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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Acquaintance Rape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로빈 월쇼 지음,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옮김 / 미디어일다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 데이트 (성)폭력이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모르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이 아니라 평소 친밀한 관계에서 잘 아는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보통 우리는 좋아하는 연인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데이트한다고 말한다. 연인 사이에 폭행 또는 협박 등에 의해 일어나는 성폭행을 데이트성폭력이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사랑싸움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었지만 최근에는 10대, 20대뿐만 아니라 30대, 40대 이상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데이트 성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폭력이라고 하면 늦은 시각의 어두컴컴한 밤, 낯선 이에 의한 피해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성폭력 피해의 대다수는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14년 상담통계자료에 의하면 성폭력상담 전체건수 1450건 중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1174건(81%)으로 집계되었다.
이 책은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에 관한 책으로 미국의 여성주의 잡지 <미즈>와 국립정신건강연구소가 함께 시행한 대학내 성폭력 관련 프로젝트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책을 기획하고, 미국 전역에 있는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 생존자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저자 로빈 월쇼가 미국 전역의 32개 대학에 재학 중인 남녀 대학생 615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다양한 인터뷰의 결과물을 모은 것이다.
이 책에서는 낯선 사람에 의해 피해를 당하였을 때와 달리 가해자가 아는 사람일 경우는 (단순히 가볍게 정도라 하더라도) 자신이 당한 게 성폭력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거기다 피해자에 대한 위와 같은 비난은, 사회 구조적으로 ‘침묵’을 강요하고 자신이 당한 게 ‘강간’이란 인식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이 책에서 여성들은 하나같이 ‘할 수 있는 것이 더는 없었다’고 말한다. 더 정확하게는 그가 원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는 표현이 보다 적합하다.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때의 선택은 ‘자기결정’인가? 이런 식의 막무가내로 선택을 요구하는 남성은 없다고? 그런 남성은 사이코패스거나 미친놈일 것이라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 책에 저자는 “폭력은 생물학적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하면서 “강간은 남성성의 본질이 아니며, 다만 폭력적으로 사회화된 남성들이 자신의 성적 자아를 표출하는 방법”(p.170)이라고 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발간된 책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이야기와 너무나도 닮아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은 똑같은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나아가 그동안 썸이라고, 데이트라고, 사랑이라고 믿어왔던 관계에 대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