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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추기경
평화방송 엮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2월
평점 :
김수환 추기경은 정치와 사회가 균형을 잃고 정의가 위협받을 때 참된 정신의 상징으로, 갈등과 이기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시대의 스승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서 소리 없는 자의 소리가 되어준 큰 어른이시다.
김수환 추기경은 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바라보았고, 가톨릭교회가 중산층화 되고 보수화돼 가난한 이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됐다고 한탄하곤 했다. 권력을 앞세우며 불의를 일삼는 정치가를 향해선 거침없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고통 받는 약자에겐 한없이 자세를 낮췄다. 혼자 불쑥 성매매 여성 쉼터를 찾아가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는 이들과 함께 밥을 먹곤 했다. 할아버지가 됐을 때에도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간직한 분이셨다.
이 책은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선종 7주기를 맞아 2014년 개봉한 영화 ‘그 사람 추기경’ 속 인터뷰를 엮은 것이다. 선·후배 신부와 주변 지인, 조카 등 김수환 추기경을 기억하는 17인의 인터뷰가 담겼다. 이들은 모두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웃고 울며, 그의 생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던 아름다운 인연들이다. 이들은 아주 진솔하고 담백하게 추기경과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이들의 기억 속에서 김 추기경은 때론 태평양전쟁에 끌려간 20대 청년으로, 때론 마흔 초반의 패기 넘치는 젊은 사제로, 때로는 종손녀의 초등학교 입학 소식에 기뻐하는 할아버지로 등장해 푸근한 위안을 준다.
김형태 변호사는 이 책에서 “사실은 추기경님 말년에, 사형제도 폐지 활동 때문에 말씀드리러 갔다가 얘기 끝나고 나오는데 절 부르시더라고요. '김 변호사,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 그게 좀 이상한 거 아니냐?' 추기경님이 은퇴하시고 연세 들고 그러면서 현장에서 물러나시고 구체적인 상황들에서 멀어지신 거예요. 그리고 주변에 굉장히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신 분들이 계속 감싸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젊었을 때하고는 전혀 다른 정보만 계속 들으시니까, 당신 생각에도 그 정보대로라면 좀 이상한데, 하는 그런 궁금증이 있으셨던 거예요. 그래서 내 생각은 어떤지 물으시더라고요. 햇볕정책이 이솝우화에 나오는 따뜻하게 하면 옷 벗는 건데, 추기경님 다 아시는 얘기인데 왜 그러십니까, 하고 제가 여러 가지 얘기를 했더니 추기경님이 웃으셨어요. 그러면서 '듣고 보니까 그 말이 맞네' 하셨지요.”(pp.104-105)라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은 “젊은 시절부터 병상에서의 모습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혹은 미처 모르고 있었던 추기경님의 모습이 다시 전해진다”고 하면서 “이 책은 추기경의 삶과 신앙을, 그 안과 밖을 한 번에 다 만나게 해준다. 추기경 역시 우리와 똑같은 고뇌를 안고 사셨다는 사실에 우리도 추기경님을 닮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이제 남은 것은 ‘바보 추기경’을 내 안에 담고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p.5)라고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천주교의 추기경이라는 직책을 가지신 분이지만, 종교라는 테두리를 떠나서 우리 국민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큰 어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국가적으로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 마다 국민을 어루만져주고, 국가와 국민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셨던 큰 어른을 책으로 만나게 되어 기쁘기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이 책은 김수환 추기경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줄 것이다. 가톨릭 교인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