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 소설, 향
최정나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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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 최정나, 작가정신 <로아>를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가족. 그 가깝고 소중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이 숨 막히게 잔인했다. 언니 상은은 동생 로아를 때리고 엄마 기주는 두 딸을 방치한다. 심지어 상은이 로아를 때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은을 말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동생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상은을 탓하게 되지만 소설 끝에 다다라서는 알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엄마 기주의 '방치와 방관'으로부터 생겨났음을. 애초에 그녀가 두 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안아주었다면 상은이 보상 심리의 격으로 로아를 때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 분해 서술

"나는 네가 되어본다. 너의 눈으로 나의 세상을 본다” 

<로아>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분해 서술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 방식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로아는 자신을 떄린 언니, 상은이 되어 본다. 그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상은과 기주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무자비한 폭력의 모습은 '가해자의 서사' 보다도 '피해자의 증언'에 가깝다. 그래서 이 소설이 소중하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시선으로 그때를 보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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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아의 서문

2, 3, 4: 로아가 상은이 되어 되짚는 폭력

5: 로아가 기주가 되어 되짚는 폭력

6~9: 분열된 로아의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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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로아 > (로아를 때린) 상은 > (상은과 로아를 방치한) 기주로 흘러간다. 상은은 엄마가 자신을 방치하며 생긴 외로움을 로아로부터 채우고자 한다. 동생이 자신에게 복종하고 자신만을 위해 살면 어느 정도 그 상처가 충족되리라 생각한다. 엄마 기주는 자신이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두 딸을 방치한다. 딸들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자신의 세상만 중요하다. 이 둘 폭력의 상대가 되는 로아는 미소만 지을 뿐이다. 그것이 로아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을 넘어서 자신의 세상에 함몰되어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 가해자와 피해자

"이 회귀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님을 명백히 밝힌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가해자의 시선을 옹호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해자의 말들은 불분명해지고 로아가 보이기 시작했다. 책을 두 번째 읽었을 때, 이것이 작가님이 의도한 방식임을 알았다. 신기하게도 가해자의 서사가 펼쳐지는데 피해자만 눈에 들어왔다. 피해자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나열하지 않지만 독자들은 피해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서술 될 말들보다도 더한 고통을.


▶ 로아, 후기

<로아>는 작가정신의 소설, 향 시리즈의 신간이다. 작정단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읽기 힘들었던 책이다. 2장 시작하면서부터는 책의 주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내가 이정도로 방치 되고 상처 받았으니 너에게 이래도 되는 거지' 라며 폭력을 휘두루는 상은을 소설 밖에서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화가 나기도 한다.


로아는 그 분해된 자신들을 통해 상은과 기주를 들여다보고, 결국 다시 눈을 뜬다. 파편화 된 자신을 안아주는 느낌이 들어 슬픈 동시에 다시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며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힘겨웠던 것을 기억한다. 작정단 활동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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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작정단이 받은 선물은 최정나 작가님의 <로아>예요. <로아>는 작가정신의 '소설, 향' 시리즈의 신간 도서입니다. 지난 작정단 활동 당시 '소설, 향' 시리즈 중 조경란 작가님의 <움직임> 신작이 나와서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이번은 또 어떤 내용의 소설일지 아주 기대가 됩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그것은 방치로부터 생겨난다는 무거운 주제를 전하는 책이에요. 피해자가 가해자로 분해 서술하는 기법이 인상 깊었고 '이런 식으로도 책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사유할 수 있는 책을 만나 좋았습니다. 책을 선물해주신 작가정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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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어 네 마음
김효정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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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끄 4기의 마지막 활동 도서는 바로 김효정 작가님의 <알고 싶어 네 마음>이에요. 강아지 초코가 자신의 주인인 진우의 하루를 알아가는 그림책이에요. 이 알아가는 방식이 독특하고 재미있는데요. 바로 '가방 속 물건의 냄새를 맡는 것'이에요! 그럼 진우의 하루를 알 수 있게 된답니다. 가방에 쏙 들어가서 냄새를 하나하나 맡아보는 초코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ㅎㅎ 그럼 줄거리를 볼까요?

1. 줄거리
진우가 시무룩한 얼굴로 하교했어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초코는 진우의 가방 속에 들어가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보려 해요. 지갑에는 신나신나 냄새가, 분홍색 토끼 키링에는 두근두근 냄새가 느껴져요. 진우는 토끼 키링을 유진이에게 주지 못해 시무룩해했던 것이었죠. 초코는 산책을 나가 진우와 유진이를 만나게 해주고, 진우의 주머니에 토끼 키링을 끼워줘요. 진우는 유진이에게 토끼 키링을 잘 전해줄 수 있을까요?

