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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
모니카 마시아스 지음 / 예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저는 참 이상한 인생을 살았어요. 저는 아버지가 둘입니다. 저를 낳아준 적도기니의 프란시스코 대통령, 그리고 저를 보살펴준 북한의 김일성 주석입니다.” 이 말은 적도기니 대통령이었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의 딸 모니카 마시아스가 한 말이다.
나는 오래전에 금강산관광을 다녀오고 부터는 평양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평양에 대한 책은 거의 다 읽고 있다.
이 책은 아프리카 중부 서해연안의 작은 나라 적도기니 초대 대통령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의 막내딸로 태어난 모니카 마시아스가 평양에서 보낸 16년과 파란만장한 인생유전이 기록돼 있다.
모니카 마시아스 6살 때인 1978년 어머니와 2남2녀 중 쿠바에 유학 중이던 장남을 뺀 3명이 평양으로 떠났다. 아버지는 그 다음해 조카의 쿠데타로 실각한 뒤 처형당했다. 그들이 평양으로 간 것은 실각 위기에 몰린 응게마 대통령이 가족들을 우호국이던 북의 김일성 당시 주석에게 맡겼기 때문에 언니 마리벨, 남동생 파코와 함께 16년 동안의 평양 생활이 시작됐다.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운 김일성 주석의 배려로 편안한 생활을 했지만 또래에 비해 큰 키와 까만 피부 때문에 모니카는 어디에서나 주목의 대상이고 동시에 따돌림의 대상이기도 했다. 외모의 확연한 차이가 매우 큰 한계라고 느껴 까칠한 수건으로 얼굴을 벅벅 닦고 곱슬머리를 정신없이 빗어댄 적도 있다. 평양 만경대혁명학원에 입학한 그들 형제를 북의 아이들은 ‘양대가리’(곱슬머리) ‘깜대’(깜둥이)라고 불렀다.
모니카는 평양경공대 피복공학과로 진학했다.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그들의 아지트인 ‘김치바’에 가서 술을 마셨고 노래방에 가서 애창곡인 조용필의 ‘친구여’를 부르기도 했다. 어느 날, 모니카에게 평양을 떠날 결심을 하게 만든 계기가 찾아온다. 자신이 보고 있던 신문 위로 시리아 유학생 친구 아자르가 털썩 앉자 그녀는 경악을 하며 “뭐하는 짓이야!”라고 말했다. 신문에 김일성 주석의 사진이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항의였다.
모니카는 그 뒤 스페인을 거쳐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철새처럼 떠돌다가 미국 뉴욕을 거쳐 평양을 떠난 지 12년 만인 2006년 말 마침내 서울에 왔다. 서울은 모니카가 벼르고 별렀던 최종 목적지였으며 ‘마음의 고향’ 한반도였다.
서울은 모니카에게 ‘오고 싶으면 언제든 올 수 있는 곳’이라는 안정감을 심어주었으며 그 후 계속된 모니카의 인생에 든든한 기초가 되어주었다. 오랜 유랑 후 이제는 적도기니와 마드리드 두 곳에 터를 잡고 한국과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모니카는 “어떤 사업이건 내가 하는 일은 늘 한국과 세계가 연결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서울 방문이 가능해진 것처럼 평양으로도 다시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늘 삶의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 도전과 모험을 멈추지 않은 모니카 마시아스의 이야기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