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 작은 삶에서 큰 의미를 찾는 인생 철학법
이충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자신이 온갖 부정성을 품은 존재임을 인정하고 이 사실을 부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리 긍정적인 방향의 에너지라고 해도, 한 방향으로만 향하는 에너지는 모든 것을 휩쓸어갈 뿐이다. 그것에 반하는 방향의 에너지는 아무리 그것이 사소해 보일지라도, 심지어 아무리 그것이 사악해 보일지라도 평형이라는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행복을 흘러넘치는 긍정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시각이다. 정신의 행복은 긍정성이라는 물을 안정적으로 담고 있는 부정성의 견고한 그릇을 전제로 한다.



...똑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이유와 원인은 각각 다른 관점에서 설명을 제시한다. 이유는 내 욕망과 지식을 바탕으로 나의 입장에서 내려진 결정의 측면을 강조한다. 반면 원인은 내가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조건을 강조한다. 김재권은 이 둘 중 삼인칭적인 원인이 아니라 일인칭적인 이유의 관점에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어야 자신을 한 명의 주체적인 행위자로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일상을 소재로 쓰면 그 어떤 뜻깊은 이야기도 진행되지 않고 그 어떤 아름다운 문장도 생겨나지 않는다. 오직 특별한 소재만이 의미 있는 이야기가 피어날 만한 유일한 원천이 된다. 소소한 일상 전반에서 하나의 경험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일상 바깥으로 나가서 그러한 경험을 찾을 수밖에 없다.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통합적인 경험을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인간은 건강한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소소함 속에서 보낸다. 이 시간이 무력하고 무의미하다면 삶의 대부분을 상실하는 것이다.



...근시안적인 늪에 빠진 짧은 순간에 해석학적 순환을 작동시키기가 어렵다면, 순간적인 강렬한 감정이나 생각이 약간 누그러졌을 때 좀 더 폭넓은 해석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하나의 해석을 종결된 것으로 취급해버리면 우리는 영원히 그 해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사태에 대한 해석이 종결되면 의미는 고착화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의 고착화를 최대한 막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종결된 해석이란 없으며 의미는 순환적으로 이뤄지는 해석의 과정 속에서 끝없이 새롭게 생겨난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러한 순환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죽음의 불확실성,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생겨나는 삶의 본질적인 불확실성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일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불확실성이 우리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양면성을 가진다. 한편으로 불확실성은 걱정과 불안의 근원이다. 진로가 불확실할 때, 금전적 소득이 불확실할 때, 건강 상태가 불확실할 때 우리는 크게 걱정하며 불안에 떤다. 다른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불확실성은 마음의 평정 상태로 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무엇이 진실인지 어차피 지금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악한 면모를 보이면 나는 짜증과 기쁨을 동시에 느낀다. 사악함을 목격해서 짜증나지만, 상대가 사악한 존재라는 나의 생각이 다시 한번 입증되어서 기쁘기도 하다. 그 사람이 객관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면 그게 더 신경에 거슬린다. 그 사람은 계속 악해야 한다. 마음 한 켠에서 나는 그 사람이 계속 악한 존재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악당은 사라져선 안 된다. 내 증오의 화살을 받기 위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야 한다.




...들뢰즈가 말하는 통제는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바대로 변화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준다. 그런데 그 자유의 방향성 자체를 미세하게 규제한다. 다시 말해,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이 고정된 틀에서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그 자체는 전체적인 방향성에 이끌린다...통제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학교에 있든 군대에 있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간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 의지의 방향성에는 특정한 색깔이 입혀져 있다. 들뢰즈는 훈육을 거푸집에 비유한 데 반해 통제를 모듈에 비유한다.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경험되는 시간은 양적으로 균일하게 펼쳐진 시간이 아니라 의미를 갖고 나타나는 시간이다. 온통 하얗게 눈이 쌓인 벌판을 오랫동안 걸어가다 보면 공간감각을 상실한다고 한다. 모든 지점이 구별 없이 다 똑같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온 시간이 다 균일하게 똑같이 펼쳐져 있다면 우리는 결코 시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시간을 시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유의미하게 돌출되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돌출된 의미들을 기준으로 시간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을 의미가 아니라 양으로서만 경험하는 사람은 시간에 대한 본래적인 이해를 잃어버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헬스의 정석 : 이론편 - 2019 개정판
수피 지음 / 한문화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육이나 체력을 기르고 싶으면 중량이든, 시간이든, 집중력이든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운동 강도’가 일정 기준, 소위 역치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역치는 심리에도 적용됩니다. 내가 힘들다고 의식해온 운동 강도에서는 근육이 100% 힘을 내고 있지 않은데도 습관처럼 힘들다고 느낍니다...그런데 생물학적인 한계치까지 다다른 게 아닌 한, 횟수든 중량이든 충분히 늘릴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비상시를 대비해 항상 여분의 능력을 남겨두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경우 개인차는 있지만 평상시엔 최대 근력의 70%까지 낼 수 있습니다. 운동을 통한 체력 향상은 이런 여분을 이용해 조금씩 자신의 최대치를 높이고, 다시 몸을 적응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레그익스텐션, 레그 컬처럼 몸을 고정한 상태에서 말단 부분만 움직이는 운동을 개방사슬운동(OKC, Open Kinetic Chain)이라고 합니다. 관절을 직접 누르는 하중이 없어 연골에는 부담이 적지만 움직임이 특정 관절에 집중되어 인대에는 큰 부담을 줍니다. 인대나 건 재활에서는 마지막 단계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죠.
 
