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가 이어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이 국내에 10월 25일 개봉했다.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엄청났지만 흥행이나 평에 대한 대중 반응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솔직히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지브리 스튜디오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흥행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이 없었다. 2010년 이후 신카이 마코토의 단편과 [너의 이름]을 시작으로 낸 연작들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왕좌는 더 이상 지브리가 아닌 시대가 돼버렸다. 


그런 와중에 미야자키 감독이 은퇴를 번복하며 현장에 복귀하여 오랜 기간 끝에 개봉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흥행보다는 거장 감독의 컴백에 대한 환영의 의미가 컸을 것이다. 



하루키 월드처럼 미야자키 세계관의 정점 

이번 작품은 실로 80세가 넘은 노장의 작품인데... 최근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과 뭔가 유사한 느낌이 들었다. 70대 후반인 무라카미 작가도 견고한 그만의 세계를 최근 작품을 통해서 풀어낸다. 벽 넘어의 세계에 대해서 너무 상세하게 서술하는데 정말 초기 100쪽을 읽는데, 2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머릿속에 하나하나 하루키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번 신작은 생과 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시대가 달라도 각기 성장 과정과 상황에 있어 인간이 겪는 성장통을 세련되고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대는 세계 2차 세계대전 무렵이다. 주인공 소년 마히토는 전쟁 때문에 어머니를 잃게 된다. 도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으로 인해 불바다가 된다. 마히토는 아버지를 따라 지방으로 오게 된다. 아버지는 어느새 나츠코라는 여성과 결혼을 했고, 그 여성은 임신한 몸으로 마히토를 맞이한다. 



새엄마에 대한 반항심을 가진 중2병 마히토와 또한 자신을 거부하는 남편의 아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힘들어하는 계모로서의 나츠코. 이 둘의 관계를 전적으로 알려주는 장면이 있는데 실로 인간적이고 미야자키 감독만이 펼칠 수 있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생에 대한 내공이 쌓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 밖에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주로 등장하는 추억을 돋우는 레트로 소품과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먹는 장면 그리고 귀여운 이생물체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또한 미소년 남주인 마히토는 곧디곧지만 착하고 의리가 있는 소년으로 등장한다. 물론 한 고집하는 소년의 심술궂고 철없이 반항적인 모습이 나오는데 이 또한 탑 넘어의 세계를 겪으면서 보다 다부지고 믿음직스러운 존재로 성장한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백미는 캐릭터

흔해 빠진 인물이 아니다. 단순한 조연도 너무나 특징을 잘 표현하는 지브리 극장판 영화들. 이번 작품에서는 마치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직원들을 모티브로 그렸을 것 같을 정도로 인간미가 넘친다. 특히 저택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은 한 명 한 명의 생김새와 걸음마까지 보면 볼 수로 친근하다. 우리 네들의 할머니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왜가리는 묘하고 심술궂고 야비한 존재인데, 이번 영화에서 왜가리의 캐릭터는 실로 중요하다. 실제로 왜가리는 지브리의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씨라고 한다. ㅎㅎㅎ 아니 미야자키 감독의 측근이자 동료인 그를 이렇게 표현하다니... 이 두 분의 관계를 왠지 상상 가능케 한다. 미운 정 고운 정 이런 건가.. ㅎㅎ


영상미는 말할 것도 없다. 너무나 매끄러운 화면은 더할 나위 없고, 마히토가 불타는 도쿄 길가를 헤치고 달려가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면이다. 마히토의 관점에서 보이는 불타고 아비규환인 세상의 흔들림이 이렇게나 잘 전달되다니... 2D 애니메이션인데 말이다!!!! 


물론 일본의 전쟁 배경이다 보니, 불쾌한 부분도 있다. 군수 사업을 하는 마히토의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전쟁을 통해 부를 축척하는 모습에서 탐욕스럽다. 거기다 전쟁으로 인해 음식도 물품도 풍족하지 않음을 투정하는 할머니의 모습들은 실로 그 시대에 있을 수 있는 모습으로 그려냈겠지만, 전범국인 일본 때문에 수많은 나라들이 고통 속에서 희생 당했기에 그저 하나의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넘기기는 쉽지 않았다. 


결론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극장 가서 봐야 한다. 재미있냐고 내게 묻는다면, 재미는 없다. 하지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럼 재미있는 게 맞지 않냐고 다시 묻는다면, 재미없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거장이 말하는 세상 사는 이야기, 보통 사람이 아닌 애니메이션 신이 말하는 세상 이야기인데 안 보면 손해다. 


하임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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