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함께 사는 법 - 오늘을 살리는 과거 청산의 현대사
김지방 지음 / 이야기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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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니, 여기 대한민국만 해도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다. 이 전쟁은 우리에게 너무나 먼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마저 장난감이나 게임, 영화를 통해 전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굳이 전쟁을 직접 경험할 필요는 없겠지만, 게임을 시작하듯이 전쟁을 시작하고, 장난감 총을 겨누듯이 사람을 향해 총을 쏜다고 착각하는 것은 전쟁 그 자체만큼이나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는 지금도 역사 전쟁이 한창이다. 한 쪽에선 상대방을 친일파와 군부독재의 앞잡이라고 부르고, 맞은편에선 그들을 빨갱이를 추종하는 종북 좌파라고 매도한다. 이제 좀 끝낼 때도 되었건만 끝날 기색이 보이지 않고 북방한계선(NLL) 문제’ ‘국가정보원의 대선 댓글 개입등으로 확전되고 있다. 대결과 분열을 조장하는 역사가 아니라, 이해와 화합을 빚어내는 역사는 불가능할까?

 

이 책은 국민일보 김지방 기자가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수식되는 미국의 흑인 차별 폐지 과정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갈등 청산, 캄보디아의 좌파 독재 청산, 아르헨티나의 우파 군사정권 청산 과정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부역자 문제를 다루는 과정 등 여러 나라의 어두운 현대사를 촛불을 켜듯 생생하게 엮어낸 것이다. 또 한국의 현대사와 마주해서는 1948년 여수·순천 사건과 1980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그간 알려진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담아내 이해를 도왔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역사는 뒤틀쳐지고, 희생은 은폐되며, 현실은 굴절된다. 인간의 자존감마저 잃어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만 좇고 가진 자, 힘 있는 자, 외세에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그 어디에도 정의와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첫 단추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아서다.

 

이 책은 박근혜 정권 들어 더욱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대사에 얽힌 진실과 정의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유도할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남아공의 흑백 인종 갈등 문제에 대해서 진실과화해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를 통해 들려준다. 또 여수·순천 사건과 관련해서는 고() 손양원 목사의 딸 동희씨의 삶을 통해 가해자와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을 죽인 좌익 학생 안재선을 용서하고 그를 양자로 삼았다. 하지만 두 오빠를 잃은 동희씨는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20여년의 시간이 흘러 안재선이 죽음을 앞두고 찾아와 용서를 구했을 때야 비로소 동희씨는 그를 용서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은 적과 함께 사는 법이다. 하지만 적과 함께 사는 법은 없다. 우리는 적과 함께 살아가야만 할 뿐이다. 가족을 죽이고 자식을 빼앗고 마을을 불태우고 차별하고 억압해 온 사람과 한 하늘을 이고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용서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된 것은 큰 소득이다. 이 책을 읽으면 역사는 어렵지 않고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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