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3 - 조선의 건국부터 조선 후기까지
전국역사교사모임 원작, 이성호 글, 이은홍 그림 / 휴머니스트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조선 건국부터 조선 후기 까지의 이야기를 이 책에 적은 내용 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이성계의 즉위때의 성전모양 때부터 세종대왕의 만들어진천기구의 이야기 까지의 내용을 요약하였습니다.  

 임금이 머무는 곳을 궁궐이라 하는데, 서울에는 경복궁 외에도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 등 많은 궁궐이 남아 있다. 궁궐 안은 크게 신하들이 업무를 보는 곳, 왕과 신하들이 만나 나라일을 의논하는 곳, 왕과 그 가족이 사는 곳,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이중에서동 궁궐 가장 깊숙한 곳에는 임금의 침실인 강녕전과 왕비의 침실인 교태전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다른 건물들과는 좀 다르다. 지붕 위에 용마루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왕을 용이라 생각하였지 때문이다. 용 위에 또 용이 있을 수는 없으므로 용마루를 놓지 않은 것이다. 

 한양을 구도로 저아는 데에는 풍수지리설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양은 북악산을 등지고 남산을 바라보며 좌우로 낙산과 인왕산을 거느린 명당이다. 게다가 그 사이로 청계천이 흐르니 덜바랄 나위가 없었다. 북악산 아래 땅의 기운이 모이는 바로 그 자리에 경복궁을 지었다. 전설에 따르면, 공사 중 궁궐이 자꾸 무너져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떤 노인이 나타나 한양이 학의 모양이라, 등에 짐을 지우려면 학이 날갯짓을 하는 것이니, 날개를 먼저 눌러 주라고 일러중어 성을 먼저 쌓았다고 한다. 성을 쌓는 일은 매우 힘들어 남산에 돌 캐러 가느라, 정남은 게 없다 라는 노래가 유행하기도 아였다. 여기서 정은 돌을 쪼는 도구로, 어른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성에는 문이 네개가 있다.   

 세종대왕때의 시절 장영실이라는 천민이 있었다. 그 천민은 비록 가난했지만, 그 뛰어난 손솜시로 인하여 천민에서 세종의 사랑으로 궁궐 안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일을 열심히 하는 장영실에게 세종대왕은 많은 양의 상과 벼슬을 주었다. 장영실이 만든 기구로는 많은 것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대단한 발명품은 자격루 이다. 자격루는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가 있는 물시계 였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양의 물이 흘러 어느 정도 물이 차면 기계가 작동하여 자동으로 종, 북, 징을 지도록 고안되었다. 세종대왕 때 만들어진 이 자격루는 현재 남아 있지 않으나, 1536년에 다시 만들어진 것이 경운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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