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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 essay
강원구 지음 / 별글 / 2015년 7월
평점 :
어른들이 때로는 ‘높은 꿈과 비전을 가지라’고 격려하고, ‘절망가운데서도 좌절하지 말고 억지로라도 힘을 내라’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마음을 더 힘들게 할 때가 있다. ‘내일은 분명 지금보다 행복할 거야’라는 식의 섣부른 위로나 조언보다 소소한 삶의 이야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내가 읽은 책은 <에세이 S>이다. 이 책은 서울의 조용한 골목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평범하게 사는 파워 블로거이자 작가 강원구가 지금 내 곁에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는지, 얼마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는지, 내 삶이 얼마나 귀한지, 가족들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내가 누리는 시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책의 제목 ‘S’는 ‘Secret’의 약자로 사람, 사랑, 삶, 식구, 시간이라는 다섯 가지 의미에 올올이 숨은 비밀을 덤덤하게 나타낸다.
‘나비효과’라는 글을 읽을 때에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생각났다. 어느 날 학급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나 43명 전원이 단체기합을 받았다. 선생님은 “체육시간에 00이 가방에서 돈 빼 간 친구는 오른손을 내려 가슴에 얹어라. 그러면 전체 기합은 끝이다. 나 하나 못된 짓 때문에 반 친구 43명이 모두 기합을 받아 되겠느냐? 양심이 있으면 손을 가슴에 대라. 모두 눈을 감았으니 보는 사람도 없다.”
교실 이곳저곳에서 여학생들의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남학생들은 툴툴대며 낯모르는 범인을 향해 욕을 해댔다. “어떤 놈이야? 빨리 자수해, 팔 떨어지겠어!” 수군대는 소리, 훌쩍이는 소리로 교실 안이 웅성거렸다. 기진한 아이들은 대부분 머리 위에서 팔을 맞잡고 있었다. 갑자기 선생님이 몽둥이로 교탁을 쾅! 내리쳤다. 아이들이 움칫 놀라 진저리를 쳤다. 다시 선생님의 훈계. “안 나온단 말이지, 좋다. 누가 했는지 밝혀질 때까지 모두 학교에 남아 벌을 받는다. 범인을 아는 친구는 선생님께 말하라. 누가 얘기했는지 비밀은 철저히 지킨다!”
범인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약이 오른 선생님은 결국 매를 들었다. 처음엔 반장과 부반장의 종아리를 5대씩 때렸다. 곧 분단장들도 불려나가 종아리를 맞았다. 아이들 통솔을 제대로 못해 도둑이 생겼다는 거였다. 선생님은 매를 칠 때마다 교실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친구가 죄 없이 맞는다. 그래도 안 나오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날 종례는 아이들 모두가 차례로 종아리를 맞고 한바탕 울음바다가 된 다음에야 끝이 났다.
이 책에서 저자는 “완행버스, 느리고 보잘것없지만, 언제나처럼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 변치 않는 사실이 위로가 되나 보다. 세상의 모든 게 빨라지고 있지만, 느리게 갈 때 더 빛나는 존재들도 있다”(p.218)고 말했다.
이 책은 가볍거나 무겁지도 않으면서, 허세나 군더더기 없이 일상에서 닿기 쉬운 경험들을 이야기하므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한마디로 ‘S’는 건강과 맛이 균형 있게 담긴 집밥 같은 책이다. 잘 지어진 집밥 한 그릇이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듯, 인스턴트처럼 자극적인 책 사이에서 이 책의 맛있는 이야기 밥상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