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역사 모두 거물 정치 지도자를 보좌하는 최측근이 있습니다.20세기에 들어와서는 모택동과 주은래의 관계가 유명한데 미국에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대통령 시절(1932~1945)의 보좌관 해리 홉킨스가 유명합니다.권력자의 최측근이었던 만큼 홉킨스에 대한 평은 여러가지입니다.극도의 혐오와 찬사가 어지럽지요.여하튼 미국 역사에서 둘은 최고의 단짝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루스벨트와 홉킨스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평가가 있습니다.특히 홉킨스는 미국이 소련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루스벨트 행정부 내에는 이른바 친소파가 있었는데 그 대표자가 바로 홉킨스입니다.그렇기 때문에 1945년에 루스벨트가 죽고 이듬해 홉킨스가 세상을 떠난 뒤에 시작하여 1949년 10월 중국대륙을 공산당이 완전장악하자 "이렇게 된 게 다 민주당 정권이 공산당에 유화적인 정책을 썼기 때문"이라는 보수파의 공격이 거세집니다.그 정점이 바로 매카시즘이었고 여기에 야당인 공화당의 공세가 섞여 민주당 내의 친공 용공 세력을 몰아내자는 여론몰이가 거셌습니다.
홉킨스는 이렇게 친소노선을 주창했다 하여 한국의 일부 보수파들에게도 비난의 대상이 되지요.햇볕정책을 비난하는 데 앞장선 원광대 교수 이주천의 박사학위 논문이 '루스벨트의 친소노선'임은 매우 상징적입니다.게다가 얼치기로 한국현대사를 귀동냥으로 배운 이들은 반탁운동=민족자주를 들먹이며 루스벨트를 욕하기도 합니다.하지만 좌익에서는 홉킨스가 결국은 친기업적인 인물이라고 폄하하지요.
한국의 운명에 홉킨스가 직접 관계한 것은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에 루스벨트를 수행할 때부터입니다.이때 홉킨스는 카이로 선언 문구에 "한국은 될 수 있는 한 일찍 독립을 하도록..."이라고 썼는데 루스벨트가 "한국은 적당한 시기에..."로 고쳤다고 합니다.이렇게 고친 것은 신탁통치를 염두에 둔 것이지요.
얄타회담(1945년 2월)에도 루스벨트를 수행했던 홉킨스는 그 해 4월 루스벨트가 급서하자 후임인 트루만 대통령을 도와 루스벨트의 노선을 완성하려 마지막 불꽃을 태웁니다.6월에 모스크바에 가서 스탈린과 회담하고 미국과 소련의 협조는 계속 될 것이라고 스탈린을 안심시킵니다.
한국 현대사에 관한 국내외의 책을 읽으면 로버트 셔우드의 <루스벨트와 홉킨스>가 종종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저자는 극작가 출신으로 루스벨트의 연설문 작성에도 관계한 친 루스벨트계입니다.고전영화의 애호가라면 로버트 테일러가 장교로 나와 비비안 리와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는 영화 '애수'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원래 브로드웨이 무대의 연극인데 대본을 로버트 셔우드가 썼습니다.그는 또 2차대전 직후의 미국을 그린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최고의 해'의 극본도 썼습니다.
한국현대사 관련 책에 인용된 <루스벨트와 홉킨스>를 보면 900여 페이지가 넘는 곳이 인용된 책도 있습니다.테헤란 회담(카이로 회담 직후의 회담)에 대한 인용도 700페이지가 넘는 곳이 인용되어 있습니다.엄청난 분량이지요.특히 이 정도라면 한반도의 운명이 논의된 2차 대전의 주요 전시회담에 대한 내용이 매우 많을 것입니다.그래서 한국현대사 관련 연구서들이 이 책을 인용하고 있지요.
물론 이 책은 1948년에 나왔고 이때는 2차 대전의 전시회담에 관한 주요 외교문서가 아직 공개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사실과 다른 추측성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워낙 많이 인용되는 책이니 그 뒤에 문서가 공개된 이후에 나온 연구서들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입니다.무엇보다도 저자인 셔우드가 극작가 출신인데다가 역사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탔으니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을 썼을 것입니다.이 책이 학술서적은 아니겠지만 루스벨트와 홉킨스의 개인적인 이력은 물론이며 격동의 역사기록으로도 가치가 있는 책이니 꼼꼼한 번역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선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