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노인
후지와라 토모미 지음, 이성현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월이 흐르다보면 나도 언젠가 노인이라고 명명될 날이 있으리라. 아마도 20년 후인 그 때가 되면 ‘노인 천국’이 아니라 ‘노인 천지’가 된다. 그만큼 노인이 많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즉 의료 시스템의 발전과,  한국 전쟁의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화  되는 시기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노인의 증가가 사회문제화  될 것이리라고 설레발을 치고 있다. 


  아무튼 노인이라는 말 자체가 씁쓸하게 하고 때로는 외로운 느낌이 들게 한다.  그것은 시작 보다는 해지는 저녁노을처럼 삶을 정리하고 마감할 준비를 할 때라는 것이 주된 이유가 될 것이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하지 않던가. 어머니의 어두운 자궁에서 나와서 조그만 흚 구덩이에 영원의 안식을 취해야 되는 그 때는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으리라. 모멘트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완숙미도 나고,  어떤 일이건 조정하고 수용하는 그런 노련함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로,  노인 분들을 마주하다 보면, 세월의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완숙함이랄까하는 이런 젠틀맨쉽한 모습 보다는, 나도 늙으면 저리 하지 말아야지 하는 성찰의 시선을 보낼 때가 많다.


   한 예로, 매일 새벽에 나가는, 규모가 작은 헬스클럽에서의 일화를 들어보겠다.   거의 매일이다 시피 거기에서 고희를 넘어 중반에 다다르신 노인 두 분을 만난다.  아침잠은 없으시고, 근력은 좋으시니 매일 운동하러 나오신다.  문제는 이 분들의 주변에 대해 갖는 끊임없는 관심이다.  상대의 감정은 생각하지 않고 내밀한 문제까지 폭탄 질문을 쏟아낸다.   속으로 꾹 참고 있지만, 같이 다니는 아들 넘은 그분들과 같이 운동 안한다고 성질을 부린다.  신상에 대해서 묻고 또 묻고, 자기식대로 운동하라고 강요하고,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서 정신이 혼란하다.    힘이 천하장사인지, 목소리 보륨 조절이 안 되어 틀어놓은 텔레비젼의 소리를 능가한다.   특히 여자 분들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고 한 편으로는 민망하기 까지하다.  싫은 내색이 역력한대도  끊임없이 들이댄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자신들의 정치색을 낱낱이 드러내고,  상대편에게도 설득하고 강요하려 한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그 여자 분만 나오면,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주 환장을 한다.  


  ≪폭주노인≫의 초반에서도 아무데서나 무례하게 고함을 꽥꽥 지르는 노인들의 사례로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오른손에 털모자를 쥐고 왼손으로 주먹을 쥐어 테이블을 쾅쾅! 내려치고 있었다. 젊은 남자 점원을 할아버지를 외면하듯 테이블 믿을 보고 있었다.”(35p) 혹시 나도 늙어서 고함을 지르며 이 책 내용대로 여의사의 멱살을 잡고 있지 않을지 걱정이다.


  그런데,  시간 지연이 결국에는 노인의 분노 폭발의 시발점이 되었지만, ‘기다림’을 둘러싼 고찰이라는 항목으로까지 발전시켜 많은 분량을 할애할 필요가 있었을까.  또한 언론에서 언급한 사건 등 여러 사례를 들고 있는데, 핵심 내용과 동 떨어지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여러 사례 연구가 논거가 되어 빨리 이해하게 하고 글의 흐름을 탄탄하게 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폭주노인≫은 폭력노인이 아니라 폭주(暴走)노인이다.  잘못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노인이 제목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면 노인들이 속도에 이렇게 민감할까. 저자는 아주 그럴듯한 이야기로 설명한다.   “ 70세의 1년은 열 살에 비해 일곱 배나 빠르게 지나가는 셈이다. 50세의 1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하지만 초등하고 시절의 1년은 상당히 길었다. 즉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 어린 시절의 하루는 길고 여유로웠지만 50세가 넘은 지금의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가벼린다. 뜻밖에 빨리 흐르는 시간 때문에 초조해서인지 우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조급해진다.”(76p)  어느 책에서,  노인들이 많은   경험의 축척으로 그날이 그날이고 새로운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모두 공감이 가는 말이다.

  좀 과학적 근거를 드는 내용도 있다.  “체내시간은 신진대사의 속도에 비례한다. 산소 소비량이 적으면 체내시계의 진행은 느리다. 소비량이 많을수록 빨라진다. 이 산소소비량은 맥박수로 추측한다.  맥박 수는 아이들은 빠르고 노인은 느리다.  즉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78p)
“신체가 시간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초조함이, ‘기다림을 강요받을’ 때 감정폭발을 일으킨다.”(78p)
 

  순간을 못 참고 결국에는 가족과 등한시되고, 심지어는 범죄의 늪으로까지 빠지는 노인들의 문제.  국가에서 더욱 많은 신경을 쓰고 사회 복지 차원에서도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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