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은 토크쇼 형식으로 우리의 역사를 보다 더 쉽게 이해할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태조에서 세종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는 그날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책은 '만남'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만남의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에서 우리의 역사는 조선의 건국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를 겪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려를 대표하고 있었던 무장 이성계와 유배 생활후에 관직에 오르지 못한 정도전의 역사적인 '그날'의 만남을 통해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그 결과 우리의 역사가 뒤바뀌었다는 사실에서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그날 있었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실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조선의 건국을 이루게 된 그날 이성계와 정도전은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그에 대한 이야기가 토론 형식으로 전해져 더 흥미롭게 진행되는것 같습니다. 야인시절을 보내던 정도전 그는 왜 그 당시 이성계를 찾아갔을까? 그 이유에 대해 최영 장군은 그 당시 나이가 너무 많고 기득권층이었지만 이성계는 기득권세력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성계와 정도전은 손을 잡게 되었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고려의 아웃사이더인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은 붓과 칼 사상과 무력의 만남이 되어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왜 그들은 조선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고조선에서 '고'를 빼고 사용한 이유가 옛날 나라 이름에서 역사적인 정통성을 찾기 위해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왕조 교체기 격동의 시간 많은 인재들의 죽음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아들 이 방원의 두번의 왕자의 난을 우리는 국사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도전의 선구적이고 진보적 인물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특유의 언론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대간제도 입니다. 지위가 낮은 삼사가 왕에게 올바른 직언을 할수있고 그 직언에 대해 보장받을수 있는 제도였습니다. 비록 정도전의 이상정치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지만 그가 앞을 내다보는 능력은 가히 탁월했다고 생각됩니다. 두번의 왕자의 난으로 권력의 냉혹함에 치를 떨게 된 태조 결국 그 유명한 함흥차사라는 말을 만들게 했다는 사실과 그리고 대마도 징벌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한일관계를 엿볼수 있었습니다. 한국 역사에 가장 뛰어난 국왕인 세종이 보여준 리더십은 현대 사회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두번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인해 정도준, 조준, 남은과 같은 조선건국에 기여한 학자들이 제거된 후에 세종이 만든 집현전에는 최고의 인재들이 집현전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집현전의 위치가 왕의 배려로 경치 좋고 왕의 집무실 근처에 있어 항상 왕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곳에 위치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서가 독서제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유급휴가로 집현전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세종의 배려였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속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조선이 건국되기까지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있었고 그런 일들에 대해 역사문제의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도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