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는 세계, 인문학. 천부적인 재질 즉 천재가 자기 안에 없으면 현현되지 않는 교착의 학문. 슬럼프에는 자살충동까지 불러일으켜 고독사로 이끄는 무서운 주범. 그러나 학문과 예술의 가장 정확한 접점, 역사로서의 증인, 무엇보다 젊은이들에게는 자신의 꿈에 무한히 기투할 수 있는 세계. 불가에서 스님들이 중생의 회향을 목적으로 하듯이 문학의 도는 눈이 멀어버린 자, 즉 세상을 모르거나 자기 자신을 모르는 자들을 위한 정신개조에 그 뜻을 품고 있다. 비록 세계대공황이 역사상 최악의 불황을, 1퍼센트 클래스가 그 가세가 너무 강해져 시장이라는 배 자체가 기울어지는 초유의, 그러니까 집단괴멸상태의 앞에 선 우리들이지만, 우리는 문예의 힘, 이 아카데미즘과 예술이 빚어낸 전당, 언론보다도 강한 양심의 주춧돌(순문학)을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고매한 선비와 같은 문인(지식인)들이 이끌어나가야 할 입론과 정립의 발로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선사에 들어가기 전 이러한 연설이 적힌 쪽지를 노 승려에게 전달했다. 이미 눈썹이 희끗희끗한 그는 연륜이 들어 보이는 고요한 눈으로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 제 딴에는 이를 가르침을 주십시오 혹은 진리라 무엇입니까?”하는 일종의 영광을 담은 편지로 생각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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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동불(金銅佛)은 푸근히 그러나 엄정히 앉아있었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냐면,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눈은 날카로웠고, 편안히 앉아있으면서도 허리가 너무 꼿꼿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마치 음악의 이중창(二重唱)과 같은 오묘함의 법도를 느끼게 했다. 불상은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나에 믿음이 아니다. 나의 종교는 기독교와는 달리 믿음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다만 믿음에 대한 아라한들의 선례를 들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믿음의 차원은 자기의 영역에서 깊이 들어가는 것 하나로 족하다. 어찌 두 사람을 믿겠는가? 믿을 수 있는 자는 자기 자신뿐이니라. 만일 자신을 완전히 믿는다면, 너의 눈에 비치는 너의 반영인 삼라만상 역시 그 믿음의 당위성을 확보할 것이로다. 중요한 것은 불도이지 우상숭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지 믿는 대상이 아니니라.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움 자체이거나 너 자신일 뿐이며, 네가 사랑하는 여인 또한 그 여인에게서 너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니라. 보거라 준석아, 모든 것은 하나다. 일체에서 세계가 만드는 차이소들의 유비가 개시되는 것이니라. 삼라만상()이 어떤 의미()도 없으니(), 그것이 곧 무상성(無相性)이로다”. 나는 부처님의 말씀을(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잘 새기어들었다. 무연한 세상, 무의미한 세상의 온갖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신경증적으로 보전하려는 현대인들, 서구인들의 정신적 자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은 사실 무상성의 법칙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단지 그들은 이 참혹한 사실을 마주보기 싫어서(태양을 정면으로 볼 때 눈이 멀어버리는 것처럼) 불가의 정직한 가르침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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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냄새가 가을의 방향을 타고 흘러들어와 내 코를 적셨다. 가을의 냄새는 언제나 그렇듯 쓸쓸하고 외롭고 약간 차갑다. 희색이다. 그리고 향의 냄새에서는 제사의 냄새, 죽음의 냄새가 난다. 이 두 가지가 겹쳐서 나는 조금은 경도된 자세에서 대오각성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불가의 가르침이 삶을 인류사고(人類思考)의 아이러니, 시대정신이라는 집단정신병, 심지어 고해로 보고 일소시키는 데에 평온함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 오늘따라 이중창이 듣기 싫다. 그리고 심지어 나조차도 이중적 인격을 지닌 인간이 아닌가 하는 의구가 든다. 사회의 페르소나로서 기능적인 나와, 자신의 진정을 추구하는 순수자아로서의 나, 이 양가성의 기로에서 나는 무엇일까? 아마 이 전부일 것이다. 아마 이중나선으로 양자가 혼합된 것이다. 하지만 차이가 한낱 미망이라는 불가의 가르침에 위배하여 좀더 분열되어 모순된 인격을 살아가는 내가 있다면? 그것을 극한까지 밀고 나간다면? 이는 단지 바보에 불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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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분명히 들리지만 믿을 수 없고, 그렇다고 들리지 않는다고 부정하며 거짓말을 할 수도 없어서, 나는 들리는 것 같다고 세상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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