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 작은 삶에서 큰 의미를 찾는 인생 철학법
이충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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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이 온갖 부정성을 품은 존재임을 인정하고 이 사실을 부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리 긍정적인 방향의 에너지라고 해도, 한 방향으로만 향하는 에너지는 모든 것을 휩쓸어갈 뿐이다. 그것에 반하는 방향의 에너지는 아무리 그것이 사소해 보일지라도, 심지어 아무리 그것이 사악해 보일지라도 평형이라는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행복을 흘러넘치는 긍정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시각이다. 정신의 행복은 긍정성이라는 물을 안정적으로 담고 있는 부정성의 견고한 그릇을 전제로 한다.



...똑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이유와 원인은 각각 다른 관점에서 설명을 제시한다. 이유는 내 욕망과 지식을 바탕으로 나의 입장에서 내려진 결정의 측면을 강조한다. 반면 원인은 내가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조건을 강조한다. 김재권은 이 둘 중 삼인칭적인 원인이 아니라 일인칭적인 이유의 관점에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어야 자신을 한 명의 주체적인 행위자로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일상을 소재로 쓰면 그 어떤 뜻깊은 이야기도 진행되지 않고 그 어떤 아름다운 문장도 생겨나지 않는다. 오직 특별한 소재만이 의미 있는 이야기가 피어날 만한 유일한 원천이 된다. 소소한 일상 전반에서 하나의 경험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일상 바깥으로 나가서 그러한 경험을 찾을 수밖에 없다.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통합적인 경험을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인간은 건강한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소소함 속에서 보낸다. 이 시간이 무력하고 무의미하다면 삶의 대부분을 상실하는 것이다.



...근시안적인 늪에 빠진 짧은 순간에 해석학적 순환을 작동시키기가 어렵다면, 순간적인 강렬한 감정이나 생각이 약간 누그러졌을 때 좀 더 폭넓은 해석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하나의 해석을 종결된 것으로 취급해버리면 우리는 영원히 그 해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사태에 대한 해석이 종결되면 의미는 고착화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의 고착화를 최대한 막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종결된 해석이란 없으며 의미는 순환적으로 이뤄지는 해석의 과정 속에서 끝없이 새롭게 생겨난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러한 순환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죽음의 불확실성,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생겨나는 삶의 본질적인 불확실성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일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불확실성이 우리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양면성을 가진다. 한편으로 불확실성은 걱정과 불안의 근원이다. 진로가 불확실할 때, 금전적 소득이 불확실할 때, 건강 상태가 불확실할 때 우리는 크게 걱정하며 불안에 떤다. 다른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불확실성은 마음의 평정 상태로 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무엇이 진실인지 어차피 지금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악한 면모를 보이면 나는 짜증과 기쁨을 동시에 느낀다. 사악함을 목격해서 짜증나지만, 상대가 사악한 존재라는 나의 생각이 다시 한번 입증되어서 기쁘기도 하다. 그 사람이 객관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면 그게 더 신경에 거슬린다. 그 사람은 계속 악해야 한다. 마음 한 켠에서 나는 그 사람이 계속 악한 존재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악당은 사라져선 안 된다. 내 증오의 화살을 받기 위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야 한다.




...들뢰즈가 말하는 통제는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바대로 변화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준다. 그런데 그 자유의 방향성 자체를 미세하게 규제한다. 다시 말해,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이 고정된 틀에서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그 자체는 전체적인 방향성에 이끌린다...통제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학교에 있든 군대에 있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간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 의지의 방향성에는 특정한 색깔이 입혀져 있다. 들뢰즈는 훈육을 거푸집에 비유한 데 반해 통제를 모듈에 비유한다.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경험되는 시간은 양적으로 균일하게 펼쳐진 시간이 아니라 의미를 갖고 나타나는 시간이다. 온통 하얗게 눈이 쌓인 벌판을 오랫동안 걸어가다 보면 공간감각을 상실한다고 한다. 모든 지점이 구별 없이 다 똑같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온 시간이 다 균일하게 똑같이 펼쳐져 있다면 우리는 결코 시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시간을 시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유의미하게 돌출되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돌출된 의미들을 기준으로 시간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을 의미가 아니라 양으로서만 경험하는 사람은 시간에 대한 본래적인 이해를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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