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서당 11 - 고려시대 태조편 맹꽁이 서당 11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이번에 읽은 책은 고려시대에 대한 이야기 이다. 과연 우리나라 고려시대는 어떻게 해서 건국을 이루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은 혼인 정책은 그가 죽은 듸 큰 문제가 되었다. 왕건과 친인척 관계를 맺은 호족들의 힘이 강해져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며 다툼을 벌였다. 943년에 태조가 죽고 뒤이어 맏아들 무가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혜종이다. 그러자 왕규는 혜종을 살해하고 자신의 딸이 낳은 손자 광주원군을 왕으로 세울 음모를 꾸몄다. 그는 두 차계에 걸쳐 혜종을 살해하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그러다가 혜종이 죽자 왕규는 그 틈을 타서 난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왕건의 사촌 아우인 왕식렴에게 진압되었다. 그 무렵 형인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은 4대 왕 광종은 호족에 대한 부담이 컸다. 그 후 관가에서는 불법으로 노비가 된 자들을 노비 신분제도 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993년 서희는 송나라와 멀리하고 거나라와 가깝게 지내자 했지만 서희는 10년 후 다시 송나라와 국교를 맺었다. 그 후 거한의 성종은 이에 화가나 고려로 진격하였다.  고려의 현종은 다급히 전라도 나주로 몸을 피하고 겨란 진영에 하공진을 보내어 협상하도록 했다. 그 후 협상을 한다 하여 거란은 물러났지만 고려가 협상제한을 하지 않아서 다시 처들어 왔다. 그때 강감찬 장군은 홍화진으로 가서 강물을 막았고 군사를 그 주의에 잠복하였다. 잠시후 거란이 강을 건느려고 하자 강감찬은 막혔던 곳을 빼네었다. 그러자 거란족은 물살에 휘쓸려 내려갔다. 하지만 거란족은 계속해서 계경으로 왔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은 모든 식량을 가지고 가고 우물도 매꾸었다. 거란족이 도착했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고 거란 병사도 몹시 지쳐서 후퇴를 하였다. 그 후 귀주에서 고려군과 거란군은 싸웠다. 그때에 고려군의 순풍이 부러왔다. 고려는 이 바람을 이용하여 거한족의 많은 군사들을 죽였다. 이 전투가 바로 '귀주 대첩'이다.

이 내용을 보면서 고려시대때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은 다른나라에게 공격을 당했고 그때마다 현명하게 막아내고 또 적군을 처부수는 우리나라 고려시대때의 장군님들과 그 군사들이 자랑스럽고 본받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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