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혼자 있고 싶은 남자 - 말 못 한 상처와 숨겨둔 본심에 관한 심리학
선안남 지음 / 시공사 / 2016년 7월
평점 :
한동안 여자들의 자아선언이 줄을 이었었는데 이제는 남자들이 자아선언을 하고 있다. 한때 아줌마가 새로운 유형의 인간으로 주목받고 사전에까지 올랐던 적이 있다. 비슷하게 중년의 남자 역시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아닌가 싶다.
과거 중년의 남성은 여전히 힘과 권력을 지닌 가부장으로 존경받고 대우받았다. 한데 이제는 은퇴와 동시에 뒷방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역사상 한 번도 약자로 살아본 경험이 없기에 그 설움과 슬픔은 비할 데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중년의 남자는 방황 중이다. 옛날의 무용담을 반복하거나, 별거 아닌 일에 눈물을 흘리고, 집이 아니라 술집에서 이야기 상대를 찾고, 사소한 일에 울컥 분노를 터트린다.
이 책은 선안남 상담심리사가 이런 남성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서 쓴 책이다. 최근 남성 내담자들이 늘어나면서 고통 받는 남자가 많다는 문제의식에서 책을 썼다. 남자들이 입을 닫는 ‘선택적 함구증’은 대표적인 현상이다. “남자들은 모두, 소년을 지나 남자가 되어가는 길목에서 여자를 둘러싸고 분열감을 느낀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요구와 기대가 부담스럽고, 몸만 큰 어른이 돼서는 여자친구나 아내의 기대 때문에 입을 닫는다는 얘기다. 남자아이가 기대, 상처, 혼란을 해결하지 못하고 성장해 결혼을 하면 내면의 숙제가 폭발한다. 아직 미숙하지만 ‘남자다움’이란 압력에 시달려가며 ‘가짜 독립’한 탓이다. ‘아들 바보 엄마’의 아들들은 엄마한테 받은 무한 사랑을 채워주고 싶지만, 한편으론 ‘탈옥’해 자유를 찾은 아버지를 부러워하게도 된다고 한다. 경쟁 만능, 천민자본주의 속에 남성을 생계능력에만 한정지어 평가하는 가부장제도 문제의 원인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남자는 바깥에서 큰 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도맡아서 했다. 소소한 일에는 남자는 간섭하지 않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되었고, 맞벌이 가정이 다수라고 할 정도로 사회가 변했다. 이렇게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남성의 성역할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남성들이 많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곤란한 일이 생기면 침묵해 버리고, 잠도 줄여가면서 게임에 몰두하는 남성들의 독특한 습성을 하나씩 소개하고 원인을 파헤친다. 저자는 “지금도 남자에게는 식솔을 지켜내야 한다는 전통적인 의무가 남아 있다”면서 “남자는 내적 검열을 충분히 거친 후에야 자신을 펼쳐 보인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회자하는 ‘딸 바보’와 ‘개저씨’라는 용어는 맥락도 없고 명분도 없는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가부장들의 마지막 결투와 발악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정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몸 바쳐 일해 왔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전에 없던 권위 추락과 남자로서의 특권 상실, 계속되는 (부모) 의무와 (자식) 부양, 불안정한 노후뿐이다. 이런 괴리와 스트레스를 아저씨들은 개저씨가 되어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남자들의 심리상태는 복잡하고 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다. 남자라는 이유로 가족을 위해 희생했음에도 가족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쓸쓸한 남자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