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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 - 소리 없는 통곡, 선비들의 눈물
신정일 엮음 / 루이앤휴잇 / 2015년 4월
평점 :
공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고 했다. 슬픔이 단지 슬픔으로만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슬픔이 너무 아름답게 승화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 속의 선각자들이 남긴 글과 이름난 사람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글들 속에서도 슬픔이 있어 더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슬픔이 시대를 넘나들며 현재 우리가 겪는 슬픔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살다가 다 죽는다. 다만 언제 죽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슬프고 피하고 싶은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슬픔은 인간의 본성이다. 본성이 근원적으로 표출되거나 승화될 때, 그 슬픔이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그 슬픔이 개인은 물론 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목 놓아 울고 났을 때 후련함 또는 맑은 정신과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그런 연유이다.
그러한 슬픔이 시공을 뛰어넘어 누구에게나 머물러 있다. 현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역사 속의 수많은 인물들의 삶 속에도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다. 슬픔이 현실이고, 삶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이 책은 문화사학자이자 이 땅 구석구석을 걷는 작가, 도보여행가.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쳤으며, 2015년 현재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의 이사장으로 있으며, 소외된 지역문화 연구와 함께 국내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 및 숨은 옛길 복원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저자 신정일이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 가족, 벗, 스승의 죽음 앞에 미어진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울었던 조선 선비들의 절절하고 곡진한 문장 44편을 담았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묘사하는 말에는 대부분 아픔을 의미하는 단어 ‘통(痛)’이 붙는다. 아픔을 의미하는 단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과 같다는 뜻의 ‘천붕지통’, 남편을 여읜 아내는 성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는 의미의 ‘붕성지통’ 등이 대표적이다. 유학과 경전에 익숙한 지엄하고 체면을 중시했던 선비들이 아닌, 한 인간으로 돌아가 따뜻한 마음을 지닌 한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의 조선 선비들은 이러한 슬픔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조선 후기 평론가로 유명한 이하곤은 맏딸 봉혜의 죽음을 맞아 통곡하며 쓴 ‘곡봉혜문’에 보면 “네가 떠난 뒤로 흙덩이처럼 방 안에 앉아 하루 종일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있단다. 앉아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나가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구나. 혹은 책을 펼쳐놓고 한숨을 내쉬고, 혹은 밥상을 앞에 놓고 탄식하며, 혹은 그림자를 보며 중얼거리기도 한단다.”라고 했다.
이 책이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아직도 씻을 수 없는 참척의 아픔과 슬픔을 느끼고 있을 유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의 슬픔과 눈물, 그들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