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감기로 집에 머물다 

산에 한 번 가야겠다 싶어서

조금 일찍 동네친구랑 산에 올랐다.

 

이 더위에 무슨 산행... 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빨래를 널다보니 세 사람이 사이좋게 산에 오르는 모습이 보이길래

흠 요새도 산에 가는구나.. 뭐 이런 생각에

9시쯤 만나 오르기 시작했는데

 

감기 땜에 자고 싶은 마음만 들기는 했지만

나뭇잎이 만든 그림자가 비치는 자드락길을 지나

벤치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옆에는 연대생들인지 도시락까지 사들고

십여명이 모여서 밥을 먹으면서 놀고...

 

내려올 때는 땀이 뻘뻘 

내려갈 수록 온도가 올라가는게 느껴진다.

그래도 그 달콤한 순간

벤치에 앉아 푸르른 초록의 나무들 바라보며

바람을 맞는 그 달콤한 순간이 나는 좋았다.

 

이제 반가운 후배가 담주에 들어온다니

오랜만에 만날 수 있겠구나.

무려 840페이지에 달하는 일리아스

읽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번역한 사람이야.

영역이 아닌 희랍어 원본을 번역한  숲 출판사의 일리아스는

행간도 넓고 읽기가 좋게 만들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중심으로 트로이아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호메로스의 역작을 잠깐 읽어보니

신이며 인간이며 이런 저런 일에 삐지고 화를 내고

복수하고 처신하고 인간만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 같다.

욕심쟁이 아가멤논 때문에 기분이 상한 아킬레우스의 응수는

동네꼬마들끼리 싸우는 거나 똑같아 ㅎㅎ

 

아 예전에 아름다운가게에서 3000원 주고 산 어린이용

일리아스. 이윤기 선생이 번역했는데 그걸 언젠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다 읽었다. 읽으면서 재미있는 부분도 있고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재미있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아름다운 부인 헬레나를 빼앗긴

메넬레우스와  헬레나의 시아주버님 헥토르의 결투장면.

창을 들고 싸우는 이 두 남자는 싸움이 치열한데 비해 매우 신사적이지 않은가.

각자 약간의 상처를 입고 해가 지자 싸움이 중단되던가 하는데

헥토르가 서로에게 기념으로 선물을 하자고 제안한다.

벨트와 칼이었던가? 아무튼 그렇게 하면 후대사람들이 두 사람은 적으로 만났지만

친구로 헤어졌다고 얘기하지 않겠는가 하는게 헥토르의 말이었고...

 

우와 참 싸움을 신사적으로 한다고 생각해서 의외였는데

마지막에 아킬레우스가 가장 친한 친구 파트로 무엇이

자기 갑옷을 입고 나가 대신 싸우다 죽자 헥토르를 무찌르고

전차에 묶어 끌고 다니는 장면은 잔인 그 자체...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오딧세우스.

지략과 언변이 말이 아니게  뛰어나다.

동료들이랑 같이 술마시다가 적군인 트로이 진영으로 가서

트로이왕이 가장 아끼는 말 두세마리를 쥐도 새도 모르게 훔쳐온다.

아이디어가 좋아 하하

 

그리하여 서양고전의 시초인 일리아스 다음 작품인 오뒷세이아의 주인공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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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제 날씨는 잔뜩 찌뿌드드한데

움직여줘야만 할 거 같아서

약간 무리인줄은 알면서 자전거를 타고

덕수궁으로 향했다.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덕수궁 안에 있는 찻집에서 연초록 나무도 바라보면서

책도 좀 읽고 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서대문로타리부터 흩뿌리는 소나기 때문에

급히 비를 피해야 할 상황이 되면서 조용히 물을 건너간다.

빗발은 가늘건만 비바람과 함깨 몰아치는 비는 급기야

국화빵 파라솔 밑으로 머리를 들이밀게 했다.

건널목을 앞에 두고 아주머니한테는

'신호등 바뀔 때까지만 잠깐....'이라는 말로

양해를 구하고 옆을 바라보니

길바닥에 몇가지 물건을 놓고 파는 아저씨가

비를 맞으면서 라면을 드시고 계시다.

빗발이 굵지는 않다고 하지만 비를 피해

어디 처마 밑이라도 들어가서 드시면 좋을텐데

굳세게 자리를 지키고 노란 양은냄비에 담긴

라면을 드시는 아저씨를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좀 안스러운 생각이 든다.

 

비를 피해 들어간 곳에서 잠깐 <열하일기 그 웃음과 해학>을

펼쳐들었다. 어떤 이는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에 견주어 연암을

이야기한 이 책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이야기했지만

책을 읽어갈 수록 편안한 일상어투로 연암과 <열하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생각 외로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미 비가 그쳐있었다. 천천히 사람들이

많은 인도를 지나 독립문 로타리 가까이 왔을 때였다. 작은 골목에

자리잡은 중고서점에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포스터를 표지로한 잡지 1/n이었다. 책장에 둘러싸여

노트북을 앞에두고 앉은 한 사람과 배경에 보이는 나무.

