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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삼국지 - 상
저우다황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5년 10월
평점 :
어떤 사람은 ‘봄이 여자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다. 물론 이에 대한 그 어떤 근거도 없다. 이것은 흥미롭게도 인과관계가 뒤집힌 경우다. 그리 규정해 놓고 나니, 비로소 가을은 남자의 것이 된 것이다. 하기야 보통 남자들의 보편적인 무심함이라면, 가을의 쓸쓸함 정도는 돼 주어야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도 움직여지기 때문일까? 어쨌든 그래서 오늘은 ‘추남(가을 남자) 만들어 주는 책 <반삼국지>를 읽었다.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중국이 자랑하는 문화유산이며 너무나 유명한 책이다.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적대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삼국지를 많이 읽으면 그만큼 내공이 쌓인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책은 중국 후난성 출신으로, 선산서원과 후난공립법정학교에서 수학하고 1912년에 사법관이 된 후 톈진고등검찰청 서기관이 되었고, [정의보]와 [민덕보]의 문예란 주필로 활동하는 한편, 지방 군벌의 참모 노릇을 맡기도 한 중국의 문필가 저우다황이 1919년에 쓰기 시작하여 몇몇 잡지에 연재된 뒤 1924년에 완성되었으나 64년 만인 1987년에야 하북인민출판사에서 발굴하여 책으로 출판하면서 세상에 그 전모를 드러냈다.
이 책은 ‘삼국지연의’의 아성에 정면 도전하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인해 중국 대륙은 물론, 대만·홍콩·싱가포르·일본 등에도 잇따라 번역 소개되어 한자문화권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이 책은 가상의 역사서 <삼국구지>를 원본으로 설정하여 이를 옮겨놓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의 대체역사소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비를 쑨원에 비유하고 조조를 북양군벌에 비유함으로써, 북벌을 완성한 쑨원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삼국지를 고설로 읽어본 독자들 중에는 유비·관우·장비가 좀더 오래 살고, 제갈공명이 오장원 출전을 앞두고 죽지 않았다면, 그래서 마침내 천하가 유비의 손에 들어왔다면 역사는 그 후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꼈는데 이 책은 바로 그 같은 아쉬움에 출발점을 두고 있다.
이 작품은 촉에 연전연패를 당한 조조가 유비 측 군사인 서서를 붙잡기 위해 억류 중인 모친의 가짜 편지를 보내는 대목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조조의 계략은 제갈공명에게 간파되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조조에게 쫓겨 신야성에 피난 온 신세나 다름없던 유비는 제갈공명·방통 같은 지략가에 황충·위연·마초 같은 수십 명의 용장들을 새로이 얻고 종친인 유표로부터 형주성을 물려받음으로써 막강한 국가의 기틀을 일으켜 세운다. 이 같은 기세를 바탕으로 한 왕실을 부흥하기 위한 북방 공략에 나서면서 촉과 조·오 삼국 간에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일진일퇴의 공방이 시작된다.
이 책을 통해 기존에 소홀히 다뤄진 각 장수들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더불어 간악한 무리에 맞선 정의의 승리를 그리면서도 단순한 권선징악적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간군상과 전쟁의 실상을 균형 있게 그리고 있어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재미가 있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들에게 꼭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