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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
김개미 지음, 이수연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평점 :
바다에 가본 적 있나요.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한 바다 말이에요.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해 모래를 밟던 그날, 달빛이 얼마나 밝은지 알게 되었어요, 달을 가리던 구름이 걷힐 때마다 철썩이는 파도와 그 해변의 만이 보였거든요.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배를 태야 하는 사람들을 떠올렸어요. 숨 죽인 채 달빛에 의지해 배에 오르겠죠. 디딜 것 하나 없는 바다에서 달빛을 붙잡는 사람들. 그들은 내몰린 그곳에서 자그마한 가능성을 읽는 사람들이에요. 도착할 수 있을지, 행선지가 어디일지 확신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요.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요.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는 김개미 시인님이 쓰고, 이수연 작가님이 그린 그림책이에요. 책 제목만 봤을 때는 광활하고 푸른 바다가 생각났어요. 자유로움을 말하는 책인가?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장을 열었답니다. 면지에는 어둡고 세찬 바다가 그려져 있었어요. 이 면지를 보자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누군가의 생과 사가 갈리는 곳이 바다임을 잠시 잊고 있었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지만, 그 사람들이 다 바다로 가려는 것은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는 바다로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전쟁과 재난 등으로 더는 땅에 발을 디디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은 바다로 내몰려요. 그들 모두 바다로 향하지만, 바다를 가려는 것은 아니었죠.
김개미 시인은 말해요. ‘바다에 도착하면 모든 길이 숨어 버리지만 어떤 길은 거기서 시작’된다고요. 그 길은 처절하고 간절한 길이에요. 동시에 낯설고 불안정한 길이에요. 그렇지만 그들은 바다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너울이 날뛰는 사나운 바다보다 더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김개미 시인의 짧고 간결한 문장들은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고 이수연 작가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도와줘요.
이수연 작가는 그들의 모습을 ‘날개가 꺾인 철새’의 모습으로 표현해요. 철새는 따뜻한 곳을 향해 바다를 건너야만 하는 새들이죠. 마음과 몸을 다친 채 바다를 건너야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어둡고 탁한 색채와 힘 있는 붓질로 탄생한 두꺼운 선들은 떠몰린 이들의 폭력적이고 암울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묘사해요.
그림책은 ‘어디에나 꽃이 있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주며 끝이 나요. 저는 이 그림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 부분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했어요. 펼쳐지는 장을 사용해 장의 임팩트를 높였고, 밝고 화려한 색채를 등장시켜 메시지를 강화합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2024년, 그 모든 아픔과 상실이 끝나고 평화와 희망이 오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제게 딱 필요했던 그림책이에요. 이수연 작가님의 그림을 좋아해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를 위시리스트에 담아두었는데 문학동네에서 선물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왜 배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 앞엔 항상 낡고 작은 배가 올까
배는 저편의 항구를 향해 가지만 모든 배가 다 항구에 닿는 건 아니야
기억해야 해
항구에 도착해도 한 사람도 내리지 않는 배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