어디서 봤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그림은 현대인의

초상이라할 만한 뭔가가 있다.

 

이 정체불명의 잡지를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마침내 사야겠다는

확신이 섰는데 정가를 보니 10000원. 2010년 봄호니까 4천원이나

5천이면 산다고 마음먹고 아저씨한테 '아저씨 이거 얼마에요?'하고

물었더닌 아저씨는

 

"3000원 받았으면 좋겠는데..." 하신다.

 

"네에~"하고 얼른 3000원을 내밀며 횡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보니 일러스트레이션이 상당하고 책표지에서부터

종이재질, 디자인이 상당히 좋았다. 헝가리 시인 아틸라 요제프의

'제 7의 인간'이라는 시를 화두로 엮은 인터뷰 소설은 잡지의 부제인

현대인의 서바이벌 키트에 걸맞게 요일별로 각계각층의 인물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세계의 영상물을 볼 수 있도록 영상자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이들, 국경없는 의사회 의사, 안무가 등을 인터뷰한 것인데 첫 꼭지를

읽어보니 인터뷰를 잘 못하는 것 같다.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던가 인터뷰를 상당히 잘 하는 걸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인터뷰를 잘 하려면  때로는 질문이 너무 사적이거나 깊이 들어간 건 아닐까 하고

약간 얼굴 화끈한 질문을 던지는 뻔뻔함이 필요한 것 같다. 점잖은 질문에는

점잖고 상식적인 대답이 나올 수 밖에.

 

그 밖에도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장편소설 <안개의 왕자>가 전재되어 있다.

조금 더 읽어봐야 진짜 횡재를 한건지 알 수 있으리라. 이번 호가 통권 2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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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오  푸쉬킨이 셰익스피어 선생보다 

  훨씬 사실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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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아둔 영화 <남극의 쉐프>를 보러 광화문 스폰지하우스로 갔지요.  

동화면세점을 지나 Hollys 커피전문점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스폰지하우스가 나옵니다.

이런 영화는 대개 그냥 혼자 가서 보지만

어라 전체관람가입니다. 그래서 꼬맹이까지 대동하고 포즈난에서 알고 지낸 선생님까지 해서

네 사람이 비바람 몰아치는 광화문 거리를 걸어갑니다.

극장에 들어서니 규모가 아주 작은게 아늑한 느낌이 들더군요.

관객도 극장이 작아서 그런가 생각보다 꽤 많았습니다.

이런 영화는 작은 극장에서 상영해서 관객이 어느 정도 찬 느낌으로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어요.

 

쉐프라고 하니까 요리영화인줄 알았더니 남극 Dome Fuji 기지에서 일년동안 함께 지내게 된

8명의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마 이 영화를 꼽아둔 건 아는 사람이 연구지원비를 받아

남극에 있는 세종기지에 가는 걸 부러워하면서부터인지도 모릅니다. 어디 남극을 아무나 가냐요?

 

영화는 일본인 특유의 잔잔한 유머와 다소 기발한 발상으로 시종 웃음이 나오게 하더군요.

자고로 이런 영화는 평을 하기가 어렵지요. 직접 봐야 제맛이지 이러니 저러니 얘기해봐야

별 재미를 못 느낄테니까요.  영화를 보면서 옆에 앉은 친구가 카모메 식당보다 재밌느냐고 묻더군

요. 웃기는 건 남극의 쉐프가 더 웃기고 잔잔한 감동은 아마 카모메가 더 할 겝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식당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요.

 

영화에서 웃겼던 대사는 남극으로 떠난 남편에게 "당신이 떠난 뒤로 우리는 매일매일이 너무나 즐 

거워요. 당신도 즐겁게 지내요."라고 한 부인의 이야기.. ㅋ

그리고 내막을 얘기하면 재미없으니까  대장이 "아 이거 왜 이리 원근감이 없어."라고 한 대사도

영화에서 보면 웃길 겁니다. 그 밖에도 연신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있지요.

남극 해안이 아니라 내륙으로 한참 들어간 곳에 자리한 기지이기 때문에

펭귄도, 바다표범도 볼 수 없고 온통 눈 뿐인 곳입니다.

 

흥미로웠던 건 지하 2000m가 넘는 곳에서 걷어올린 얼음기둥으로 몇 천만년 전 기후를

알아낼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물이 없으니까 지천에 깔린 눈을 퍼다가 그걸로 물을 만들어 먹더 

군요. 옆에 친구가 어찌나 잘 웃던지...  하지만 관객들 웃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다 보고 나니 꼬맹이도 생각보다 재밌다고 하고.

