상실감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내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얻은 깨달음은 이 소설을 쓰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다.
나는 혼자서 유폐되었다. 어릴 적부터 이상하게도 나는 혼자서 느끼는 고독이 좋았다. 나는 사랑하는 소년에 대해 끊임없이, 거의 병적으로 황홀경에 빠져 연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기분 좋은 우울과 서글픈 생각, 때때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기, 공감각적인 나르시시즘, 이런 것들이 나를 매혹시켰고, 내 유년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 되었다. 나는 모든 것을 사랑했다. 지금 내 나이 스물여섯에 나는 마약성 수면제인 스틸녹스를 먹지 않고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 혐오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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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시내는 이미 밤의 저편으로 미끄러졌고, 별들은 이 어린 젊은이들을 축복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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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 속에 나는 한 명의 이방인일 뿐이다. 단지 그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