2. 강아지가방
강아지 > 후각 발달
가방 > 하루 동안 쓰는 물건들이 모인 곳

강아지의 특성과 가방의 특성이 잘 어우러진 책이에요. 강아지는 냄새를 잘 맡잖아요. 이 그림책에서는 그 냄새를 '두근거리는 냄새' 등과 같이 감정과 연결지어요. 이게 정말 낭만적이고 귀여웠어요. 어떤 물건을 보면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잖아요. 그걸 냄새로 표현한다는 발상이 독특하고 재미있었어요.

가방 속 물건은 나의 하루를 보여주기도 하죠. 놀러갔다 온 후 가방 정리를 하면 알 수 있어요. 아! 이거 거기서 산 그건데! 하면서요.ㅎㅎ 가방에는 내가 하루 동안 쓴 물건들, 내게 필요한 물건들이 들어가 있죠. 특히나 저는 영수증을 모으고 다녀서 내 가방을 보면 정말 나의 하루를 다 볼 수 있겠더라구요.

가방 속 물건의 냄새로 누군가의 하루를 알아본다는 발상이 새로웠어요. 이 그림책을 보기 전 강풀 작가님 원작의 <무빙>이라는 드라마를 봤어요. 거기서 번개맨이 물건을 통해 누군가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이렇게 초능력으로 추억을 보는 스토리는 많이 봤어도 감정이 섞인 냄새로 표현하는 스토리는 처음이라 신선했어요.

그리고 그림책 막바지에 아버지의 가방으로 들어가는 초코의 모습을 통해 초코가 가족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어요.

3. 오늘의 냄새
오늘 하루 제게는 설렘의 냄새가 날 것 같아요. 오늘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이기 때문이죠.ㅎㅎ 시간이 12월 3일에 멈춘 것 같아요...; 정말 집회 나가고 뜬 눈으로 밤 지새우면서 12월이 다 가버렸네요. 그래도 이브와 크리스마에는 크리스마스를 듬뿍 느껴보려구요! 모두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기를 바라요. ;)

4. 뭉끄4기 후기
문학동네의 그림책 서포터즈, 뭉끄! 약 6개월 동안 이어지던 뭉끄 4기 활동이 끝났어요. 원래 12월에는 활동 도서가 없었는데 뭉끄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로 <알고 싶어 네 마음>을 보내주셨다고 해요. 뭉끄들을 챙겨주신 편집자님과 마케터님들 감사합니다.

뭉끄 활동을 하며 좋았던 것은 늘 책 앞장에 큐레이션 편지가 꽂혀 있었다는 것이에요. 편집자님의 편지를 읽으며 책의 의도도 명확하게 알 수 있었고, 또 어떤 의도로 책을 보내주신 건지도 알 수 있었어요. 꼼꼼한 편지 덕에 더 재미있는 그림책 읽기 시간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ㅎㅎ

6개월 동안 감사했습니다, 문학동네그 시간 동안 뭉끄 활동도 하고 면접도 보고 다양한 활동을 했네요.ㅎㅎ 매 달 오는 그림책을 기다리며, 또 그 그림책으로 힐링 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쉽게도 북토크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책까지 전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행복한 연말이 되시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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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골짜기와 무민의 첫 겨울 무민 골짜기 이야기 시리즈
이유진 옮김, 토베 얀손 원작 / 어린이작가정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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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습니다. 기다리고기다리던 작가정신의 무민 골짜기 시리즈작! 제가 작정단이 된 이유! No.1 무민 책을 출간한 출판사라는 것!! 하얗고 동그랗고 귀엽지만 가끔은 사고를 치고 친구들을 사랑하는 무민!! 저 작가정신 소포 받고 진짜 너무 행복해서 방방 뛰었어요. 제가 작정단 활동할 때 무민 신간이 나와서 너무 행복해요. 완전 럭키무민이자나~?

