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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한 인문학
이봉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5월
평점 :
나는 인문학을 잘 알지 못한다. 요즘 가끔 TV방송을 통해 인문학 강의를 몇 번 들은 것이 고작이다. ‘인문학’이란 흔히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그냥 인문학이 아니라 음란한 인문학이라는데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나는 음란한(?) 얘기를 좋아하며, 친구들과 여행을 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야한 소설을 많이 읽은 탓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음란한 인문학’이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표지를 드러내놓고 읽지는 못했다. 아무리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다고 해도 약간은 부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이봉호 작가가 대중문화 속에 있는 음란한 사건들을 인문학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저자는 대중문화에 녹아든 섹슈얼리티로 세상을 읽어준다. 성 담론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주제 27가지를 금기, 억압, 차별, 편견, 전복의 키워드로 나누어 소개하는데 이 속에서 등장하는 음란한 사건을 통해 인간의 은밀한 욕망과 숨기고 싶은 치부까지 과감하게 들춰낸다.
이 책은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고 모두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려면, 섹슈얼리티도 당당히 공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자는 6초마다 섹스를 생각하고, 여자는 남자보다 야한 생각을 더 많이 한다는 보고가 있다. 하지만 은밀한 욕망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변태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사회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 영화 시장에서 수십 년간 깨지지 않는 흥행 기록을 올린 작품이 ‘007’, ‘스타워즈’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라 포르노 영화였다고 말한다. 또 다른 예로 미국을 성에 대해 개방적인 사회로 만든 문제작인 ‘킨제이 보고서’를 소개한다. 저자는 이 작품이 금욕적인 삶을 살던 미국 여성사회가 얼마나 많은 욕망을 기저부에 내재하고 있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떠올랐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1992년 10월 29일 소설 ‘즐거운 사라’를 쓴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음란문서 제조-반포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소설의 내용이 지나치게 성적 충동을 자극해 문학의 예술성 범주를 벗어났다고 마교수를 사법처리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이념적이거나 정치적 이유로 금서 판정을 받았던 시대가 물러나고 ‘즐거운 사라’를 통해 금서의 새로운 가치 기준을 세운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담론을 만들어냈다.
이 책은 우리 안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부수도록 도와주고, 본능 속에 숨겨진 창의성과 상상력, 담론 등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안내한다.
소설가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저자 사후 30년 만에 자비로 출간되고 오랜 재판 끝에야 미국에서 무삭제판이 나왔다.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의 성적 일탈을 그렸다면 과연 흥행에 성공했을까. 또는 오랜 억압을 받아야 했을까. 채털리 부인은 남성 우월주의 성문화에 일침을 가했다. 이 책을 통해 인문학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