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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부모가 먼저 떠나는 건 슬퍼도 인생의 이치라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자식을 먼저 보내는 건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뜻일 터이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은 평생을 죄책감에, 그리움에 사무쳐 산다.
이 책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지성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일찍이 세상을 떠난 딸 고 이민아 목사의 3주기를 맞으면서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묶은 산문집으로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딸을 가진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의 메시지를 보낸다. 독백으로 써내려 간 딸 잃은 슬픔은 시간이 흐르며 죽은 딸에게 건네는 편지가 되고, “나와 똑같은 사람들”을 향한 산문이 되고 시가 됐다.
그러나 단순한 산문집이라고 하기 보다는 천국에 있는 딸을 향한 ‘우편번호 없는 편지 모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은 잔잔한 어조로 씌어져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딸의 유년 시절, 잠자리에 들기 전 아버지의 굿나잇 키스를 기대하고 서재 문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딸을 일에만 몰두하던 그는 딸을 애써 모른 척 했었다. 일에 몰두하느라 등을 돌린 채 딸을 돌아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딸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면 팔에 매달려 사랑받고 싶었는데, 피곤한 아버지는 '밥 좀 먹자' 하면서 밀쳐내셨다.”고 기억했다.
저자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뒤늦게나마 글로써 딸에게 '굿나잇 키스'를 보낸다. “활명수로 너의 첫 만남을 맞이할 뻔한 아빠가, 네가 떠나고 난 다음에서야 아빠의 자격증을 딴 아빠가 뒤늦은 인사를 한다. ‘반갑다 민아야.’ 이것이 너에게 보내는 나의 첫 굿나잇 키스이다.”(p.43)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나는 저자보다도 자식들에게 너무 못해줬다. 일이 바쁘다고 아이들 키우는 것은 아내에게만 맡겨두고 직장 일에만 충실했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은 전부 엄마 편만 든다. 이 책은 우리가 간과했던 삶의 순간을 성찰하며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시간을 준다.
저자는 어린 딸을 가슴에 안고 여름 바다를 여행하면서 딸의 심장 뛰는 소리에 무한한 감동을 느꼈던 추억과 각종 시험을 치르면서 제도권과 경쟁사회로 들어가는 딸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모습, 딸의 결혼식과 출산과정을 통해 여성만이 해낼 수 있는 창조의 과업을 이해하는 과정 등 아버지로서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
딸의 결혼식날 저자는 이발소에 가서 너무 고단해서 잠이 들어 버렸다. 눈을 떠보니 결혼식이 십 분도 남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결혼식장에 도착하니 결혼식도 지각하고 입장도 늦은 신부 아버지로서 빵점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너에게 보내는 오늘의 굿나잇 키스는 결혼시장에 늦게 나타난 것에 대한 뒤늦은 사과야. 너는 얼마나 초조하게 날 기다렸을까. 영영 아빠가 안 나타난다면 어쩌지. 신부 화장을 해서 울 수도 없었겠지. 다시 손을 잡아라. 다시 카펫 위를 걸으며 널 인도하마. 너는 갑옷을 입은 하늘의 신부. 장엄한 결혼 행진곡을 올리거라. 쇼팽의 장송곡이 아니다. 지상의 아버지가 천상의 아버지에게도 인도하는 날. 이번에는 늦지 말아야지 하늘의 신부야.”(P.144) 라고 말한다.
이 책은 저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자식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고 그리워하며 마음 아파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모든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