1. 무민 골짜기 시리즈
무민 골짜기 시리즈는 토베 얀손의 무민 연작소설을 아이들이 읽기 쉽게 재해석한 그림책 시리즈예요. 그림과 글 모두 달라지기 때문에 원작과 그림책을 번갈아 읽는 재미가 있어요. 이미 원작을 읽으신 분들이더라도 무민 골짜기 시리즈를 꼭 읽어보세요! 원작보다 더 밝은 분위기의 무민을 만날 수 있어요.ㅎㅎ 특히 이번 신작 <무민 골짜기와 무민의 첫 겨울>은 그림책 색감이 너무 예뻐요

토베 얀손은 무민 연작소설의 그림을 컬러로 그리지 않았죠. 무민 연작소설이 나온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직후였기에 애도와 추모의 의미로 흑백의 대비를 활용한 펜화만 썼다고 해요. 반면 무민 골짜기 시리즈는 화려하고 환상적인 색감을 활용해요. 무민 연작소설을 읽고 그림책을 보면 '원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재해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토베 얀손은 2001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무민 시리즈는 다양한 방향으로 재해석 되고 있어요. 작가의 생은 유한할지라도 그들이 남긴 작품은 영원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합니다.

2. <무민 골짜기와 무민의 첫 겨울>
<무민 골짜기와 무민의 첫 겨울>은 토베 얀손의 <무민의 겨울>을 좀 더 읽기 쉽게 각색한 그림책이에요. 그림도 화려해지고 내용도 쉬워졌어요. 다만 생략된 부분들이 많으니 더 자세한 이야기를 읽고 싶으신 분들은 그림책을 읽고 <무민의 겨울>도 읽으시는 걸 추천해요! 저는 그림책을 읽고 원작 소설을 읽으니 이해가 잘 안 갔던 부분들이 이해가 가더라고요.ㅎㅎ

2023년 6월 나온 8권 <무민 가족과 등대섬> 이후 아주 오랜만에 나오는 무민 골짜기 시리즈예요. 무민 골짜기 시리즈는 총 9권이 나왔고 앞으로도 계속 될 예정이에요. 내가 무민 덕후인데 이제 더 볼 콘텐츠가 없다~ 하는 분? 고개를 들어 어린이 작가정신을 봐주세요. 시리즈는 계속 됩니다.

3. 무민은 겨울잠을 자요
책 줄거리를 보기 전 잠깐! 무민이 겨울잠을 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때문에 <무민 가족과 크리스마스 대소동>을 보면 무민 가족 모두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답니다. 이번 <무민 골짜기과 무민의 첫 겨울>은 겨울잠에서 깬 무민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겨울’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처음 맞이하기에 두렵기도 했던 계절이 마음에 쏙 드는 계절로 바뀌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4. 줄거리
무민은 겨울잠에서 깼어요. 무민마마를 깨워보지만, 도통 일어나실 생각이 없어보여요. 무민은 밖으로 나와 모험을 하는 도중 친구 '투티키'와 '소리우'라는 개를 만나게 되고 취미활동에 몰입하는 '헤물렌'도 만나요. 하지만 무민의 친구들은 헤물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헤물렌은 정말이지 쉬지 않고 움직였고, 친구들은 헤물렌이 귀찮아졌거든오. 무민은 헤물렌이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키를 좋아하는 헤물렌에게 외로운 산 이야기를 하며 이곳을 떠나게 하려 해요. 그런데... 무민과 투티키가 헤물렌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를 소리우가 듣고 말았어요. 무민은 그 다음달, 헤물렌에게 떠나지 말고 같이 있자고 말하지만 소리우는 그걸 모른채 헤물렌을 찾으러 떠나요. 사라진 소리우를 헤물렌이 찾게 되고 다시 행복해진답니다. 무민은 집에 놀러온 친구들에게 잼을 선물하며 그림책은 끝이 나요. 비록 잼이 동났지만, 무민은 겨울이 좋아졌어요.

5. 무민 시리즈
무민은 연작소설이에요. 따라서 원작인 토베 얀손의 연작소설은 차례대로 읽으면 인물 간의 서사가 쌓이는 과정과 인물의 특성을 잘 알 수 있어요. 무민 골짜기 시리즈는 무민 연작소설의 차례를 그대로 따르고 있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연작 그림책'도 아니랍니다. 무민 골짜기 시리즈는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그림책 시작 전, 등장인물 소개를 넣었어요. 이걸 읽고 그림책을 읽으면 이해가 더 쉬울 거예요. 연작 그림책은 아니지만 같은 시리즈이기 때문에 읽으면 읽을수록 무민과 친구들에게 빠지게 될 거예요!