 

보고 나면 상쾌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낮술이 그랬고.. 왠지 낮술.. 하면 막장..이라는 단어가 연상 

되는데 그런 점에서 보고 나면 왠지 일희일비가 번갈아 엎치락 뒤치락하는 막장상황을 보면서 왠지 후련함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어요.  남극의 쉐프 역시 가족과 떨어져 단절된 삶에서 버텨야 하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어 

쩐지 공감이 가게 하는 모양입니다.

 

다 보고 나서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들도 영화에서 남극이라는 상황이

마치 포즈난에서 지낸 시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살던 물을 떠나

외국에서 지내고  오면 참으로 당연시 하던 것들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는다고나 할까요.

 

끝나고 나서 마신 기네스는 런던에 갔을 때 셰익스피어라는 펍에서 마신 맛과 같아서 좋기는 했습 

니다만 너무 비싸더군요. 그래도 오늘 내가 추천한 영화를 같이 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니 기분 

이 좋습니다. 평점이 9점이상인 건 아마도 자기가 보고 싶어서 선택해서 간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일 겁니다.

 

다음에는 압구정 스폰지하우스를 가 볼 생각이에요. 아마 리모델링을 오기사님이 한 걸로 알고 있 

는데 벽에 그려진 오기사의 그림도 한 번 보고 싶군요. 아 극장을 나서서 지나간 미스터 도넛의 도 

넛도 맛이 괜찮더군요. 지나가면서 별로 맛없는 도넛 집인 줄 알았는데 던킨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쫄깃한 맛이 더 나은 것 같아요. 애플시나몬파이도 하나 샀는데 파이보다는 도넛이 나은 것 같고..

카모메 식당을 보면서 꼭 먹기로 한 시나몬롤과 커피 생각이 났지요. 언젠가 꼭 먹을 테다.

아  찐한 초콜렛퍼지 케익도 먹어야 되는데... 사랑은 너무 복잡해에서 메릴 스트립이 전 남편을  

위해서 그 케익을 준비하지요. 평소에는 달아서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 케익이 그 장면을 보고나 

서  어찌나 먹고 싶던지..  커피빈에는 너무나 수수한 초콜린퍼지케익이 얌전히 있더군요. 아마도  

케익전문점이나 호텔에나 가야 있을지도... 

흠흠 앤티크 보면서 딸기타르트도 무지 먹고 싶었는데... 아 참 이거 나 왜 이러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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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또 크리스마스잖아!  

 
(이런 대사가 산타 할아버지가 한 말이라면... )

 

 

이런, 또 눈이네!


지겨운 눈이나 그쳤으면!

 

(이게 산타 할아버지가 할 말인가?)

 

 

그리고는 산타 할아버지의 일상을 보여준다.

내복을 입고  양말을 신고  빨간 멜빵 바지를입고

부츠를 신고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손수 아침을 준비하고

통밀빵에 버터, 에그 앤 베이컨, 그리고 따끈한 차..

 

 

굴뚝 같은 건 없으면 좋으련만!

 

 

그리고는 넓은 가로 4단으로 산타 할아버지가

굴뚝을 내려오는 장면을 단면도를 통해 보여준다.

 

뉴스에서는 '얼음,서리,눈,진눈깨비, 우박, 비...'

일기예보가 나오고 눈 쌓인 지붕 위에서 손수 준비한

점심(샌드위치, 따끈한 차, 바나나)을 먹던 산타는

저런!

 

아직도 안 끝나셨어요?

거의 다 마쳤네.

우유배달부 아저씨도 만나고..

 

빅벤이 보이고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 실력이 나오는 대목)

마지막 남은 한 집은.........

 

 

버킹엄 궁전

 

 

집에 돌아와 목욕을 하고

뽀송한 양말을 신고

맥주를 한 잔 마신 다음(캬~!)

손수 요리한 저녁을 먹고 나서

시가를 입에 물고 푹신한 소파에 앉은

할아버지 몹시 편해 보이세요.

 

아쭈! 제법인데 역시 프레드는 내 친구야!

(친구가 보낸 선물 꼬냑을 보고 하는 말. 아쭈! 옮긴이의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아쭈! )

 

마지막에 독자를 바라보며

그럼, 여러분도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세요!

 

무뚝뚝한 표정으로 인사하지만

그가 보낸 크리스마스 이브를 지켜본 독자는 빙그레 웃을 수 밖에 없다.

 

세상일이 빡빡하고 인간관계에서 힘을 얻기보다는 지치는 것 같을 때

아이들 그림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레이모드 브릭스는 일러와 애니의 접목을 시도한 작가라고 한다.

<산타할아버지의 휴가>도 유머가 넘치는 작품이다.

책을 읽어주다 보면 어른들은 그림을 놓치지만 애들은 그림에서 많은 것을 읽는다.

그러나 레이먼드 브릭스의 그림은 어른들도 골똘히 보게 된다.

 

두 작품 모두 번역이 참 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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