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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미술관 - 그들은 명화를 통해 무엇을 보는가
최병서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청명한 가을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정처 없이, 먼 길을 떠나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길가에 흔들리는 코스모스와 하루가 다르게 산 밑으로 내려오는 단풍도 배낭꾸리기를 재촉한다. 문제는 주말이면 나들이 나온 차량들로 고속도로가 꽉 막혀 몸살을 앓는다는 것. 가다 서다가 반복되면서 불쾌지수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이럴 땐 가까운 미술관에 들려 명화를 감상하는게 상책이다.
나는 가끔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을 방문한다. 호암미술관은 고미술품을 통해 우리 조상의 뛰어난 미적 감각과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는 학습의 장이다. 작품 하나하나가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역사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이 책은 문화경제학에 정통한 동덕여대 경제학과 최병서 교수가 쓴 명화 이야기로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는 명화와 예술가의 눈으로 보는 경제를 통해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꼬집은 피터르 브뢰헬의 ‘바벨탑’을 보면서 저자는 세계화에 대해 생각한다. 그림 속에서 왕을 수행하는 회색옷 수사의 현대적 후계자로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밀턴 프리드먼을 지목하면서 바벨탑이 붕괴하는 모습이 마치 신자유주의로 인한 극심한 빈부격차 때문에 무너지는 중산층의 모습과 같다고 설명한다.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상징들을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해석하면서 화가의 의중을 헤아린다.
명화에 대한 이런 해석은 경제지식을 습득함은 물론 미술작품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인 경제문제에 빗대 미술작품과 표현기법을 설명함으로써 독자가 명화를 더 쉽게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미술작품을 경제학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일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작품을 그린 화가의 삶 또한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화가가 그리는 미술작품에는 이미 화가의 경제적 상황이 표현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명화 속에서 발견한 경제’, 2장 ‘화가의 눈에 비친 경제’, 3장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한 미술산업’ 등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의 삶을 경제불황과 연결시킨다. 고갱은 원래 증권거래소 직원이었다. 1873년 결혼한 후 경제적 여유가 생긴 고갱은 틈틈이 인상파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1882년 프랑스 주식시장의 붕괴였다. 그는 급격한 경기 침체로 직업이 불안정해지자 이듬해부터 전업 화가로 나섰다. 원시 자연을 찾아 1891년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떠났다.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인 ‘타히티의 여인들’ 등 명작은 이렇게 탄생했다.
화가가 미술작품을 그릴 당시의 경제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미술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으로 발 돋음을 하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