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제 날씨는 잔뜩 찌뿌드드한데

움직여줘야만 할 거 같아서

약간 무리인줄은 알면서 자전거를 타고

덕수궁으로 향했다.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덕수궁 안에 있는 찻집에서 연초록 나무도 바라보면서

책도 좀 읽고 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서대문로타리부터 흩뿌리는 소나기 때문에

급히 비를 피해야 할 상황이 되면서 조용히 물을 건너간다.

빗발은 가늘건만 비바람과 함깨 몰아치는 비는 급기야

국화빵 파라솔 밑으로 머리를 들이밀게 했다.

건널목을 앞에 두고 아주머니한테는

'신호등 바뀔 때까지만 잠깐....'이라는 말로

양해를 구하고 옆을 바라보니

길바닥에 몇가지 물건을 놓고 파는 아저씨가

비를 맞으면서 라면을 드시고 계시다.

빗발이 굵지는 않다고 하지만 비를 피해

어디 처마 밑이라도 들어가서 드시면 좋을텐데

굳세게 자리를 지키고 노란 양은냄비에 담긴

라면을 드시는 아저씨를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좀 안스러운 생각이 든다.

 

비를 피해 들어간 곳에서 잠깐 <열하일기 그 웃음과 해학>을

펼쳐들었다. 어떤 이는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에 견주어 연암을

이야기한 이 책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이야기했지만

책을 읽어갈 수록 편안한 일상어투로 연암과 <열하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생각 외로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미 비가 그쳐있었다. 천천히 사람들이

많은 인도를 지나 독립문 로타리 가까이 왔을 때였다. 작은 골목에

자리잡은 중고서점에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포스터를 표지로한 잡지 1/n이었다. 책장에 둘러싸여

노트북을 앞에두고 앉은 한 사람과 배경에 보이는 나무.

어디서 봤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그림은 현대인의

초상이라할 만한 뭔가가 있다.

 

이 정체불명의 잡지를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마침내 사야겠다는

확신이 섰는데 정가를 보니 10000원. 2010년 봄호니까 4천원이나

5천이면 산다고 마음먹고 아저씨한테 '아저씨 이거 얼마에요?'하고

물었더닌 아저씨는

 

"3000원 받았으면 좋겠는데..." 하신다.

 

"네에~"하고 얼른 3000원을 내밀며 횡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보니 일러스트레이션이 상당하고 책표지에서부터

종이재질, 디자인이 상당히 좋았다. 헝가리 시인 아틸라 요제프의

'제 7의 인간'이라는 시를 화두로 엮은 인터뷰 소설은 잡지의 부제인

현대인의 서바이벌 키트에 걸맞게 요일별로 각계각층의 인물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세계의 영상물을 볼 수 있도록 영상자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이들, 국경없는 의사회 의사, 안무가 등을 인터뷰한 것인데 첫 꼭지를

읽어보니 인터뷰를 잘 못하는 것 같다.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던가 인터뷰를 상당히 잘 하는 걸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인터뷰를 잘 하려면  때로는 질문이 너무 사적이거나 깊이 들어간 건 아닐까 하고

약간 얼굴 화끈한 질문을 던지는 뻔뻔함이 필요한 것 같다. 점잖은 질문에는

점잖고 상식적인 대답이 나올 수 밖에.

 

그 밖에도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장편소설 <안개의 왕자>가 전재되어 있다.

조금 더 읽어봐야 진짜 횡재를 한건지 알 수 있으리라. 이번 호가 통권 2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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