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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면 풍경 -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유민호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평점 :
아시아에 있는 나라들 중에 태국을 제외하고 일본에 식민통치를 받지 않은 나라가 없다. 일본은 자원 찬탈과 착취 등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수 없는 일들을 자행하며 침략 욕망을 여지없이 드러낸 만행을 일삼았으며, 성노예 위안부로 끌려가 꽃다운 청춘을 짓밟힌 할머니가 아직도 130여명이나 살아 있는데, 저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나는 몇 년 전에 이스라엘에 여행을 갔다가 ‘야드바셈’ 홀로코스트추모박물관을 견학하고 안내원으로부터 독일과 일본의 차이점을 들은 적이 있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은 씻을 수 없는 쓰라린 고통과 아픔을 준 자국의 전범을 찾아 처벌하고 전쟁 피해국들에게 철저한 사죄와 배상, 보상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진정성을 가지고 사죄하고 또 용서를 구한다고 한다. 유대인 후손들은 당시에 희생당한 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는 의미 있는 현판이 걸린 미국의 워싱턴DC 홀로코스트추모박물관을 비롯해 세계 도처에 무려 17개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또는 기념박물관을 세웠다.
그중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하나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세운 ‘야드바셈’ 홀로코스트추모박물관이다. 2005년 야드바셈 추모박물관 개관식 때는 40개 국가의 총리와 대통령을 초청했다. 박물관 건축비는 거의 독일 정부가 부담했고 개관식 연설은 독일 대통령이 맡았다.
일본은 세계대전을 일으켜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대륙을 침공하고, 진주만을 기습 폭격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1급 전범들의 위패를 신사에 함께 두고 일본을 위해 순국한 희생자들이라고 하며 추도하며 기린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동일한 전범 국가인데 독일과 일본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 것인가. 2006년 독일의 총리 메르켈이 야드바셈 추모박물관을 찾아가서 남긴 “과거를 아는 사람만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SBS 보도국 기자 출신으로 일본 차세대 리더 양성이 설립 목적인 ‘마쓰시타정경숙’에서 공부한 저자 유민호씨가 우리들이 ‘반일’과 ‘혐일’의 감정 속에서 애써 무시하고, 알려고 들지 않았던 일본의 속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저자는 ‘일본은 있다’고도, ‘일본은 없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지금 일본의 우향우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에 출생한 ‘버블 세대’다. 버블 세대는 일선에서 물러난 ‘단카이 세대’(1945년부터 1950년대 초반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와는 달리 일본의 과거 침략사에 무지하다. 고도 경제성장 수혜를 입고 자란 버블 세대는 애초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를 별로 갖고 있지 않았지만, 중국과 한국에 맞서려는 과정에서 감성에 쉽게 호소하는 우향우 방향으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은 지는 해’ ‘우리는 일본을 벌써 제쳤다’는 식의 인식은 위험천만하다고 말한다. “한국인은 일본인이 한국을 아는 만큼도 일본을 모른다”는 얘기다. 팽창하는 중국과 몸 사리는 미국 사이에서 일본은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일본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은 양파껍질에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벗기고 벗겨도 잘 모르는 것이 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