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전명진 글.사진 / 북클라우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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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학창시절이 그리워진다. 수학여행을 앞 둔 날이면 설렘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 시절만은 못하지만 지금도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려는 아침은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하다. 미지의 곳으로의 떠남이란 단조로운 생활에서의 탈출이자 새로운 자극이다. 낯선 곳으로 떠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문화와 마주하고 그 곳에서 감춰져 있던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여행의 선물이 아닐까.

 

여행을 하고 나서 얻는 유익은 타향에 대한 지식, 고향에 대한 애착, 자신에 대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설렘이나 감흥 없이 쫓기듯 다녀오는 여행도 있을 수 있지만 다시 돌아보면 여운은 남기 마련이다.

 

이 책은 사진작가이자 팟캐스트 여행수다의 진행자인 전명진이 10년 가까이 세계를 떠돌며 경험한 낯선 순간들을 담은 것이다. 평범한 공학도였던 그는 사진작가 김중만을 만나 삶의 낯선 항로에 들어선다. 여행을 통해 삶의 방향을 찾고, 그 방향을 향해 낯선 길로 또다시 걸어가는 저자. 그가 여행에서 깨달은 삶의 의미와 낭만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한다.

 

저자가 수년간 세계를 여행하며 찍은 낯선 풍경과 일상, 사람을 담은 사진들은 담담한 문장들과 함께 일상의 위로로 다가온다. 저자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그저 각자의 여로를 묵묵히 나아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다가 보니 시인 고은의 낯선 곳이란 시가 떠오른다. ‘떠나라/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빈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떠나는 것이야말로/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는 시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삶의 길이란 정말이지 신기하다. 그때 혼자 여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정 주지 않기였다. 길 위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자꾸만 정을 나누다 보니 헤어짐이 정해진 만남에 지칠 수밖에 없었고,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것이 정을 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자연의 흐름과도 같이 만남을 소중히 하되 헤어진 또한 받아들이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지만 한동안은 쉽지가 않았다.”(p.116)고 말했다.

 

누구나 마음에 담아둔 여행지가 적어도 한 두 군데씩은 있다. 신비로 가득한 저 멀리 페루도 좋고, 역사의 문화의 나라 이탈리아도 좋고, 대자연의 아프리카도 좋다. 몇 달 동안의 세게 여행, 장기간에 걸친 대륙횡단, 누구나 꿈꾸는 멋진 일이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길을 잘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길을 묻는 방법을 알게 된다.

 

나는 외국 여행을 처음 했을 때 여행을 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어깨에 힘을 주고 많은 자랑을 했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생각해보니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낀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으스댈 필요도 없고, 여행을 하지 않았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 유행처럼 번지는 스펙을 위한 세계여행이 아닌, 막막한 현실의 눈가림을 위한 힐링이 아닌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줄 그런 여행을 떠나고 싶다. 여행을 통해 삶의 방향을 찾고, 그 방향을 향해 낯선 길로 또다시 걸어가는 저자가 부럽기만 하다. 길 위의 사색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글 사이의 산책은 우리를 더욱 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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