6. 추천
제가 무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귀여워서도 있지만 무민 시리즈 속 메시지가 좋아서도 있어요. 무민이 가진 모험심과 따뜻한 마음! 나보다 남을 생각하고 상처주지 않으려 노력하죠. 무민은 친구에게 모진 말을 하지 못하고, 설령 그렇다해도 사과하고 미안해할 줄 아는 트롤이에요. 무엇보다 무민마마와 무민파파도 순수하고 예쁜 말로 무민을 응원해주는 분들이시죠. 무민의 친구들은 가끔 심술궂기도, 말썽을 부리기도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예요. 무민 시리즈를 읽으며 무민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무민 골짜기와 무민의 첫 겨웅>과 함께 보면 좋을 무민 골짜기 시리즈는 <무민 골짜기와 크리스마스 대소동>이에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두 그림책 모두 그림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트리 아래에 놓기에도 딱이랍니다. 책을 선물해주신 작가정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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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
김개미 지음, 이수연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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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가본 적 있나요.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한 바다 말이에요.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해 모래를 밟던 그날, 달빛이 얼마나 밝은지 알게 되었어요, 달을 가리던 구름이 걷힐 때마다 철썩이는 파도와 그 해변의 만이 보였거든요.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배를 태야 하는 사람들을 떠올렸어요. 숨 죽인 채 달빛에 의지해 배에 오르겠죠. 디딜 것 하나 없는 바다에서 달빛을 붙잡는 사람들. 그들은 내몰린 그곳에서 자그마한 가능성을 읽는 사람들이에요. 도착할 수 있을지, 행선지가 어디일지 확신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요.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요.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는 김개미 시인님이 쓰고, 이수연 작가님이 그린 그림책이에요. 책 제목만 봤을 때는 광활하고 푸른 바다가 생각났어요. 자유로움을 말하는 책인가?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장을 열었답니다. 면지에는 어둡고 세찬 바다가 그려져 있었어요. 이 면지를 보자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누군가의 생과 사가 갈리는 곳이 바다임을 잠시 잊고 있었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지만, 그 사람들이 다 바다로 가려는 것은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는 바다로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전쟁과 재난 등으로 더는 땅에 발을 디디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은 바다로 내몰려요. 그들 모두 바다로 향하지만, 바다를 가려는 것은 아니었죠.

김개미 시인은 말해요. ‘바다에 도착하면 모든 길이 숨어 버리지만 어떤 길은 거기서 시작’된다고요. 그 길은 처절하고 간절한 길이에요. 동시에 낯설고 불안정한 길이에요. 그렇지만 그들은 바다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너울이 날뛰는 사나운 바다보다 더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김개미 시인의 짧고 간결한 문장들은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고 이수연 작가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도와줘요.

이수연 작가는 그들의 모습을 ‘날개가 꺾인 철새’의 모습으로 표현해요. 철새는 따뜻한 곳을 향해 바다를 건너야만 하는 새들이죠. 마음과 몸을 다친 채 바다를 건너야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어둡고 탁한 색채와 힘 있는 붓질로 탄생한 두꺼운 선들은 떠몰린 이들의 폭력적이고 암울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묘사해요.

그림책은 ‘어디에나 꽃이 있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주며 끝이 나요. 저는 이 그림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 부분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했어요. 펼쳐지는 장을 사용해 장의 임팩트를 높였고, 밝고 화려한 색채를 등장시켜 메시지를 강화합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2024년, 그 모든 아픔과 상실이 끝나고 평화와 희망이 오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제게 딱 필요했던 그림책이에요. 이수연 작가님의 그림을 좋아해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를 위시리스트에 담아두었는데 문학동네에서 선물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왜 배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 앞엔 항상 낡고 작은 배가 올까
배는 저편의 항구를 향해 가지만 모든 배가 다 항구에 닿는 건 아니야
기억해야 해
항구에 도착해도 한 사람도 내리지 않는 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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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작은 곰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153
정호선 지음 / 길벗어린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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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어린이 인스타그램에 <안녕! 작은 곰> 서평단 모집이 올라왔을 때 꼭 신청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을 이루는 솜을 쏙쏙 빼내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작은 곰을 만나고 싶었거든요. 서평단으로 뽑아주신 길벗어린이 감사합니다. 그러면 <안녕! 작은 곰> 줄거리를 먼저 볼까요?

