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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왕후
함영이 지음 / 말글빛냄 / 2015년 8월
평점 :
최근에 역사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어 역사 관련 책을 가끔씩 찾아 읽어 보고 역사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픽션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해당 시기의 용어들과 생활모습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정말 그 시절에 이런 일들이 있었을까?’, ‘그 당시는 정말 이런 사건들에 대해 사람들은 그렇게 평가하고, 그에 따른 해결방법이 진정 그러했을까?’ 하는 것에 대한 궁금함이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때도 종종 있다. 그래서 때론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남들은 모두 휴가를 떠났는데도 찜통더위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책을 한권 읽었는데 바로 <정희왕후>라는 책이다.
이 책은 함영이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여성가족 수석전문위원이 조선 최초 여성 정치인 정희왕후의 리더십을 통해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한다. 남성 중심의 정치세계, 취약한 왕권이라는 한계 속에서 정희왕후는 놀라운 정치력을 보여줬다. 늘 대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역적을 감싸는 포용력을 보여줬다. 문제가 터지자 수렴청정 6년 만에 스스로 물러나기도 했다.
정희왕후는 조선의 7번째 임금, 세조의 부인이다. 1428년 11살의 나이에 세종의 둘째 아들인 진평대군과 결혼해 왕가의 구성원이 된다. 계유정난을 일으킨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1455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1469년 아들 예종이 죽자 의경세자의 둘째아들인 자산군을 왕위에 앉힌 뒤 수렴청정을 한다.
세조는 조카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에 올랐다. 정통성이 약한 정권은 늘 살얼음판을 걸어야했다. 세조가 죽은 뒤 차남 예종이 왕위에 올랐다. 예종은 족질이라는 병으로 16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예종이 죽자 정희왕후는 예종의 둘째아들 자산군을 다음 왕으로 지명했다. 자산군의 장인은 실세인 한명회였다. 흔들리지 않는 왕권을 위해서는 든든한 배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꿰뚫어 본 것이다.
13살인 자산군(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신하들은 정희왕후에게 수렴청정을 청한다. 한자를 몰랐던 정희왕후는 두세 번 사양하다 신하들의 거듭된 요청에 결국 받아들였다. 정희왕후는 세조의 정치를 곁눈으로 배웠기에 정치 감각이 뛰어났다.
정희왕후는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통치를 했다. 결정을 내릴 때는 대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경연을 통해 현명한 선비들을 만났다. 수렴청정을 시작하면서 양잠을 장려하는 등 민생을 먼저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세조에게 반기를 들어 역적으로 몰린 정종의 아들 정미수를 관리로 등용하는 포용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성종 6년 정희왕후의 인척들을 거론하며 욕설을 적어놓은 익명서가 발견되자 정희왕후는 수렴청정을 거두고 권력에서 물러난 뒤 66세로 죽음을 맞는다. 비록 외척 관리에는 실패했지만 정희왕후는 더 이상 피를 부르지 않고 왕권안정을 도모하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남성위주의 보수적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었던 시대의 사관들조차 정희왕후의 정치력을 높이 샀다는 점에서 정치인들이 그의 리더십을 배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