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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령군, 망국의 요화
임나경 지음 / 밥북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 p.55
"제 서방을 독차지하고 싶은 여인네의 마음도 무섭다만 더 무서운 것은 말이다. 아들에 대한 어미의 검질긴 욕심이다. 시모의 심술은 하늘이 내린다고 하지 않더냐?"
▶ p.183
곤란해진 무녀가 왕비에게 눈물로서 억울함을 호소하자 늘 그랬던 것처럼 왕비는 자신이 아끼는 그녀를 완벽히 보호해주기 위해 백성을 저버렸다. 의금사는 물론 관찰사에까지 이 일을 입에 올리는 자는 엄벌에 처하도록 명을 내렸다.
이 책은 조선시대 명성황후 시절의 이야기이며, 진령군은 조선후기에 왕과 왕비를 쥐락펴락하며 호화롭게 살던 무당이다. 진령군과 명성황후는 실존 인물이나 진령군의 탄생과 몰생년도는 정확하게 알려진 사실이 없으며 떠도는 추측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는 1인칭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화자는 화랭이 길생이라는 사람으로 몰락한 양반 집안의 자제이며, 진령군이라는 무당곁에서 맴도는 인물이다. 처음부터 그가 진령군 곁에 있던 것은 아니다. 몰락한 집안으로 인해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던 찰라, 민대감이 찾아왔고 그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나라의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는 진령군의 약점을 캐내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에게 그에 걸맞는 대가를 주겠노라고 약속하였다.
길생은 민대감의 말을 믿었고, 그 길로 진령군의 측근에 머물게 된다. 진령군 곁에 머물며 기회를 노리다가 그녀가 없는 틈을 타, 중요 문서를 찾아 뒤지던 중에 그녀에게 발각되고 만다. 길생을 측근에 두고 믿었던 만큼 실망을 했던 진령군은 그를 신당에서 쫒아내보내기까지 한다. 그렇게 그는 한 푼 없이 신당에서 쫒겨나게 되고, 그러던 중 누군가의 습격에 의해 목숨까지 잃을 뻔 하게 된다.
그 이후에도 진령군은 무당인 진령군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어떻게든 진령군과 이어져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그 세계에 빨려 들어가 책장이 훌훌 넘어갔다. 중후반쯤 넘어가게 되면 그녀가 얼마나 무례하게 굴던지, 정말 읽던 도중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마냥 나쁘게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어쩌다 이렇게 독한 성격이 되었는지, 길생에게 털어 놓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 또한 움찔하곤 한다. 길생도 그녀의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해 나이가 든 무당에게 '역겹다'라는 느낌을 많이 느끼곤 하지만, 그녀의 옛 이야기를 들을 때 만큼은 그녀에게 애뜻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이라 그럴까? 나도 모르게 길생에게 감정 이입이 되었고, 그가 그녀에게 애뜻한 감정을 느낄 때면 나 또한 애뜻한 감정에 젖어들어서 한번, 두번 더 읽어보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를 어떤 방면에서는 이해를 하게 되었으나, 한 나라의 왕비를 쥐락펴락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또한 눈살이 찌뿌려지며 어찌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 소설의 작가인 임나경작가님은 소설을 읽기에 앞서 작가의 말에 이런 말을 써 놓으셨다.
'제가 이 작품을 집필한 동기는 다시는 지난 겨울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겠다는 일념 때문입니다. ... 지난 겨울 광장의 촛불을 다시 떠올리며, 참으로 국민이 위대했다는 생각에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2016년 겨울의 일과 조선후기의 진령군이 한 나라의 왕비를 쥐락펴락한 일. 두 가지는 참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진령군도 아픔이 참 많았고, 한 나라의 왕비인 명성황후에게도 아픔이 있다. 또한 최순실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테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분께서도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아픔이 크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며 역사의 같은 일이 되풀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정치 혹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이라면, 혹은 나처럼 관심을 가지려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쉽게 잊혀지지만은 않을 내용이기 때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