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네 조각이 전해준 살아갈 이유
마그다 홀런데르-라퐁 지음, 하정희 옮김 / 예지(Wisdom)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몇 년전에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방문한적이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유태인을 학살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강제 수용소로, 폴란드의 오시비엥침에 있는 옛 수용소이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약 300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일본에 의해 희생을 당했기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고통스런 죽음으로 몰렸던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의 학살당한 이야기를 듣고 나라를 잃은 민족의 비애를 느꼈다.

 

이 책은 아동심리학자가 된 마그다 홀런데르-라퐁이 열여섯 사춘기에 나치의 절멸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증언이자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어둠과의 기나긴 싸움에서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 미수에 이른 생존자가 전하는 치유를 위한 사색을 담았다.

 

1927년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국경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마그다는 1944년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집단수용소에 강제 수용됐고 그곳에서 가족을 잃었다. 1차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으로 참전했던 헝가리는 패전 후 연합국과 맺은 트리아농 조약에 의해 국토를 잃었고, 유대인은 헝가리에서 인종차별의 표적이 되었다. 19444월부터 헝가리 정부는 유대인을 대대적으로 검거해 게토에 몰아넣더니, 5월부터 바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의 절멸수용소로 이송하기 시작해 7월까지 437403명의 이송을 완료했다.

 

광란과 죽음의 수용소로 알려진 나치의 절멸수용소에서 열여섯 어린 소녀는 밤마다 자기 옷을 찢어 만든 끈으로 서로 도와가며 목을 매던 많은 동료들을 보며 죽음을 선택하지 않기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다. 사회에 돌아가서도 살기 위해서 그 끔찍한 시간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조차 없었다.

 

마그다는 오랫동안 무의식 속에 침잠해 있었다. 모국어도 잊어버리고 자신을 갈가리 찢어놓은 사람들의 얼굴, 어느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날 일사(日射)의 학살로 끝을 맺었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회, 며칠 간 음식은 물론 물 한 방울도 없이 죽음과 삶을 넘나들던 날을 기억해 내는 데는 삼십 년이 필요했다.

 

저자는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기억을 상실했다. 시간이 지나고, 삶에 대한 자신감을 끈기 있게 되찾은 덕분에 나는 꽉 막혀 있던 내 목소리를 조금씩 풀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p.107)고 말했다.

 

그 힘겨운 죽음을 넘나드는 시간을 견디게 해준 것은 수용소에서 죽어가던 한 여인이 건네준 작은 빵 네 조각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물을 구해줬던 동료들, 화장터의 불길이 잠시 잦아진 사이 맑게 갠 아우슈비츠의 하늘에 흘러가던 구름, 수용소에서 나온 뒤 만났던 한 부인의 미소였다. 마그다는 삶은 내게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사는 법을 가르쳐줬다.”고 말한다. 작은 사랑이든 큰 사랑이든 나는 그 어떤 말로도 사랑을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삶이 다하는 날까지 사랑의 열렬한 초심자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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