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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다치지 않게
설레다(최민정) 글.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랫말이 있다. 내가 나를 들여다볼 때에 이 가사만큼 적절한 설명이 또 있을까? 내 안에 수백만 가지의 내 모습이 있다. 이제 나를 좀 알아가나 할 때쯤이면 또 다른 내가 불쑥 고개를 들고 나와 나 자신도 처음 본 내 모습에 어리둥절하다. 양파처럼 까도 까도 끝이 없는 ‘나’라는 사람의 속에는 이미 알고 있던 모습도, 낯선 모습도, 때로는 인정하기 싫은 야비하고 비정한 모습도 있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게 되면서 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일도 잦아졌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비친 내 모습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다르게 비춰질 수도 있다. 누구 앞에선 드러나지 않은 나의 어떤 부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드러나는 경우도 생긴다. 유일무이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인데 또 다른 ‘나’의 존재가 존재함을 발견할 때면 몰랐던 내 모습과 마주하는 그 어색함에 뒷목이 딱딱해진다.
이 책은 ‘고통은 그림으로 전해질 때 조금씩 날아간다’고 믿는 미술심리치료사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며, 가장 우울했던 시기에 기약 없는 설렘을 바라며 지은 ‘설레다’라는 닉네임으로 토끼 캐릭터 ‘설토(설레다 토끼)’를 주인공으로 하루 한 장씩 7년 동안 노란 포스트잇에 그림을 그려 온 저자 최민정이 760여 장의 메모 중에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만한 가장 보편적인 감정을 담은 100장을 추려 짧은 글과 함께 엮은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희노애락을 담아내어, 마냥 밝지만은 않은 ‘외로움, 슬픔, 원망, 미움, 배신, 불안, 질투’ 등의 마음의 그늘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토끼는 어떻게 보면 매우 자주 볼 수 있는 흔한 캐릭터이지만 설토는 다르다. 마냥 예쁘고 귀엽기만 한 토끼 캐릭터가 아닌 매일을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작은 실수에도 자신을 상처 내고, 늘 씩씩한 척하고, 혼자 있을 때조차 마음껏 울지 못하며, 화살 세례에 지쳐 동굴로 들어가서는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주길 바라는 우리의 모습이다. 설토의 아릿한 작은 눈이, 축 처진 어깨가, 눈물 흘리는 표정이,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 쉬는 모습이 우리의 평소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날을 세우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픈 말만 쏙쏙 골라가며 공격해 오는 사람의 과거를 찬찬히 이해하고 더듬어 볼 마음이 들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의 지난날이 어쨌건 뱉어진 말에 당장 상처를 받는 것은 ‘나’이니까요. 그러나 한 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물론 포용하고 이해하라는 권유는 아닙니다. 인류를 이롭게 하는 성직자도 아닌데요. 다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저렇게 아픈 말을, 뾰족한 말을 하는 이유가 무언지 헤아려 보자는 것이지요. 어쩌면 나 역시도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이런 말들을 했거나 할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p.51)라고 했다.
수많은 인문학 서적이나 자기계발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가장 중요시 여겨지는 것이 ‘나’ 자신에 대한 탐구라고 느껴진 후로 짧지 않은 시간 나 자신에 대한 수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마음을 오해 없이 전달한다는 것, 쉬운 듯 보여도 막상 해보면 참 어렵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오해를 사기도 하고 그래서 괜히 속만 상하기 쉽다. 이럴 땐 내 마음을 뽑아내는 프린트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