오히려 스쿼트, 레그 프레스, 푸쉬 업처럼 손발을 지면에 고정하고 다른 여러 관절이 동시에 움직이는 폐쇄사슬운동(CKC, Closed Kinetic Chain)은 관절에 압박을 줘 연골에는 부담을 줄 수 있지만 움직임을 여러 관절에서 동시에 흡수해 인대에는 부담이 적습니다. 이런 이유로 건과 인대 재활에서는 이런 폐쇄사슬운동을 우선하여 실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근육의 성장은 만들어지는 속도가 분해되는 속도를 압도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호르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분법으로 보면 IGF-1·안드로겐·인슐린 등은 주로 성장에 관여하는 아나볼릭 호르몬이고, 코르티솔·카테콜아민 등은 주로 분해에 관여하는 카타볼릭 호르몬이죠. 성장호르몬은 표적 기관, 대사과정에 따라 양쪽의 성격을 모두 지닙니다.
하지만 실전에선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운동을 하면 양쪽 진영 호르몬이 모두 분비되고, 체지방 감소가 많아질수록 근성장에는 불리한 조건이 되는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근육 성장과 체지방 줄이기 중 무엇이 우선이냐에 따라서도 손익을 따져야 합니다.




...운동 강도에 따라 3대 영양소가 동원되는 비중이 달라집니다. 단백질은 운동 강도와 무관하게 열량 대비 거의 일정한 비율로 소모되는 반면, 지방은 강도가 높아질수록 적은 비율로 소모됩니다. 주의할 점은 앞에서 언급했듯 지방 연소의 비율이 낮아질 뿐 연소 총량은 더 많아진다는 사실입니다. 저강도 운동이 지방을 더 태운다는 속설은 ‘비율’과 ‘절대량’을 혼동한 결과입니다. 시간 대비 효율을 생각해도 강한 운동 쪽이 좋다는 건 진리입니다.




...기회의 창을 지지하는 견해에 따르면, 이 상태는 운동 후 1시간 정도까지 정점을 찍고 2시간까지 이어집니다. 이때가 지나면 세포가 영양을 끌어들이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세포들이 영양을 놓고 다투는 때라 모두에게 고루 영양이 돌아가도록 다량의 영양소를 공급하면 안 먹었을 때에 비해 근성장이 촉진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혼동하지 말아야 할 건 이 타이밍은 회복 및 근성장을 위한 영양소를 가장 활발히 빨아들이는 때일 뿐 이때 근육이 성장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근육의 성장은 운동 후 며칠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섭취 영양소의 총량에 문제가 없는 한 특정 타이밍의 영양 섭취가 전체 근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운동 전과 후를 기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근성장을 높이는 첫 번째 전제조건은 강한 운동으로 몸에 자극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최고의 수행능력을 위해 운동 전에 탄수화물이라는 연료를 충분히 넣어두는 것이죠...그럼 단백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백질은 3대 영양소 중 소화하기가 가장 어렵기 때문에 단백질을 섭취한 직후 1~2시간은 소화기에 혈류가 몰리고 에너지가 집중됩니다. 이 상태에서 운동을 하면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기 힘들고 심한 경우 토하거나 복통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니 일반인의 단시간 트레이닝에서는 운동 직전에 단백질은 먹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채식을 하면 아토피, 알레르기가 사라진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 역시 100% 맞는 말은 아닙니다. 자가면역질환은 외부 물질, 특히 단백질에 몸의 면역체계가 과잉 반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동물성 식품은 식물성 식품에 비해 단백질의 양이 많고 다양하니 당연히 빈도가 높습니다. 식물성 식품도 땅콩, 밀, 콩, 씨앗처럼 단백질 함량이 높으면 알레르기 빈도가 높고, 쌀이나 과일에도 알레르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한 알레르기 원인 중 하나인 꽃가루도 식물성이니까요.일부에서는 채식으로 바꿔 알레르기나 아토피가 호전되었다는 경험담이 많습니다. 이는 채식이라서가 아니고 섭취하는 단백질 종류와 양이 줄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육류로 식단을 바꿔도 증세가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도 지방량 위주로 고기 등급을 매기는 미국의 방식이 도입되어 지방이 많을수록 대체로 높은 등급을 받습니다... 게다가 등급을 높이려는 과잉경쟁 탓에 우리나라의 최고등급 한우고기는 지방량 위주로 한 평가 방법의 종주국 격인 미국의 최고등급 프라임 급보다도 지방이 훨씬 많은 기름덩어리가 되었습니다.
당장 비만이 사회문제인 상황에 소의 지방이 포화지방이냐 불포화지방이냐 따위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불포화지방도 살이 찐다는 면에서는 어차피 차이가 없고, 곡물을 먹여 키운 소의 지방 중 불포화지방산도 그나마 오메가-6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마블링은 처음부터 생기지 않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지방이 붙는 부위는 피하와 내장 주변입니다. 근육은 다른 부위에 지방이 꽉 차기 전까지는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최고등급 한우고기 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얀 지방꽃이 필 정도면 소의 상태가 어떨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몸을 만들고 건강을 위한다면 마블링이 없는 쇠고기를 드시는 게 돈도 아끼고 건강도 지키는 길입니다. 물론 환경도 살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컨드 브레인 부스트
티아고 포르테 지음, 이희령 옮김 / 쌤앤파커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라서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옛날 학교에서 그랬듯이 방대한 주제에 따라 정보를 정리하는 대신, 지금 현재 몰두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목표에 따라 정보를 정리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 전체에 걸쳐 여러 차례 반복할 핵심 내용인 ‘실행을 위해 정리한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다.


