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비비언 고닉 선집의 마지막 작품인 <끝나지 않은 일>의 티저북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작성하였습니다.


  비비언 고닉의 작품, 특히 비비언 고닉 선집의 첫 번째 책인, 엄마와 딸의 필연적인 애증관계를 다룬 첫 번째 작품인 <사나운 애착>을 읽은 사람이라면, 비비언 고닉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날카로운 문체로 파고드는 작가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비비언 고닉은 서평, (래디컬 페미니즘으로부터 시작된)저널리즘, 에세이 등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안겨주었고, 그 이야기들은 항상 뉴욕의 브롱크스에 위치한 유대인 가정에서 자라온, 혹은 뉴욕에서 홀로 살고 있는 자전적인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 지극히 자전적인 이야기로부터 이야기를 꺼낸다는 점은 (필연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했을)독자와 화자를 격리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독자와 화자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비비언 고닉이라는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는 글의 한계점이 아닌 출발점이 된다.   

  선집의 마지막권(비비언 고닉의 광팬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슬프기 그지없다)인 <끝나지 않은 일>은 회고록과 문학 비평이라는 두 가지 장르(장르를 구별하는 것이 유의미한지는 모르겠지만)를 동시에 다룬다. 회고록과 비평이라는 글의 공통점은 비교적 확고한(회고록의 경우 재서술을 통해 점차 확고해지는) 주관이 개입된다는 점이다. 비비언 고닉의 맹렬하고 사나운, '날것'에 가까운 글은 일반적인 경험부터 지극히 사적이고, 어쩌면 밝히고 싶지 않아 할 만한 경험까지 거침없이 '까발리면서' 전개된다. 진솔한 것을 넘어 과감하고 거침없는 글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내 경험으론, 인생 초년에 중요했던 책을 다시 읽다 보면 긴 의자에 누워 정신분석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꽤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특히 어렸을 때부터 책을 끼고 다니는 '문학소녀'였던, 지금도 책을 사랑하는 '여성'에게 비비언 고닉은 첫 번째 문장에서부터 정곡을 찌르는 말로 인사를 건넨다. 점심시간 밥을 굶고 도서관에 콕 박혀 있던(그리고 고등학생 때는 도서관의 '야자실화'에 화를 냈던)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첫 문장부터 마구 박수를 치면서 읽었다. 어릴 적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 내가 동경했던 인물과 사랑했던 스토리의 디테일 하나하나가 당연히 머리에 남아있는 것 같지만(해리 포터 시리즈의 첫 문장을 모두가 외우고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 시간이 지나 머리가 굵어진 다음 그 책을 다시 집어들면(그리고 어린이용으로 편집된 도서가 아닌 원작을 보게 되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예로, 대학 시절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 도움을 많이 받았던 <소공녀>를 들여다보자(비비언 고닉이 썼듯, 문학 작품은 하나의 강렬한 메세지를 향해 달려간다는 말을, 그리고 책의 의미가 단순히 다양한 세상을 여행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한밤중에 일어나는 티 파티와 낡은 다락방이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사라의 아버지인 크루 씨가 인도에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 그다지 달갑게만은 느껴지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사라의 자존심을 잡아 준 인물이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점도 완역판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비교적 최근 어린이판으로 읽었던 <보물섬>이 만화 <원피스>처럼 낭만이 가득한 이야기가 아닌(<원피스>의 세계도 디아스포라에 가깝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로 보이는 것도 내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주로)시대적, 공간적 배경, 그리고 각색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과 낯섦', 혹은 인물들의 '불완전성'은 절대로 어린 시절의 사랑을 멈추게 만들지 못한다. 독서의 의미를 단순히 '현실도피'로만 규정하는 애서가는 없을 것이다. 처음 도서관이나 서점에 처음 방문했던 때의 놀라움, 종이 특유의 향과 팔락거리는 감촉, 내가 좋아하던 서가나 의자,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은 당시 읽었던 책과 단단하게 붙어 떨어지지 않게 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 사랑했던 책을 다시 읽고 끊임없이 회상하면서, 그 시절의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므로 책에 대한 비평은 결국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더이상 어리지 않더라도, 하나의 작품에 대한 감상이 '일인칭'으로부터 출발하는 현상은 계속된다. 드라마 <프로듀사>에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신디 씨의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는 위로가 등장한 적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첫 번째 챕터에서는 비비언 고닉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저널리스트 겸 작가로 거듭나는 과정 또한 그려져 있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정체화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서사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서사화를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될 때마다 디테일이든 핵심이든 그 내용은 달라지고, 이를 통해 우리는 '사실' 혹은 '진실', 그리고 '자신다움'에 가닿게 된다.). 이를 위해 (적어도 비비언 고닉에게)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글이다. 글을 쓰면서, 즉, 엉켜있는 머릿속을 가시화하여 재배치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고, 이를 공개하게 되면 느꼈던 감정과 불안은 극대화된다. 비비언 고닉이 글을 쓰기를 주저하는 사람에서 글쓰기를 직업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되어가고, 그 과정에서 용기를 낸 경험을 통해 많은 용기를 얻었다. 꼭 글이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꿈같은 상황에 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임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비비언 고닉 선집의 시작점인 <사나운 애착> 서평단 선정(당시의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기보다는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를 보다 파고들려 했다.)을 계기로 알게 된 이 작가와 선집의 맹렬함과 솔직함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비비언 고닉은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특유의 '호전성'을 통해 드러내는데, 거침없이 할 말을 하고야 마는 화자에게 빠져들지 않을 독자는 없다고 생각해본다. personal journalism이라는 고닉의 언어를 파고드는 등 세심하고 치열한 편집은 이 책의 발돋움을 돕는다. 비비언 고닉 선집의 마지막 책인 <끝나지 않은 일>의 서평단으로 활동하면서,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작가와 나를 동일시하거나, 품었던 동경을 강화하는, 이를 통해 나 역시 자신에가 한발 더 다가가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서평단에 선정된 독자에게 보내는 다정한 메세지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비비언고닉 #끝나지않은일 #글항아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