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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 ㅣ 소설, 향
최정나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1월
평점 :
<로아>, 최정나, 작가정신 <로아>를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가족. 그 가깝고 소중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이 숨 막히게 잔인했다. 언니 상은은 동생 로아를 때리고 엄마 기주는 두 딸을 방치한다. 심지어 상은이 로아를 때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은을 말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동생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상은을 탓하게 되지만 소설 끝에 다다라서는 알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엄마 기주의 '방치와 방관'으로부터 생겨났음을. 애초에 그녀가 두 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안아주었다면 상은이 보상 심리의 격으로 로아를 때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 분해 서술
"나는 네가 되어본다. 너의 눈으로 나의 세상을 본다”
<로아>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분해 서술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 방식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로아는 자신을 떄린 언니, 상은이 되어 본다. 그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상은과 기주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무자비한 폭력의 모습은 '가해자의 서사' 보다도 '피해자의 증언'에 가깝다. 그래서 이 소설이 소중하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시선으로 그때를 보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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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아의 서문
2, 3, 4: 로아가 상은이 되어 되짚는 폭력
5: 로아가 기주가 되어 되짚는 폭력
6~9: 분열된 로아의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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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로아 > (로아를 때린) 상은 > (상은과 로아를 방치한) 기주로 흘러간다. 상은은 엄마가 자신을 방치하며 생긴 외로움을 로아로부터 채우고자 한다. 동생이 자신에게 복종하고 자신만을 위해 살면 어느 정도 그 상처가 충족되리라 생각한다. 엄마 기주는 자신이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두 딸을 방치한다. 딸들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자신의 세상만 중요하다. 이 둘 폭력의 상대가 되는 로아는 미소만 지을 뿐이다. 그것이 로아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을 넘어서 자신의 세상에 함몰되어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 가해자와 피해자
"이 회귀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님을 명백히 밝힌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가해자의 시선을 옹호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해자의 말들은 불분명해지고 로아가 보이기 시작했다. 책을 두 번째 읽었을 때, 이것이 작가님이 의도한 방식임을 알았다. 신기하게도 가해자의 서사가 펼쳐지는데 피해자만 눈에 들어왔다. 피해자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나열하지 않지만 독자들은 피해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서술 될 말들보다도 더한 고통을.
▶ 로아, 후기
<로아>는 작가정신의 소설, 향 시리즈의 신간이다. 작정단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읽기 힘들었던 책이다. 2장 시작하면서부터는 책의 주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내가 이정도로 방치 되고 상처 받았으니 너에게 이래도 되는 거지' 라며 폭력을 휘두루는 상은을 소설 밖에서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화가 나기도 한다.
로아는 그 분해된 자신들을 통해 상은과 기주를 들여다보고, 결국 다시 눈을 뜬다. 파편화 된 자신을 안아주는 느낌이 들어 슬픈 동시에 다시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며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힘겨웠던 것을 기억한다. 작정단 활동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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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작정단이 받은 선물은 최정나 작가님의 <로아>예요. <로아>는 작가정신의 '소설, 향' 시리즈의 신간 도서입니다. 지난 작정단 활동 당시 '소설, 향' 시리즈 중 조경란 작가님의 <움직임> 신작이 나와서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이번은 또 어떤 내용의 소설일지 아주 기대가 됩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그것은 방치로부터 생겨난다는 무거운 주제를 전하는 책이에요. 피해자가 가해자로 분해 서술하는 기법이 인상 깊었고 '이런 식으로도 책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사유할 수 있는 책을 만나 좋았습니다. 책을 선물해주신 작가정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