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서당 15 - 고려시대 강종~공양왕 편 맹꽁이 서당 15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 고려시대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고려시대 때 상황을 긴밀히 알아보도록 하자 

993년 서희는 송나라와 멀리하고 거나라와 가깝게 지내자 했지만 서희는 10년 후 다시 송나라와 국교를 맺었다. 그 후 거한의 성종은 이에 화가나 고려로 진격하였다.  고려의 현종은 다급히 전라도 나주로 몸을 피하고 겨란 진영에 하공진을 보내어 협상하도록 했다. 그 후 협상을 한다 하여 거란은 물러났지만 고려가 협상제한을 하지 않아서 다시 처들어 왔다. 그때 강감찬 장군은 홍화진으로 가서 강물을 막았고 약 20만8천명의 군사를 그 주의에 잠복하였다. 잠시후 거란이 강을 건느려고 하자 강감찬은 막혔던 곳을 빼네었다. 그러자 거란족은 물살에 휘쓸려 내려갔다. 고려는 이 일로 인해 큰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를 귀주대첩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옛 조상님들의 지혜와 용기는 지금의 사람들보다 어찌하면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2세기에 거란이 쇠퇴하자 여진족이 날로 강성해졌다. 만주에서 일어난 완옌부의 추장은 여진족을 통일하고, 점점 남쪽으로 세력을 넓혀 결국 고려와 충돌하엿다. 첫번째 전투에서는 고려군이 여진군에게 패하였다. 1104년 숙종은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보병 부대에 기병 부대를 보강한 특수부대 '별무반'을 편성했다. 그러나 숙종은 끝내 눈을 감고  그 뒤를 이어 예종이 왕위에 올랐다. 별무반을 만든 지 3년이 흘러 1107년 예동은 윤관을 원수로 삼아 육군과 수군을 동원한 17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을 공격하였다.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길고 긴 천리장성을 넘어 두만강을 향해 북쪽으로 떠났다. 기병을 보강하여 한층 강해진 고려군은 전투마다 승리라여 여진족 마을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포로를 잡았다. 고려군이 점령한 지역에 9개의 성을 쌓고 남쪽의 주민 수만 명을 욺겨 살게 하니 이것이 바로 '동북 9성'이다. 이 내용을 보면서 우리 조상들의 끝없는 결투와 끈기가 이번 승리를 거두고 크게 이겼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