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오년째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는 한탸는 힘들고 지저분하고 건강에도 해로울 것 같은 그의 일을 자신만의 즐거움과 만족을 곁들여 보람찬 하루 일로 만드는 사람이다. 맥주를 몇 리터씩 들이키며 매번 압축 꾸러미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 책을 펼쳐 얹어 만들거나 화보나 그림으로 치장하는 것을 보며 극심한 업무환경에서 최상의 적응력을 발휘한 엄청난 직업인 정도로 생각을 하면서 보았는데 그는 폐지에 들어오는 책에 매료된 인간이었다. 35년간 전쟁과 사상이나 체제 변화로 버려지는 책들을 주워 모아 집안 가득 쌓아놓고 그 속에서 위태로운 잠을 잘 정도로 책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뒤에 이 직업을 택한 이유라고도 말하는 것을 보고 그의 마지막은 어쩌면 정해진 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에게도 은퇴 후 삶에 대한 설계가 있었으니 그걸 이루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사랑했던 만차는 두 차례 똥으로 불명예를 얻어 떠나 있다가 한탸가 자신의 일을 잃게 되어 방황할때 조각가의 뮤즈가 되어 천사의 형상처럼 보인다고 한 부분이 있다.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것일까… 맨 마지막엔 그의 환상인지 실제인지 헷갈리던 터키색 치마의 집시여인의 이름을 부르며 끝을 맺고 있다. 사회노동당 청년들과 새로 도입될 대규모 폐지압축기가 그의 일터를 빼앗고 백지를 다루는 업무를 맞게된 한탸는 세상을 잃은 충격과도 같은 일이었던 것 같다. 업무 후에 집에 돌아와 책을 읽고 도서관도 가고 서점에도 가는 삶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는 한탸의 고지식함이 앞서 그의 행위들을 보면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지만 그의 곁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가 좋아하던 외삼촌, 만차, 집시여인 그 누구와도 자신을 터 놓으며 대화하던 상대가 아니었던 것 같다. 철처히 고독한 자기만의 세상을 살다 시대의 흐름대로 종말을 맞이한 그의 세계에서 같이 마감을 한 것이다. 고독이란 내면을 풍요롭게 하여 어떤 악조건도 무시할 만큼 대단한 것일 수도 있지만 바깥 세상과 단절되어 이리 위험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통해 세상만사 철학과 진리를 통달했단 한탸는 새로운 세상의 이꼴저꼴 볼 필요도 없이 그런 자신의 종말이 가장 만족스런 것이라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