...지금 나의.프로젝트 목록을 명확히 정리하지 못하면 실제 업무량을 파악하기 어렵고, 따라서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기도 어렵다. 끝이 분명하지 않은 일은 프로젝트가 아니다.





...삶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이 우리가 세운 우선순위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이 이제 보이는가? 그 시점이 되면 ‘조사를 더 많이 수행할’ 시간 따위는 없다. 독서와 메모를 통한 조사를 ‘이미 해두었어야’ 하는 것이다. PARA의 내용물은 필요와 목표, 라이프스타일,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다양한 범주 사이를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 정보를 없애는 대신 현재 시점에 맞추어 이동하고 업데이트한다면 마침내 다가온 필요의 순간, 이미 준비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정리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를 더해주지 않는다. 효과적인 행동을 취하기 위한 마음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 이상 정리하는 일 자체에 내재된 가치는 없다. 이것이 PARA가 미니멀리스트적인 접근방식인 이유다. PARA는 당신의 필요가 달라질 때 아이템들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조금씩 ‘밀어내면서’ 옮기는 방식을 선택한다. 당신의 삶에 존재하는 변화에 유기적으로 대응하는 ‘보텀-업’ 방식이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이런 태도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모든 데이터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낡고 자질구레한 장신구 하나하나와 빈 박스를 집에 보관하려고 애쓰는 무의미한 노력과 같다. 이 콘텐츠의 대부분은 우리의 동의 없이 등장했고, 따라서 애착의 감정 없이 보관소에 보관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보관소에 저장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두려운 단계가 될 수 있음을 안다. 당신은 모든 파일을 어떻게 정리하고 싶은지를 몇 년 동안 생각해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그것들을 모두 보관소에 던져버리라고? 그렇다. 그것이 정확하게 내가 당신에게 하라고 말하는 일이다.기억하라. 당신은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는다. 만약 과거의 무언가가 정말로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자유롭게 보관소로 뛰어들어 부활시킬 수 있다. 하지만 추측하건데 설사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당신의 예상보다는 훨씬 더 적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검색 기술이 매년 더 좋아지고 있으며, 미래에는 점점 진보되는 검색 알고리즘을 통해서 파일에 접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 역시 다가오고 있다. 이는 미래에는 그저 AI에게 모든 오래된 정보를 검색해서 필요한 것을 찾으라고 요구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것이 정보를 꼼꼼하게 정리하는데 보내는 시간이 낭비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도와 관계없이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들, 관습 혹은 단순한 호감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커뮤니티, 실체도 없이 우리 삶의 테두리를 제한하고 경계짓는 국적이나 호적 같은 것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는 줄 수 있겠지만 그 위로는 영원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그러니 우리는 그저 나무둥치에 주저앉은 날개가 젖은 새처럼 하늘로 날아갈 수도 땅으로 떨어질 수도 없는 순간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재이는 연민이란 자신의 현재를 위로받기 위해 타인의 불행을 대상화하는, 철저하게 자기만족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는 것 같았다...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타인을 관조하는 차원에서 아파하는 차원으로, 아파하는 차원에서 공감하는 차원으로 넘어갈 때 연민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자신의 감정이나 신념 혹은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프랑스의 한 철학자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운다는 건 자신의 고통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행위라고 쓴 바 있다. 그 철학자의 명제를 사랑뿐 아니라 관계 전체의 차원으로 확장한다면, 나는 내 고통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눈물을 흘리는 순간 내가 취하게 될 자세와 그 자세에 맞게 조율될 마음까지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으므로 나 자신의 슬픔에까지 진심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어 어리석은 검열을 했던 것이리라.