★ 안녕작은곰 줄거리
고물상에 버려진 작은 곰. 기억을 잃었고 이곳이 어딘지도 알지 못해요. 작은 곰은 자신의 배가 찢어진 것을 발견해요. 솜이 삐져나오려 하고 있었죠. 작은 곰은 솜을 밀어넣고 발걸음을 옮겨요. 그러다 울고 있는 아이를 만납니다. 솜사탕을 먹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은 작은 곰의 배가 간질간질! 솜이 쏙!하고 나와요. 작은 곰은 솜을 쏙쏙 뽑아 솜사탕을 만들어주죠. 이후 만난 사람들의 소원도 자신의 솜으로 이루어줘요.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작은 곰의 몸에는 힘이 없어져요. 자꾸만 눈이 감기죠. 그때, 누군가 작은 곰을 불러요. 작은 곰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 배에 새로운 솜을 채워넣을 수 있을까요?

★ 곰인형의 의미
<안녕! 작은 곰> 속 곰인형은 '아이들의 상상'을 의미해요. 동시에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 자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고 그 소원과 기적을 믿는 모습을 보여주죠. 곰인형에게 솜은 뼈대와 같은 역할을 해요. 이 솜들이 있어야 곰인형이 서 있을 수 있고 지신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어요. 이렇게 소중하고 중요한 걸 남을 위해 내어주는 모습. 따지지도 않고 재지도 않죠. 누군가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만 가지고 있죠. 솜을 다 빼서 눈이 감길 때도 곰인형은 자책하거나 남탓을 하지 않아요. 이 모습이 순수하고 진실된 아이들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만이 믿는 순수한 상상. 곰인형은 아이들이 그 상상을 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현실에서도, 이 그림책에서도요.

★ 솜 의 의미
솜은 곰인형을 이루는 것 중 하나예요. 인형들은 솜이 없으면 천만 남아 제대로 서 있을 수 없게 된답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남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모든 솜을 내어주고 눈이 감길 때, 작은 곰에게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요. 그 주인은 솜을 채워주고 배도 꿰매어 준답니다. 모두의 소원을 이루어준 작은 곰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모습으로 그림책은 끝이 나요.

★ 인형
그림책을 보자마자 제가 안고자는 곰인형이 생각났어요. 그 곰인형은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께 선물로 받은 장난감이에요.ㅎㅎ 이제 때가 많이 타고 꼬질꼬질해졌지만 여전히 저는 이 인형을 안고 자요. 사실 인형은 소모품이잖아요. 사람의 손이 닿으면 닿을수록 솜은 뭉치고, 털은 때가 타고, 이음새는 벌어져요. 하지만 저는 이 인형을 버리지 못하겠어요.

이 그림책을 보며 펑펑 울고 말았답니다. 블락비의 Toy라는 노래가 있어요. 그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와요. '난 너에게 더 이상 바랄게 없어. 나로 인해 채워지는 널 본다면. 얼마 안 돼 구석에 놓이겠지만 이 운명은 네 소유인 걸'. 그림책에 나온 것처럼 어쩌면 장난감이라는 존재는 '자신을 내어 꿈을 지켜주는 존재'이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저의 곰인형을 버리지 못하는 것 또한 나의 어린 시절과 그때의 행복했던 상상력을 놓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존버닝햄 작가님의 책 중 <마법 침대>라는 책이 있어요. <안녕! 작은 곰>을 읽으며 그 책을 떠올렸어요. <마법 침대>는 어른의 생각으로 아이들의 상상을 판단하고 제한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해요. 침대에 누우면 환상 여행을 시작하는 주인공. 낡고 작아졌지만 주인공은 그 침대를 버리지 못한답니다. 그 환상 여행은 권위적인 어른들은 개입할 후 없는 것이에요. 순수한 아이들만의 것이죠. 이제 컸으니 침대를 바꾸려하는 어른들의 모습과 여전히 자신의 상상력을 지키고자 하는 아이의 모습이 상반되어 나와요.

그 침대를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꼭 곰인형을 버리지 못하는 저 같기도 했고, 침대를 버리려는 어른들이 이제 그 곰인형 버릴 때가 되지 않았냐 묻는 사람들 같기도 했어요. 제게 곰인형은 <마법침대> 속 침대처럼, <안녕! 작은 곰> 속 작은 곰처럼 꿈을 이루어주고 상상력을 이어가게 하는 존재예요. 행복하고 아릿한 어린시절을 떠올리게도 하죠. 그래서 저는 이 곰인형을 아직까지도 사랑해요.

★ 아름다운 그림책
오랜만에 맘에 드는 그림책을 만났어요. 솜을 내어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전제가 아름다우면서도 슬펐답니다. 모든 인형과 장난감들이 그렇듯이요. 그들은 자신을 내어 나의 동심을 지켜주는 존재들이랍니다. 제게 인형들의 존재와 어릴 적 상상력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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