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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 이정 장편소설
이정 지음 / 책만드는집 / 2012년 12월
평점 :
장편소설 <국경>을 읽고
저자 :이정
펴낸 곳 : 책 만드는 집
발행일 2012년 12월 5일
문영숙
-북한의 식량난과 국보급 신라금관 밀매 뒤에 감춰진
남한 기자와 북한 관리의 우정과 고뇌-
며칠 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은하 3호를 발사했다. 나로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기를 꿈꾸던 우리에게 북한의 미사일발사 성공소식은 안보와 여러 가지 국제적 상황보다 앞서 자존심부터 상한다.
그러나 나는 작년 봄 북한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눈으로 살펴보며 압록강 탐사를 갔었다. 신의주에서부터 압록강 발원지까지 가는 동안 한숨과 분노와 서글픔으로 여행을 했고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가슴이 아프다.
온 산은 모두 껍질을 벗겨 놓았고 지붕을 잇지 못해 봄에 풀씨를 뿌려 그 풀이 자라면 그대로 지붕에 눕혀 보온효과를 대신한다던 북한사람들의 보금자리. 곳곳에 최악의 가난이 또아리를 틀고 있어 걸음걸이도 농사를 짓느라 들판에 있는 사람도 생기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 후부터 북한에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되었고 탈북자들의 아픔도 공감했다.
북한에서는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북한에서 말하는 고난의 행군 시기 불과 4년 사이에 300만이 넘게 굶어 죽었다. 우리가 뷔페나 음식점에서 산더미처럼 쌓이는 음식쓰레기를 버릴 때, 북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시장바닥에서 짐승처럼 살아야 했다. 배급이 끊기자 풀뿌리는 물론 나무껍질까지 벗겨 주먹밥처럼 뭉쳐서 먹으려고 그 딱딱한 나무껍질에 양잿물을 섞어 부드럽게 만들어 밥이라고 먹었다고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그때 보다는 나아졌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자기 나라 사람들을 굶어죽게 하면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광기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소설 <국경>은 북한의 혹심한 식량난 시기 남북한 문화재 공동조사라는 명분을 뛰고 북한으로 간 이인철이라는 기자와, 평양의 지도층에 속하는 황참사가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소설의 저자인 이정씨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이인철 기자처럼 실제로 기자 신분으로 남북한 문화재 공동조사의 임무를 뛰고 북한을 몇 번 다녀온 사람이다. 저자는 소설 곳곳에 자신이 북한에서 보고 느끼고 또 그들과 나누었던 상황들을 사실적으로 펼쳐냈다.
그래서 이 소설의 가치는 현재 북한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북한의 황참사는 식량난에 허덕이는 자기 휘하의 사람들의 허기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남한에서 온 기자 이인철에게 남북협력사업을 부탁한다. 협력사업이란 바로 북한의 문화재를 남쪽에 팔아서 그 돈으로 자기가 거느리는 사람들의 입에 밥을 먹이는 일이다.
이인철 기자는 인간적으로 황참사가 끌린다. 둘은 서로 의형제를 맺으며 한 핏줄을 강조한다.
황참사는 남북 모두 알만한 유명한 사람의 그림과 글씨를 빼내오고 이인철은 남쪽에서 황참사가 요구한 금액을 받아내 전달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실상들이 이인철 기자의 눈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배급이 끊겼는데도 배급소에 모여드는 유령같은 사람들의 모습, 시골의 죽음이 넘실거리는 풍경, 중국에서 유린당해 산에서 토굴을 파고 그곳에서 핏덩이를 낳아 키우는 탈북녀 정화, 이인철 기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정화를 구출한다. 이인철 기자는 동정이 사랑이 되어 정화를 한국으로 데려오지만 정화는 남한사회에 적응을 잘 못하고 방황한다. 그러다 결국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북한에서는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치부들이 남쪽 기자의 눈에 드러난다. 서로 다른 체제에서 오는 해프닝도 작가가 체험한 그대로다. 공연을 보러가서 김일성의 사진이 나오면 무조건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위기가 닥쳐오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무의식중에 했다가 수습하는 장면 등은 작가 이정이 기자시절에 그대로 체험한 내용들이 소설 속에 녹아들었다.
소설의 큰 틀은 황참사와 이인철 기자와의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둘의 협력사업은 최종적으로 신라금관에 이른다. 신라금관 역시 실제의 이야기라고 하니 한쪽에선 미사일을 쏘고 한쪽에선 아랫사람들을 굶어죽지 않기 위해 신라금관까지 빼돌려 곡식을 사야 하는 상황 이것이 바로 북한이다. 300만 명을 굶어죽이면서 죽은 김일성 한사람을 위해 수백억을 들여 금수산기념궁전을 짓는 저들.
소설의 무대가 남과 북인지라 사소한 일들도 모두 최고의 긴장감이 감돌법도 한데 소설속의 인물들은 때로 술집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처럼 편안하게 소통한다. 작가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일련의 일들이 바로 한 민족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은 끝이 있게 마련이라 결국 신라 금관을 빼돌리던 황참사의 신변에도 끝이 오게 되고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나이들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긴 하지만 소설의 결말은 비극으로 끝난다. 이인철 기자는 황참사를 친형처럼 생각하며 남쪽으로 데려오고 싶지만 황참사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귀로에서 러시아로 가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황참사는 성공하지 못하는데 정화가 교통사고로 죽는 설정이나, 황참사가 결국은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고 비극적 결말로 맺는 것은, 작가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남과 북의 현실, 그 아픔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국경>은 쉬운 문체라 아이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바로 60여년 전 대한민국은 남과 북이 갈려 수많은 이산가족을 만들어 냈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끼니를 잇지 못해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탈북을 한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이산가족이 생겨나고 있다. 왜 우리 민족의 비극은 또 다른 비극을 만들면서 살아야 할까. 기성세대들은 6-25를 모르는 신세대들이 많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어른들도 북한의 실상을 사실상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북한의 현재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소설 <국경>이 많이 읽혀서 남과 북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우리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소설 <국경>은 재미와 감동과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재미를 재미로 즐기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통일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서글픔이 존재하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