....로도 알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시신을 내준 대가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뼈를 녹이는 듯한 후회와 고통으로 견뎌내야 할지에 대해. 후회는 주기적으로 반복될 것이고 고통은 점점 더 강도가 높아질 것이다. 한참을 달려왔다 믿어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시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순간의 선택에 대해 준엄한 질문을 던질 것이며, 로가 들여다보게 될 거울은 언제까지고 자기모욕적인 언어로 얼룩져 있을 터이다. 나는 지금, 로의 시간이 궁금하다.




....나는 재이에게서 듣고 싶다. 우리가 사랑의 고백에 인색했던 것은 더없는 행복, 완벽한 충만, 한순간의 천국 대신 다만 끊임없이 우리 사이의 감정적 불충분과 관계의 결여를 원해서였던 것뿐이라는,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우리 사랑의 정체성이라는 그런 말을 간절하게 듣고 싶다. 그럼 나는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너를 더 아껴줘야 한다는 신념을 저버린 적 없노라고 대답해주리라. 뜨거운 입김이 없었던 우리의 지난 시간이 편집된 필름처럼 한낱 픽션에 불과했을지라도 네가 안쓰러워 너를 지켜주고 싶었던 내 마음은 언제나 내가 일을 하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노라고도.




...그 과정에 나의 책임은 없다는 식의 부질없는 위로는 해주지 않는다. 자세한 것을 묻지도 않고 섣부른 판단도 하지 않는다. 박은 그저 묵묵히 들어준다. 내 이야기가 다 끝난 후에야 박은 조심스럽게 말할 뿐이다.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케의 눈물 - 대한검국에 맞선 조국의 호소
조국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8월
평점 :
품절


....참여와 실천이 고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사회 공동체에 살고 있는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플라톤Plato은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정치참여를 거부하는 데에 대한 벌 중의 하나는 당신보다 저급한 자들에 의해 지배당하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문제와 모순이 보이는데, 그것을 외면하거나 호도하는 것은 식자의 자기부정이다. 종종 황당무계한 허위중상도 받고 있으나 감수해야 할 일이다.




....2013년 9월 16일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이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한 말로 답을 대신한다.
“그들이 통치하니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들의 통치에 책임이 있으며 그들이 더 잘 통치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능력껏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회교리에 따르면 정치란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입니다. 정치는 공동선에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에게 사형을 내린 빌라도처럼 손을 씻고 뒤로 물러나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뭔가 기여해야 합니다. 좋은 가톨릭 신자라면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해 참여함으로써 통치자들이 제대로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법학은 ‘가치지향적 학문’이지 ‘가치중립적 학문’이 아니다. 어떠한 가치를 중심에 놓을 것인가를 스스로 분명히 하고, 다른 가치와의 소통과 타협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법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철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다른 학문을 알아야 한다. 법학은 독자적인 학문체계와 논리를 갖고 있고 또 그래야 하지만, 다른 학문의 시각과 성과를 흡수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법학은 편벽하고 건조한 개념과 논리의 묶음에 머물고 말 것이다.




...억압과 자유 사이에 서서 ‘양비론’ 또는 ‘양시론’을 펴고 타협을 말하는 것이 중용은 아니다. 그러한 태도는 ‘황금’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도금칠한 ‘중간치기’일 뿐이다. ‘중용’의 ‘중’은 ‘가운데’가 아니라 ‘정확함’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말한 것처럼, ‘비겁’도 ‘만용’도 아닌 ‘용기’가 ‘중용’이다. 요컨대 중용은 현실의 부정의와 부당함을 직시하고 그것을 고쳐서 최상·최적의 현실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행동하는 심성과 자세를 뜻한다. 신영복 선생이 말한, “방향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흔들리는 지남철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중용의 모습이라 하겠다.




...1987년 6월 항쟁이 이룬 정치적 민주주의는 다시 위기에 처했다. 나는 정치사상가 샹탈 무페Chantal Mouffe가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로 남긴 글의 진짜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됐다.
“민주주의는 불확실하고 일어날 법하지 않은 어떤 것이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항상 허약한 정복이며, 심화시키는 만큼 방어도 중요하다. 일단 도달하면 그 지속성을 보증할 민주주의의 문턱 같은 것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